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교토에 체류하면서 어느 정도 일본어를 말할 수준이 되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영화나 연극 등을 통해 일본어를 배워 보려 합니다.
9월 17일(수) 아사히신문에 영화 ‘국보’ 기사가 실렸습니다. 감독 이름이 ‘이상일’(李相日, 1974~)이어서 의아했는데, 재일교포 3세입니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이 영화는 한국에도 이미 알려졌는데요. 6월 6일 개봉해서 22년 만에 흥행 수익 100억 엔(941억 원)을 돌파한 데 이어 관객 수가 천만 명을 돌파했다는 언론 보도입니다. 9월 15일까지 102일간 1,013만 명, 142억 엔(1,337억 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어제 개막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그저께부터 영화표를 예매하려 했는데, 예매 관련 멤버십 가입이 잘 안 되어 늦었습니다. 컴퓨터가 아니라 휴대폰으로 예매해야 했는데, 화면이 큰걸 선호하다 보니 이런저런 실수가 있었습니다. 배우자가 어제서야 영화 내용을 보고 합류한다는 의사 표시를 하기도 했고요. 함께 예매했으면 50세 이상이라 할인을 받을 수 있었고요. 호적 생일이 12월로 되어 있다 보니 만 60세 할인도 받지 못했고요. 시행착오를 통해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영화는 세 시간 정도(174분)인데요. ‘국보’는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일본어를 잘 몰라도 관람을 시도한 것은 일본의 전통 연극 가부키를 소재로 했기 때문입니다. 볼거리가 있을 듯해서요. 미리 예습을 좀 했습니다.
영화는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부키 명문가에 입양된 후 가부키 배우로서 재능에 눈을 뜨고 그 재능을 꽃피워 인간 국보의 반열에 오르는 키쿠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재능이 있지만 혈통이 없는 키쿠오와 혈통은 있지만 재능은 없는 슌스케의 갈등과 좌절이 큰 흐름을 이룹니다. 제 배우자는 영화 내용을 듣고 드라마 ‘정년이’를 떠올리던데요. 김태리 배우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키쿠오 역의 요지자와 료는 일 년 반 이상 가부키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가부키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는데요. 일본의 전통 연극이란 게 제가 아는 전부였습니다. 가부키 화장 얘기도요. 가부키(歌舞伎)는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연극 형식으로, 약 4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종합 공연예술입니다. ChatGPT 도움이 필요하죠. 가부키 자체가 “노래(歌)·춤(舞)·연기(伎)”를 뜻합니다. 음악·무용·연극이 결합된 형태입니다.
기원은 1603년 교토에서 이즈모 오쿠니(出雲阿国)라는 여성이 신불(神佛)을 기리는 무용을 공연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년 1월에 교토 극장에서 ‘出雲の阿国’이라는 연극을 하던데, 바로 그 얘기겠네요. 꼭 봐야겠습니다. 초창기에는 여성들이 출연했으나, 풍속 문란 문제로 여성 출연이 금지되면서 소년(若衆) 배우, 나아가 성인 남성만이 출연하는 형태로 정착했습니다. 현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08)으로 등재되어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예술로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부키는 남성 배우만 출연해서 여성 역할도 전문 남성 배우인 ‘온나가타(女形)’가 맡습니다. 장국영 배우의 ‘패왕별희’가 생각나네요. 정교하고 화려한 기모노와 과장된 화장, 특히 ‘구마도리’라 부르는 분장이 특징입니다. 진한 화장을 가부키에 비유하는 건 그 때문인 듯합니다. 무대는 회전무대(마와리부타이, 回り舞台), 승강무대, 화로(花道, 무대에서 객석 사이로 난 통로) 같은 독특한 장치를 활용합니다. 음악 면에서는 샤미센(三味線), 북, 플루트 등 전통 악기가 현장에서 연주됩니다. 춤과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가부키 정규 공연은 보통 하루 2~3부로 나뉘며, 한 부마다 3시간 전후라고 하네요. 초심자는 ‘히토마쿠미세키(一幕見席, 1막 관람석)’를 추천하네요. 저렴한 가격(1,000~2,000엔)으로 한 막만 관람할 수 있어 부담이 적다고요. 일본의 3대 전통 연극에서 가부키를 비교한 것도 흥미롭네요. 노(能)는 명상적인 고급 예술이고, 교겐(狂言)은 풍자 코미디, 가부키는 대중적인 종합 오락극이라고 합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이번 달과 다음 달에 가부키 공연 관람 예약을 했습니다.
영화 얘기로 돌아가면, 대사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가부키라는 예술을 향한 한 사람의 인생이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걸 이해한 정도입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가부키 공연 장면이 매력적이었고,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세 시간 가까운 시간이 어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요. 한국에서 상영하면 꼭 다시 보고 싶네요. 가계를 통해 이어지는 일본의 문화를 비판한 면이 있다는 평도 있던데요. 예술의 길이 전력을 다해 인생을 바쳐야 하는 험난한 면도 있는 듯합니다.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고집스럽게 이어오고 즐기며 현대적 예술 장르로 다변화하는 일본 사회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요즘의 ‘K-컬처’의 밑바탕에 전통적인 한국 문화의 부활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사진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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