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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가족여행 세계여행
by 새벽보배 Nov 07. 2018

가족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역시 싸움이다.

동화의 마을 로덴부르크에서 아빠와 나는 폭발해 버렸다.

"어휴~ 언니! 전 못 가요~~ 국내여행 2박 3일만 가도 엄마랑 엄청 싸우는데 어떻게 열흘을 넘게 가요~!"

"야~너니까 가는 거지, 난 못가~! 백번 양보해서 엄마랑만 가면 몰라도 아빠까지 같이 가면 난리도 아니야~ 안 가고 말지. 스트레스 풀자고 여행 가서 스트레스 더 받을 일 있냐~!"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는 거 아무나 가는 거 아니다 너~!! 니가 특이한 거야 니가~! 한두 번도 아니고 어쩜 그렇게 가고 또 가고 그러냐~?"

"쉬운 일이면 직접 모시고 가지 효도관광이랍시고 여행사에 돈만 내고 두 분만 가시라고 하겠냐? 그게 다 바쁘니 여건이 안되니 어쩌니 해도, 그냥 싫으니까 피하는 거야!"

"어후... 널 보면 진짜 니가 효녀다 싶고, 내가 진짜 부모님한테 더 잘해야 한다 싶은데, 막상 식구들 다 같이 여행이라도 갈라 치면... 야 엄두가 안나 엄두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나에게 꽤 많은 사람들이 "대단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렇게는 절대 못 갈 거라면서 손사래를 친다. 이유를 들어보면 간단하다. 십중팔구 말고 십중 십! 싸우게 된다는 것! 벌써 거의 10년째 엄빠 손 잡고 여행을 돌아다니는 나 정도의 내공이 있으니 우리 집의 가족여행이야 싸움도 없고 문제도 없이 편안하겠지만, 자기들의 집에선 아마 싸움으로 시작해서 싸움으로 끝나고 올 거라며, 우리 집의 여행의 평화를 속단한다. 훗. =_+!!


벌써 엄마랑 해외여행을 시작해서, 이젠 엄마 아빠까지 함께 세계를 돌아다닌 지 근 10년이 다되어 간다. 그리고 우리 여행의 클라이막스는! 단언하건대 "싸움"이다. 한 번도 거른 적 없이 서로 언성이 높아지든, 내가 눈물을 뚝뚝 떨구든, 너무 화가 나서 다신 엄마 아빠랑 여행을 안 간다고 다짐을 하든! 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역시 가족 여행의 별미는 전쟁이 아닌가 싶다. 가족여행에서 전쟁 같은 가족싸움이 한번 터지고 나야, '그럼 그렇지 우리가 여행을 왔지!' 하고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부모 자식이 여행을 가서 "싸움"이라는 표현이 맞겠나 싶기도 하나, 가족 언쟁? 분란? 뭐 결국 싸우는 거니까. 싸움이라 쓰련다. 



독일 여행, 시작부터 한판 세게 붙었다.
엄마는 그럴 줄 몰랐겠지만.

독일에서 여행 첫날부터 타이어가 찢어지고, 차가 털리고, 타이어를 고치는데 반나절을 다 쓰고, 잃어버린 여권을 처리하느라 독일 경찰 앞에서 엉엉 울었을 때도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나름 정신줄을 꽉 잡고 의연하게 모든 사태를 잘 처리해 냈다. 경찰서까지 찾아가서 까다로운 서류도 잘 받아가지고 우리의 숙소가 있는 다음 목적지인 로덴부르크로 당일 내 무사히 떠났고, 그렇게 날릴뻔했던 숙소! 현지인이 운영하는데 이런저런 후기들이 훌륭함을 자랑하던 꽤 유명한 "카린 할머니 민박"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한다고 했는데도 이미 한발 늦었던가 방을 겨우 옥탑방 작은 방도 상관없다고 해서 한 예약이었는데, 이걸 놓칠 뻔했다니 안될 일이지 하며 설렘을 끌어모아 찾아갈 수 있었다.

