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때 나는 타인의 생각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다. 책을 사서 초대해주신 표지를 열면, 글자 위로 다양한 삶들이 떠오른다. 생각을 즐겁게 전해주는 수필도 좋아했고, 무수한 여백 속에 여백만큼의 여운을 남기는 시도 좋아했다.
생각을 바라보다가 여백 위에 뭔가 남겨보기도 했다. 독자는 없지만, 내가 독자이기에 완전한 독서. 일기장은 어떤 말이든 들어주었고, 나는 일기 위에서 여러 의미로 자라났다.
서점 창 안으로 11월 치고 자애로운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고, 자신의 글을 수확해낸 여러 작가들의 소산물을 비추어준다. 사색과 고뇌가 눈물처럼 반짝이고, 나는 한 권의 고뇌를 사서 서점을 나온다.
젊은 날의 나의 일기도, 서점의 햇살을 맞아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아니었다고는 하나 참 소중했던 일기는 우리 집 응달에서만 시간을 보내다, 짐이 되어 버려졌다.
여전히 내 글은 부족하다. 열심히 일기를 써왔던 과거의 나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래도 일기가 버려져서 슬펐던 당시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 내 글은 불타야 할 짐짝 같은 건 아니었다고. 시간이 지나 너의 글은 서점은 아니어도, 발길이 있는 곳에 자리하다 이따금 누군가의 마음에도 닿기도 하는 그런 서투른 풀잎 같은 게 되었을거라고...
긴 생머리에 하이얀 손으로 매일 일기를 쓰는 풀잎같이 여렸던 어느 아가씨에게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