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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보배 Jun 11. 2018

남들이 퇴사하고 여행갈때, 여행가려고 악착같이 버팁니다

사표는 마음속으로만 날립니다. 여행가야 하니까!

처음 비행기를 탄 순간을 기억한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게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믿을 수 없지만 20살이 넘어서 였나 보다. 요즘에야 수학여행도 근처 해외로 가는 곳들도 있다지만 나의 어린 시절 수학여행의 뻔한 코스는 경주 혹은 속초 이런 곳들이었고, 가족여행으로도 다섯 식구가 제주도까지도 갈 경제적 여유가 그때까지도 없었으니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날의 가슴 두근거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대학교 3학년. 한참 유럽 배낭여행이 대학생들의 로망이자 필수 코스처럼 유행하던 그 시절, 대체 왜 이렇게 비싸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등록금을 모으기도 팍팍해서 유럽 배낭여행은 선뜻 말도 못 꺼내던 나에게 찾아온 기회는 서울시에서 진행하던 4대 문명 탐사 프로젝트. 어찌어찌 지원금이 나오는 프로젝트 덕에 나의 첫 해외여행, 나의 첫 비행기 탑승이 현실이 되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고 사진을 뒤져 봐도, 나 스스로 믿을 수 없지만 나는 대학고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것이다. 심지어 나의 첫 여행지는 (당시만 해도) 배낭여행자들의 끝판왕 같은 그곳, '인도'. 그 당시 류시화 시인의 인도에 대한 에세이가 크게 유행하며 미지의 세계, 신비의 나라 이미지가 넘처나며 꿈 많은 청춘들이 언젠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아오던 인도는 다녀온 사람들이 딱 두 분류로 나뉜다고 했다. 인도의 마성에 사로잡혀 반드시 다시 가고야 말겠다는 "인도 성애자"와, 더럽고 정신없고 류 작가는 사기꾼이었다고 말하는 "인도 극혐오자". 나는? 이 여행을 시작으로 "인도를 넘어서, 세계 여행자"가 되었다. 


내 인생 첫 비행기, 심지어 해외로 가는 비행기. 인도로 가는 비행기는 싱가포르 항공이었다.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인도의 뉴델리까지 가는 시간. 비행기에서 주는 모든 것이 맛있었고, 모든 시간이 소중했다. 가끔 흔들리던 기내에서 일기장에 설레는 마음을 잔뜩 적어 내려갔던 순수의 시절. 그러고 보니 인생에서 처음 비행기를 타는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엄마 뱃속에서부터 태교여행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시대이니까.

내 여행의 시작. 인도, 타지마할




지금까지 다녀온 나라만 30개를 훌쩍 넘겼다.

그렇게  인도를 시작한 지 13년, 나는 지금까지 다녀온 나라가 몇 개인가 가물가물할 정도로 세상을 떠돌고 있다. 도시의 숫자까지는 세기를 포기했고(하지만 언젠가 날 잡아 정리해야지, 아직 100개 도시는 안될 테니), 다녀온 국가가 30개를 넘긴 것까지 세었었는데 그 이후로도 몇 곳을 더 다녀왔고, 심지어 다녀온 곳을 또 가기도 했는데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직업이 여행 관련 업종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가도 아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끝없이 하기 위해, 날리고 싶은 사표를 꾹꾹 접어 마음속에 묻어두는 "현실 직장인"이다. 

뉴질랜드 스카이 다이빙
상해의 동방명주, 홍콩의 야경. 깜깜한 밤의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발리, 뜨겁게 사그라지는 하루.




삶이 팍팍하니 모두 다 던지고 떠난다고 하지만,
그리고 돌아온 후의 팍팍함이 두려워 참기로 했다. 
조금만 더.