 

민박에 도착해서 짐을 내리는데 짐의 개수가 이상하다. '분명 하나가 비는데.. 이상하다.. 뭐가 없지'하고 계속 뒤적이다 생각해낸 엄마의 작은 배낭!! 앞 가방엔 여권이랑 선글라스, 돈 같은 것들이 있어서 우산, 얇은 잠바 스카프 같은 건 따로 담았던 엄마의 검은색 작은 배낭이 안 보인다. 


"엄마! 배낭 없어? 뒷자리에 놓지 않았었어? 그 왜 양산하고~ 스카프 하고 담아서 뒷자리 놨었잖아~!"

내 물음에 엄마는 어쩐지 잘못을 숨기고 있다가 엄마한테 들킨 아이 같은 표정이다. 

"응? 배낭? 아니 그게... 없...는거 같아..."

"그니까~ 없는 거 같으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어디다 치웠냐고~"

"응? 아니 그게 내가 치운 거는 아니고... 아까 없어진 거 같아... 내가 아까 차에서 오는 길에 찾는데 계속 없더라고... 생각해보니까 아까 차 털릴 때 그것도 가져 간 거 같아..."

"뭐~?!! 아 없어진 거 뭐냐고 잘 보라고 확인할 때, 없어진 거 없다며!!!!"


그랬다. 엄마의 배낭도 그놈들의 손에 털려버린 것이다. 아마 창문이 열렸던 틈으로 손 닿는 쪽의 가방만 급하게 꺼냈을 텐데, 딱 엄마의 배낭까지 그놈들이 급하게 채갈 수 있는 범위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뒤늦게 로덴부르크로 출발하고 나서야 엄마는 그 배낭이 안 보이는 것을 생각해 냈고, 이미 이래저래 분실물 신고도 끝내고 출발한 뒤였으니, 뒤늦게 말 꺼내 원성을 사는니 그냥 본인만 쉬쉬하고 그냥 모른 척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던가보다. 


"아 엄마!!!!!!! 아까 그렇게 잘 보라고 했었잖아~~!!!!!!!! 이제 와서 말하면 어쩌자는 거야~~~!"

나도 안다. 엄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걸! 바로 이걸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랄 맞은 딸의 폭풍 성화. 딱 요정도만 피할 생각이었고, 이 이후까지 발생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했을 것이다. 

"아니... 아차 싶더라고... 근데 이미 경찰서 다 갔다 왔고, 이래저래 일정도 늦어서.. 말한다고 뭐 될 거 같지도 않길래 말 못 했지...(우물우물)"

이미 가방도 털리고 멘탈도 털리고 처리하느라 족히 열흘 치 에너지는 탈탈 털어주고, 새 부대 새술담듯 힘내 보자고 으쌰 으쌰 수습하고 왔더니만 이제야 털어놓는 "내 가방도 털렸다"의 진실이라니. 일단 급한 대로 가방은 방에 옮겨 넣고, 저녁도 먹을 겸 시내로 나서는 길에 아빠에게 조심스레 진실을 공유했다. 


"아이구... 그래야 니 엄마지~ 어쩐지 잘 보라고 하는데 잘 봤다고 대충대충 대답하더라... 어쩔 수 있냐, 우리 한국 갈 때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간다며. 그때 경찰서 한번 더 갔다 가야지 뭐."

예? 뭐라고요 아버님?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거죠? 경찰서를 다시 가겠다고요?!! 시나리오에 전혀 없던, 정말 아주 조금도 상상조차 하지 않은 대사를 아빠가 직접 날려 주셨다. 어차피 한국으로 귀국할 때 비행기를 프랑크푸르트에서 타야 하니, 프랑크푸르트를 조금 일찍 가서 경찰서를 들르고, 도난신고서를 한번 더 가자고 하셨던 것이다. 이미 받아온 서류에는 엄마 이름도 없었고, 물품도 누락되었으니 다시 가서 받아야 여행자 보험으로 처리가 된다는 것이 아빠의 주장이었다.


"아빠. 이미 하루 날려서 일정도 손해 봤는데, 마지막 날 뭐하러 경찰서를 또가~!! 그냥 잃어버린 셈 치고 지금 받은 거만큼만 보험 처리하면 되지~!"

