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스스로 부서질까 내내 두려웠던 나는 딸아이를 힘껏 안았다. 초겨울 아침햇살이 나무 위에 내려앉다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마구 쏟아졌다.
아이는 여백이 가득한 표정을 내보이고는 뒤돌아섰다. 무거운 것들로만 채워진 시커먼 가방을 메고서 저벅저벅 세상을 걸어가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이른 아침햇살이 이미 지쳐 보이는 저 걸음을 휘감으며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 너머 차디찬 건물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건물이 아이를 마침내 삼켜버린다. 어쩌면 아이를 다시 뱉어낼지도 몰라... 복잡해진 내 마음을 건물에 좀 더 비추어보다가 뒤돌아섰다.
천 번을 불러도 내 눈에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 것은...
좀 전까지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는 빈 조수석에 아이의 형상을 음악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찬 바람 탓인지 마음에 물방울이 맺힌다. 머릿속에 안쓰러움의 편린들이 자욱이 서려온다.
도심의 가로수 이파리들과 함께 귀가하는 길. 그들은 나처럼 파르르 흔들리며 위로를 해주었다. 아이도 흔들림 없이 여태의 짐을 내려놓으면 좋으련만, 단 한 번의 시험 앞에 어깨가 짓눌리고 있으리라. 햇살 실린 어깨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기에, 그날 나는 울면서 시험지 없는 시험시간을 겪었다.
한 번의 포옹 후 묵직한 문을 향해 저벅저벅 홀로 걸어가던 그 뒷모습과, 그동안 수고했을 딸에 대한 안쓰럽고도 고마운 마음. 그리고 여러 종교시설에서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 부모들의 기도를 옆에서 듣는 나무들은 그 소리에 제 이파리마저 간절하게 흔들면서도, 기도를 새기는 부모들을 바람으로 잠시 식혀주었다.
비단 기도의 계절이 아니더라도, 자녀가 큰 일을 앞두지 않았더라도, 자녀의 방에 불이 꺼지면 부모 마음에는 기도의 촛불이 켜진다. 기도를 들을 때마다 이파리를 떠는 어느 나무처럼...
해가 지고서야 스스로 부서질까 두려웠던 딸아이를 시험장건물이도로 뱉어내 나뭇가지 사이로 나왔다. 잎사귀처럼 학교를 빠져나오는 아이들 사이에도 내 아이가또렷이 보였다. 여느 아이들처럼 끝났다는 표정을 하고, 가족의 따뜻함을 찾고 있었다.
여백조차 제출하고 나온 표정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저벅저벅 내곁으로 다시 돌아온 아이가 역설적으로 떠날 때보다 어른처럼 느껴져, 나는 다시금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그해길어진 저녁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포용하며 서서히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