경제가 어렵다는 건 해마다 별로 나아지지 않나 보다. 내가 입사를 했던 딱 10년 전의 그때에도 우리나라가 IMF를 극복해 낸 이후로 가장 어렵다 했었는데, 해마다 들리는 소리가 "너 때 취업은 그래도 쉬웠던 거다"라는 이야기.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니 너는 모르겠지만, 자영업자들은 정말 "헉"소리 날정도로 힘들다는 이야기. (하지만 왜 언제나 제가 공항에 갈때마다 공항은 여행객들로 넘쳐나는 걸까요.)


그렇게 힘들도 팍팍하니 모두들 던지고 떠나는 걸까. 분명 경제도 안 좋고, 갈수록 삶이 팍팍해진다고들 걱정했지만 "삶에 질리고 사방에 치이다 지쳐 사표를 던지고 떠나는"사람들의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예전엔 에세이집에서나 읽으면서 "우와... 이렇게 떠났대"라고 그 용기를 부러워하곤 했는데, 이젠 SNS의 발달로 그런가 "퇴사, 그리고 세계여행"이라는 테마가 나 때의 "대학생 유럽여행"이야기만큼이나 흔하고 많이 들린다.


그들의 용기에 정말 부러움을 듬뿍 담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나라고 "때려치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실행 직전까지 간 적도 많다. 하지만 나는 한번 그만 두면 쉽게 다시 "이직"을 할 수 없는 직종에 몸담고 있기도 하고(뭐, 이 또한 나의 비겁한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모든 걸 놓고 떠나기엔 "당장은 지금부터, 멀게는 올지 안 올진 모르지만 온다고 가정해야 하는 나의 노후"까지 대비해야 하는 지극한 현실적인 계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저 그런 평범한 "먹고살 걱정"을 하는 사람이기에, 어떻게 저떻게 꾹꾹 눌러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당장은 지금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나 실컷 하고 싶지만, 숨 쉬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돈과 직결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나는 "여행을 할 돈,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다음 수입이 발생할 때까지의 삶을 잠깐의 기간이나마 유지시켜 줄 돈"이런 것에 대한 완벽한 대비책이 없이는 용기를 낼 수 없는 성격이기에 하루하루 참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모아놓은 돈으로 여행을 떠난다 해도,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보면서 정말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지, 정말 해야 하는 액티비티 앞에서 선뜻 용감하게 지갑을 열 수 있을지, 성격상 여행을 하는 중에도 그 긴 여행이 끝나고 다시 돌아왔을 때의 날들을 미리 걱정하고 있을 나를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내가 사랑하는 여행의 온전한 기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여행책을 쓰면 되잖아", "떠나보면 어떻게든 길은 생겨", "사람 죽으란 법 없다", "여행기자나 여행작가 이런 게 될 수도 있어" 뭐 이런 용기만 백배시켜주는 불확실한 멘트에 혹하여 넘어가기에 나는 너무 많이 현실적이거나, 혹은 겁이 많을지 모르겠다.  