"야! 보험료 다 냈는데 잃어버린 물건은 물건대로 손해보고 보험료는 그럼 보험료대로 손해 봐? 그럴 거면 보험 왜 들었어? 그냥 잠깐 들려서 가면 되지~!! 아침에 좀 일찍 출발하더라도"


이렇게 서서히 첫 번째 전쟁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여행자의 조합도 충분히 이상한데(엄마, 아빠, 딸, 딸의 남자 친구, 옆집 아줌마) 이렇게 분위기가 슬슬 이상해지면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맘 편히 지켜볼 수 없는 아~주 불편한 상태가 되고 만다. 이쯤에서 내가 그냥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말면 되는 것을. 그리고 보통의 경우 아빠가 그러하자! 하는 경우 우리 집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믿는 집이었는데. 이미 하루 종일 정신적 충격으로 상황판단력을 내일 것까지 당겨 쓰고 온 나는 자제심 이해심 부모님에 대한 예의 이런 것들이 모두 총체적으로 고갈된 상태였다. 없음. 남아있지 않음. 


"아 가지 말자니까요~!! 그거 얼마나 한다고~!! 내가 사주면 되잖아~! 거길 또 간다 쳐도 바로바로 일처리가 안되는 거 아빠도 봤잖아~!! 근데 뭐 대책도 없이 가고부터 보재~! 그냥 그 시간 아껴서 다른데 하나라도 더 보는 게 남는 거야~!!"하고 버럭하고 말아 버렸다. 

"야! 돈이 문제야? 그게 얼마 하든 간에 어차피 가는 김에 들르면 되는데 뭘 그렇게 안 간다고 버럭해! 너 이노 무자식, 너 아빠한테 그렇게 버럭 하는 건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맙소사. 이게 이렇게 흐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는데,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단계에서의 최선은 "네, 잘못했습니다"이고, 그것도 힘들면 차선은 "공손한 입다뭄"이 되어야 하는데 이미 뭐 현명한 상황판단력은 경찰서에서 다 쏟아주고 온 상태인 데다가, 이렇게 멀리 와서 하루 종일 고생을 억수로 한 딸 마음도 모르고 무턱대고 거길 다시 가자는 아빠한테 서운함이 훅 밀려온 딸은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아 난 안가! 독일 경찰서 가도 말도 잘 안 통하는데 그걸 어떻게 또 설명하고 어떻게 받아~!! 아빠 같으면 신고서 다 받아갔는데 다시 가서 더 없어졌다 그러면 믿겠어?! 아까 엄청 열심히 생각하라고 해서 다 적었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그러면 의심 안 하겠냐고~!! 뭐하러 그런 꼴을 당하러 가~!! 갈라면 아빠가 가"


갈라면 아빠가 가라니. 이 무슨 도발행위였던가... 

"뭐야?! 야, 되든 안되든 시도는 해봐야 하는 거 아냐? 돈이 중요해? 할 수 있는 걸 다 안 해보고 그냥 지레짐작 포기부터 하는 게 웃긴 거 아니야~!! 내가 널 더러 잘못된 걸 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나쁜 걸 하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해봐서 다행히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아쉬운 거지 왜 해보지도 않고 안하겠거야?! 그리고 너 이놈의 자식, 지금 너 말뽄새가 그게 뭐야!? 아빠가 가라니! 너 지금 외국 나와서 너 혼자 말 다 통하니까 유세하냐?!" 

