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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신 Aug 17. 2023

배달대행을 하는 이유

통번역사 세상 살이

최근 배달대행을 하고 있다.


근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배린이의 입장에서 남길 수 있는 한 줄 소감은 


"진작 할걸..."이다.


배달을 하게 된 데는 세 가지 주요 이유가 있다. 


첫째, 운동을 하면서 용돈 벌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현재  12년 차 자전거 라이더이다. 오랜 기간 운동 수단이자 교통 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수원, 서울, 뉴욕 뭐 할 거 없이 어디서든 시내를 오지게도 돌아다녔다. 그리고 질릴 만큼 질려서 운동을 위해 목적지 없이 라이딩하는 게 전처럼 재밌지 않았는데, 목적지로 가득한 배달이 라이딩 의욕에 불씨를 지펴 주었다..


그렇다면 일반 자전거로 배달을 하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쿠팡이츠 기준으로 점심 혹은 저녁 시간 대를 중심으로 달린다면 대략 세 시간에 4만원정도를 벌 수 있다. 


그리고 대략 25 - 30킬로 정도 거리를 타게 된다. 자전거로 이동하면 달리는데 비해 네 배 정도 효율이 좋다고 알려져 있으니, 대략 7킬로 정도 거리를 달리는 운동 효과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운동을 못하면 죄책감이 피어나고 어떤 운동이든 돈으로 시작해야 되는 요즘 세상에 자전거 한 시간 타고 만 3천원을 받는 것에는 시급 이상의 가치가 있다. 소모 칼로리를 기준으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 나쁘지 않은 장사이다.


둘째로, 본업인 통번역 일과 상성이 잘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통번역 일은 일단 머리가 아프다. 너만 머리 쓰면서 일하냐는 말을 듣고 싶진 않지만..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상대방의 말을 듣고 다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이다. 굳이 빗대자면 모의고사 언어영역을 그냥 계속 푸는 느낌이다. 생각보다 빡빡한 정신노동이자 상대에 맞추는 게 우선인 서비스업이다.


반면 자전거 배달은 육체노동 그 자체이다. 가게에서 간혹 주문 코드를 알려줘야 할 때가 아니고는 누군가와 말하거나 대면할 일이 거의 없다. 배달지에서도 주문 고객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초인종을 누르며 배달 완료를 알리면 대부분 대면을 꺼려해 시차를 두고 문을 연다.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은 오히려 천사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음료수를 주거나 엘베를 놓치지 않게 해 주려고 바로 받아 주려는 경우였다.) 


아무튼 그리하여 원격 + 사무실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워크가 아닌 정신 + 육체노동을 오가는 하이브리드 워크가 잘 짜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업무 모두 delivery가 핵심인 것도 비슷하다..


세 번째 이유는 사실 처음부터 생각한 것은 아니고 배달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운동을 위한 것이네 육체노동이 좋네' 하면서 대승적인 이유를 생각하지만 또 막상 하게 되면 하나라도 더 빨리 하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지고 변수가 발생하면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오는 등 은근히 천원 이천원에 또 집착을 하게 된다. 


즉.. 배달을 하고부터 스몰 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고 생각보다 사소하게 쓰던 돈들이 배달 콜수를 기준으로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매머드 커피 매니아가 되고, 점심때 돈까스를 덜 사 먹게 되는 등 돈을 더 쓴다고 그만큼 비례해서 올라가지도 않을 효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PS. 너무 옹호하는 글처럼 읽힐 수 있겠지만, 전업으로 삼게 되면 어떤 다른 일과도 다르지 않은 그냥 일일 것이다. 

특히 일반 자전거로 전업 배달은 불가능할 듯... (먹고살려면 하루에 100킬로씩 타야 함..)

피부를 생각한다면 비추.. (한 달 좀 넘게 땡길 때만 했는데 밤에 얼굴 안보임)

자전거 타는 게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배달을 목적으로 타기 시작하기에는 위험할 수 있다.

요즘 더워서 배달 수요가 많은 것 같은데, 가을 되면 배달보다 외식을 선호하게 되면서 콜 단가가 떨어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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