원주민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울룰루, 호주의 앨리스 스프링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나는 악착같이 회사를 다닐 테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라고 했다. 물론 좋아하는 일이 경제적 수입원으로 직결되어, 하루 종일 에너지가 펑펑 솟아날 만큼 신나게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특히나 수능이라는 신기한 제도가 전공을 결정하고, 전공에 맞춰 적당히 취업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도 되면 다행인 요즘 세상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하겠거든 하는 일을 좋아해 보라고 하지만,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 하다 보니 좋아지면 큰 복이지만, 그게 안된다면 그럭저럭 하면 되지 뭘 또 좋아하려고 노력까지 해야 하나. 그냥 일 하는 노력도 벅찬데. 죽기보다 하기 싫으면 알아서 어련히 그만뒀겠지, 다 그냥저냥 할 만은 하니까 하는 거지.라는 뻔한 생각을 하는 나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 업이 되지 못했을 때, 어쨌든 내가 찾아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을 통해 번 돈으로 내가 좋아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실컷 하기 위해 꾸준히 일이란 것을 하고. 일이 팍팍하여 나의 방랑벽을 부추길 때마다 나는 더욱더 여행을 좋아하게 되고, 그렇게 여행을 좋아할수록 돈은 필요하니까 나는 또 이 업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그렇게 한해 한해 일을 해나가다 보니 그 업이 "할만한 일" 정도로 익숙해져 가기는 한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만에, 어렵게 찾아냈는데 이것을 업으로 삼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끔찍하게 질려버리면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꾸준히 일하게 되는 동기부여마저 잃어버리는 것일 테니까. 예를 들어 여행사 직원이 되었는데 손님들이 너무 진상이라 더 이상 가기가 싫어진다거나, 여행 기자나 작가가 되었는데 늘 너무 뻔한 이야기만 떠오르거나 너무 많은 여행작가들의 등장으로 밥벌이가 안된다거나, 여행도 여행과 관련된 내 일도 너무 좋지만 돈벌이가 전혀 안되어 당장 굶어 죽게 생겼다거나... 이렇게 되느니 차라리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남들이 "더럽고 치사해서, 답답하고, 우울하고, 짜증 나고, 이게 뭐 하는 건가 싶고, 이러려고 대학 나와 그렇게 노력해서 취업했나 싶고,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가 고민되고, 이건 정말 아닌 거 같고, 다른 길이 있을 것 같고, 다른 길이 없어도 이건 아닌 것 같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용기 있게 사표를 던지고 세계여행을 떠날 때. 나는 악착같이 참고 버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가기 위해서. (그러니 "퇴사=세계여행"이 지금 너무너무 너~무, 아주 그냥 끝도 없이 무한정 부러운 분들은,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서 같이 좀 버텨 보시길.(어서 빨리 뭐하나 좋아하는 것 부터 찾아보세요)


현실감이 사라지던 캐나다. 




하지만 그 여행의 끝엔
자기의 인생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도록,
직장에 목줄이 걸려 끌려가지 않도록.

이런 나에게 하늘이 미리 준비 해 둔 것은 내가 여행을 선택하는 그 순간 항상 깨어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우리 언니이다. 

결국 자기의 인생에서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어질수록 행복감과 만족감이 확실하게 증가하는 거야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내가 여행 그것을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일로 여기면 다행이지만, 단지 주된 내 업을 피하고 싶어서 항상 도피를 꿈꾸기 때문에 여행을 선택하고, 또 그 선택을 위하여 또 그 업을 계속한다면, 그것이 과연 잘 사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현실조언을 날려준다. '만약 단지 도피를 위해서라면 그 업은 그만두어도 된다고, 사람이 그렇게 쉽게 굶어 죽지 않는다고, 굶어 죽을 것 같거들랑 내 밥상에 네 숟가락 한벌 더 놔줄 테니 정말 하기 싫은 일을 10년쯤 했다면, 너는 그만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든든한 언니다. 


직장인들이 직장이라는 곳에 누가, 왜, 어떻게 걸었는지 알지도 못하는 목줄이 매여서 자기 자신이 지금 행복한가를 생각조차 못하고 회사를 다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돈을 벌면 결국 자기 보상심리에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게 되고, 진정 원하지 않더라도 의무인 양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그게 정말 "행복"이냐고 물어봐 주는 깨어있는 언니. 그 덕에 나는 방향을 잃지 않고 갈 수 있고, 잃더라도 바로(혹은 조금 돌아오더라도)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라도 참을만 한 나의 일. 이 둘 사이의 균형이 깨어지기 전까진, 나는 내 일을 악착같이 계속할 테다. 하지만 그 균형이 깨어져 내 행복이 흔들린다고 느끼는 순간(요즘 예전보다 좀 많이 위험하긴 하지), 혹은 정말 내가 사랑하는 "여행"이 내 업이 되어도 괜찮겠다고 충분히 자신감이 붙는 그 순간, 나는 또 다른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러니! 다가오는 월요일, 또 한 주 힘내야지. 

파이팅. 

엄마아빠랑 다시 가야지,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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