"아 무슨 유세야~! 아빠야 말로 왜 계속 억지야~!! 안 간다고~!! 안가! 안가! 가기 싫어! 싫다고 하면 한 번쯤 안 가도 되는 거잖아!! 왜 아빠 말대로만 하라고 계속 그러는 건데~!!"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위해 꾹꾹 참으며 하루를 버텼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이 여행을 준비했는데! "유세"라니. 내가 동네 이장선거라도 나간 것도 아니고 여기서 내가 유세할 일이 뭐 있다고 아빠는 저렇게 말하는 것인가.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서운함이 가득 찼고, 서운함은 금세 두 눈에서 폭풍 눈물로 넘쳐흐르고 말았다. 어디 내 마음만 다쳤겠는가. 아빠 마음은 아빠 마음대로 상처가 가득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친하다 해도 이웃과 동행한 여행이었고, 둘도 없이 귀한 딸 탐내는 남자 친구란 녀석도 같이 왔는데 그 앞에서 평소 같지 않게 아빠한테 버럭 대드는 딸이라니 아빠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여기가 한국이라면 일어날 일도 아니었을 것이고, 한국에서 그깟 차가 털렸다고 해봐야 이런 일처리를 딸이 뛰어다니면서 하게 할 일도 없었을 텐데, 이미 하루를 지나오면서 본인 스스로의 자유롭지 못한 의사소통에 충분히 답답했을 아빠는 딸이 저렇게 덤벼들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었다. 항상 집안의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완벽한 가장이었는데,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지니 갑자기 내 가족을 온전하게 보호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어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던 차였는데, 갑자기 저렇게 버릇없는 딸을 보자니 속에서 분노가 폭발하고야 만 것이다.  


"경진 엄마! 내 여권 줘. 한국 갈 거야!"

"아 가긴 어딜 가~!! 아빠가 무슨 애야?! 집에 간다 그러게?! 여기서 한국 혼자 가지도 못하잖아~ 차도 다 여깄는데 아빠만 어떻게 가냐고~!! 아 진짜 왜 그래~!?!!!"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렇게 외국에서 하루새 두 번이나 울고, 엉엉 울면서 아빠한테 서운함을 폭발시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한국 갈 거야로까지 치닫고 만 이 전쟁은 누가 어떻게 수습할 수가 없었다. 성질을 한번 부리면 불같은 여자 친구에게 말이라도 한마디 했다가는 벼락이 쏟아지고 말 테니 운전자는 수수방관, 내 신랑 성질도 알겠지만 내 딸 성질도 보통이 아니니 누굴 먼저 다독여야 하나 하는 엄마도 우왕좌왕, 이 사람들이 왜 여행은 같이 오자 하더니 이렇게 난감하게 만드나 당황함이 역력한 옆집 아줌마도 안절부절. 저녁 먹으러 나가는 동화 같은 마을의 해가 이쁘게 지는 시간, 소문대로 아기자기 예쁘던 그 길은 하필이면 비 소식이 예약된 그날의 날씨만큼이나 먹구름이 잔뜩이었고 내 눈에서는 이미 폭풍 눈물이 먼저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도착했을때만 해도 날씨가 괜찮았는데. 로덴부르크 카린할머니 댁의 정원


정말 별게 아닌 일로 싸움이 시작됐고
길 한복판에서 세상 끝날 것처럼 서럽게 울어놓고
또 별일 없었던 것처럼 싱겁게 끝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경찰서 한번 더 가면 됐다. 어차피 갈 프랑크푸르트, 아빠 말대로 조금 일찍 출발해서 들러보고, 서류 하나 더 써준다 하면 좋은 거고 안되면 마는 거니까 그냥 한번 들러보기라도 하면 되었을 것이다. 혹은, 딸내미 말처럼 이미 하루 일정도 손해 봤는데, 어차피 이것저것 잃어버려 속상했으니 그 참에 그것마저 없어져버렸구나 하고 포기해버리고 뭐 하나라도 더 보면 됐을 일이었다. 어느 쪽이든 그냥 한쪽이 양보하면 쉽게 끝났을 "정말 하찮은 이유"로 이렇게 외국 예쁜 동네에서 엉엉 울고 고성이 오가게 된 것이다.(다행인 건 길에 사람이 없는 한적한 동네였던 것. 아마 사람이 많았더라면 경찰을 한번 더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 외국은 그런 걸로 신고 잘해준다니까 말이다. 후훗)


