나 같은 엄마가 있어서 좋겠다.

by 에메

“엄마엄마! 나 **이가 너무 싫어!”


딸 시엘이 기숙사 이야기를 꺼내며 불만을 토로했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며 친하게 지냈던 친구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때는 서로 생활용품도 나눠 쓰고, 배달음식도 함께 시켜 먹던 친구였는데 말이다.


“아까 기숙사에서 친구들이랑 결혼 이야기가 나왔거든. 그래서 내가 유명한 MC가 되어서 친구들 결혼식 사회를 봐준다고 했어. 그런데 그 애가 ‘너 안 될 거 같은데?’라고 말하는 거 있지!”


순간 시엘의 목소리는 너무도 심각했다.

나와 가까운 사람은 딸이고, 지금 내 앞에서 마음을 털어놓는 사람도 딸이기에 일단 딸의 편을 들어주었다.


“뭐라고 했는데?”
“MC는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래.”
“어머어머, 말을 왜 그렇게 하니. 신경 쓰지 마.”


며칠 전 영상에서 본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Frenemy”.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친 말로,

겉으로는 친구처럼 지내지만 속으로는 경쟁하거나 견제하는 관계를 뜻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관계가 많다.

함께 웃고 대화하지만 속으로는 서로 비교하거나 질투하는 관계,

협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경쟁해야 하는 동료,

앞에서는 친근하지만 뒤에서는 비판하는 사람.

여자들의 세계에서는 생각보다 이런 Frenemy가 많다.

오늘은 같은 길을 걸어가다가도 내일은 적이 되기도 하고,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는 할퀴기도 한다.

따라서 지금 가까운 사람을 무조건 다 챙길 필요도 없고,

지금 멀다고 해서 무조건 외면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관계는 늘 변하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딸이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겪는 미묘한 감정,

친구 사이의 긴장,

상처받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엄마에게 말할 수 있다는 건 큰 힘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학교 생활을 엄마와 크게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애매한 따돌림을 당했을 때도,

친구들과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집에 와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왠지 혼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모범생이어야 했고,

쓸데없는 생각이나 말을 하면 안 됐다.

그래서 내 마음은 늘 혼자 삼켜야 했다.


아이가 겪는 세상은 부모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순간만큼은 같은 세계를 공유하게 된다.

모녀 관계는 단순히 가족을 넘어,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


“Frenemy”라는 단어는 단순히 적대적인 관계를 뜻하는 게 아니다.

애매하고 복잡한 인간관계의 긴장감을 담아낸 표현이다.

그리고 그 긴장 속에서 딸은 성장한다.

친구와의 갈등은 때로는 아프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인간관계의 다양한 결을 배우게 된다.

나 역시 그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배우게 된다.

아이가 겪는 불편함과 상처를 통해,

나 역시 인간관계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모녀의 대화는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어주는 다리다.

딸은 학교에서의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나는 그 경험을 통해 딸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리 사이가 좋은 우리 모녀 사이도

당장 내일 frenemy가 될 수도 있겠지만, 문득 생각해 본다.


내가 학교 생활이나 내 생각을 엄마에게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지금 나의 인간관계가 조금은 더 수월했을까?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지금은 딸을 통해 다시 듣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Frenemy라는 단어가 보여주는 복잡한 관계의 긴장 속에서도,

모녀의 대화는 언제나 안전하고 따뜻한 피난처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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