어떻게 수습되었더라. 그렇게 화가 난 아빠가 앞서 걸었고, "아휴, 그만해~ 니아빠 성질 알잖아~!! 참아~~!"라고 나를 몇 마디 다독인 엄마가 종종걸음으로 아빠 옆을 지켰고, 폭풍 눈물로 범벅이 된 나는 옆집 이모와 운전자가 어찌저찌 어르고 달랬던 듯하다. 그렇게 조금 걸었던 듯하고, 아 진짜 별것도 아닌 걸로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반발의 시작을 후회도 좀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싸우려고 온 게 아닌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자책으로 조금 더 나에게 실망스러워 서글퍼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싸움의 이후는 뜨문뜨문 남아있고 자세히는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이니, 아마 보통의 가족 싸움이 그렇듯 극적으로 화해를 하게 된 계기 같은 것은 따로 없었던 듯하다.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는 엄마와 이모가 저녁을 먹자고 배가 고프다고, 저기 저 레스토랑이 좋아 보인다고 수선을 떠는 덕분에 못 이기는 척, 이끌려 들어가 앉게 되었던가 그랬다. 어쨌든 독일은 맥주이니 맥주를 모두 시켰을 것이고 잠시 떨어져 걷는 동안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여행을 왔다"라는 걸 모두 생각해 냈을 것이고, 그러니 더 이상 심통 부리는 딸은 없었고, 화내는 아빠도 없었다. 짐짓 못 이긴 체 엄마와 이모의 그 수선스러움에 넘어가 주는 척 다 같이 맥주잔을 부딪히며 "짠"을 했고,  "으이그~!! 누구 딸이냐~ 얼굴은 범벅이 되가지고~"하고 풀어주는 아빠의 한마디에 "아빠 딸이지 누구 딸이야! 성질이 똑같잖아"하는 딸의 투정 섞인 대답은 충분히 그걸로 우리의 싸움이 끝났음을 알릴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찾아간 로덴부르크 시내 성곽. 이 길을 가면서 그렇게 눈물을 펑펑 쏟았었지.
전쟁같은 싸움 뒤에 푸짐한 저녁상. 
그래, 에너지 쏟아부어 울고불고 했으니 채워야지!!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는 어색함은 엄마랑 이모의 몫. 사슴 고기란 걸 시켰다는 말에, 독일에 사슴을 다 먹어본다고 괜히 한번 더 호들갑을 떨어주고, 맥주는 역시 독일이라더니 맛이 남다르다고 괜한 감탄을 한번 더 쏟아내는 성격 좋은 두 아줌마 덕에 또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다시 우리 여행의 목적인 "행복"으로 돌아온다. 괜히 마음고생을 시킨 게 미안한 아빠도 어색함을 빨리 지우고자 적당히 호응해주고, 딸은 또 늘 그렇듯 카메라를 들이밀며 사진을 남긴다. 그렇게 가족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빨리 찾아와 적당히 긴장감을 주고 사그라졌다. 



독일맥주 맛 덕분에, 사슴고기 덕분에 그렇게 분위기는 평소로 돌아왔다.

가족여행에서 좀 싸우면 어떤가. 그렇게 싸우고 나서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면 그것도 여행이 주는 선물일 텐데.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남의 집도 여행 가면 다 싸운다. 그게 정상이다. 오죽하면 절친이랑 여행 가서 절교하고 돌아온다고 할까. 다행인 건 가족은 절교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가족이니까. 몰라서 그렇지 한두 번 싸우다 보면 요령도 생기고 멈춰야 하는 순간도 알고 수습하는 스킬도 늘어난다. 그렇게 가족이 싸운 것까지 추억이 되는 게 여행인데, 한두 번 싸울게 무서워 그 좋은 여행을 통째로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피하지 말고 즐기는 쪽을 선택하시길. 우리 집도 그렇게 여전히 열심히 싸우더라도 또 다음 여행엔 다 같이 설렌다. 십 년 차 여행 가족도 아직 클라이맥스의 포인트를 바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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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열심히 벌어 엄빠손잡고 여행가는 효녀 코스프레를 합니다만, 성격은 결코 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여행의 이야기가 또다른 누군가에게도 희망과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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