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부터 14년간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1위였던 노키아는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2013년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애플보다 먼저 개발했지만 터치스크린과 모바일 인터넷의 잠재력을 스스로 오판했다
노키아는 2014년 무선 네트워크에 집중하기로 결정하고 사업 구조를 바꿔 2017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하지만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에릭슨·삼성전자에 밀리면서 다시 위기를 맞았다.
2020년 노키아 최고경영자(CEO)에 부임한 페카 룬드마크는 2022년 다보스 포럼에서 의미심장한 발제를 했다. 2030년에는 지금과 같은 스마트폰의 형태가 아니라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메타버스에 접속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5G를 넘어 6세대 이동통신(6G)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노키아의 사례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최고의 기업이라도 미래의 변화 앞에서 발 빠르게 변신을 거듭해야만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다.
넷플릭스를 창업한 리드 헤이스팅스는 창업 당시인 1997년에 이미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감상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당시는 전화선으로 인터넷에 연결하던 때라 우편 배달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지만 2007년에 최초로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출시한다. 아직 이르다는 훈수가 많았지만 이후 넷플릭스는 성공 가도를 달린다.
그는 현재와 같은 TV 시스템은 2030년이 되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시청자는 수동적으로 보는 방식을 말한다. 이 또한 이른 판단이라는 훈수들도 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이 헤이스팅스 창업자는 본인의 예견을 스스로 창조할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은 거대한 담론의 영역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출발한다.
인스타카트는 미국 이커머스 식료품 시장에서 아마존과 월마트보다 앞서가고 있다. 창업자인 아푸바 메타는 여러 사업을 시도하면서 바쁘게 지내던 어느날 냉장고에 식재료는 하나도 없이 소스 한 병만 남은 것을 보고 왜 식료품은 온라인으로 살 수 없을까 생각하고 바로 인스타카트를 창업했다.
인스타카트의 웹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앱)에 입점한 여러 오프라인 매장을 둘러보며 식료품을 골라 담으면 쇼퍼(shopper)가 대신 장을 보고 배달까지 해준다. 창고나 트럭 같은 물류 인프라가 필요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인스트카트는 입점 매장들과 쇼퍼들에게 더 투자하면서 서비스를 차별화했다.
기존 강자들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아마존에 위협을 느낀 월마트는 빠르게 디지털 혁신을 거듭해 리테일테크 기업으로 거듭났다.
로레알은 인공지능(AI)이 피부 상태를 진단해 주는 솔루션을 만들었고 가상으로 메이크업과 헤어 컬러를 체험하는 서비스를 내놓았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2015년에 스스로를 테크 기업으로 선언한 바 있다. 디지털이 주는 미래의 기회를 재빠르게 따라가며 수성하고 있다.
상상의 끝판왕은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일 것이다. 인류가 막연하게 꿈꾸던 미래를 실제로 하나씩 실현하고 있으니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다. 그는 공상과학소설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락거리에 머물렀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을 바꿀 자양분이 됐다.
시장을 과점하고 있던 자동차 업체들이 기득권에 안주할 때 내연기관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며 전기차 시대를 열었고 미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지하를 통해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며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체에 초고속 자율 주행 터널을 만들고 있다.
기술이 물리적인 한계를 모두 없앤다고 전제하면 상상력만이 남는다. ‘웹 2.0’으로 불리는 지금의 세상을 봐도 그렇다. 스마트폰이 등장해 누구나 손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게 되고 누구나 앱을 만들어 올릴 수 있게 되면서, 클라우드를 이용해 초기 투자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되면서 상상력은 머릿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많은 서비스로 탄생했다.
실리콘밸리와 같은 스타트업 생태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전통 기업들도 그들의 데이터를 재발견하고 디지털 기술이 주는 가능성을 깨달으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했다. 18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농기계 업체 존디어는 그동안 축적한 농사 기술, 농장 운영 방법, 토질이나 종자 자료를 이용해 ‘농사를 더 잘 짓게 도와주는 솔루션’을 판매하는 회사로 바뀌었다.
급기야 존디어는 2022년 초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CES)에서 완전 자율 주행 트랙터를 선보이며 최고 혁신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뉴욕타임스도 종이 신문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디지털을 우선하는 전략을 펼쳤다. 사람들이 신문에서 뉴스뿐만 아니라 생활 정보들을 얻는다는 점에 착안해 요리 정보, 십자말풀이 같은 미니 구독 서비스를 선보여 유료 구독자를 대폭 늘렸다.
앞으로도 기술이 펼치는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과 메타버스로 대표되는 ‘웹 3.0’에 대한 기대가 뜨겁다. 초거대 인공지능(AI)·양자 컴퓨터까지 결합된 미래는 그야말로 상상하기 나름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기대감만큼이나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나는 기술 지식과는 거리가 먼데 기회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엘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메타 창업자)와 같이 어릴 적부터 프로그램을 개발한 창업자가 있는 반면 에어비앤비를 창업한 브라이언 체스키는 산업 디자이너 출신이다. 한국을 놓고 보면 마켓컬리를 창업한 김슬아 대표는 투자은행 출신이다.
기술에 정통하고 아니고를 불문하고 공통점은 고객이 아파하는 지점을 파악해 해결했다는 데 있다. 큰 행사 때마다 호텔에 빈 방이 없는 것을 알고 에이비앤비를 세웠고 일하면서 신선식품 장을 보기가 너무 어려워 마켓컬리를 세웠다.
그래도 기술 인력과 대화가 가능한 정도까지는 배워야 한다.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외국인과 비즈니스를 할 수 있을 만큼 언어를 익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획자·비즈니스 전문가·기술자가 모여 수월하게 대화하려면 기술의 배경, 가능성과 한계점에 대해 공통의 이해를 가져야 한다.
데이터가 새로운 석유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에는 남지 않던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고 있고 쌓기만 해서는 소용없겠지만 AI 알고리즘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다양한 쓰임새가 생겼다. 또 AI 서비스를 만들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면 효용이 떨어지겠지만 그래픽 처리 장치(GPU)의 병렬 연산 방식과 AI의 반복 학습 방식 간에 궁합이 맞으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이런 시너지가 비즈니스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자. 온라인 커머스로 성장한 아마존이 오프라인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해 매장 내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손바닥 결제를 적용하는 이유는 결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데이터로 기록하고 온라인에서 쌓은 데이터와 결합해 빈틈없고 끊김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신한은행이 배달 앱인 땡겨요를 출시한 것도 소상공인과 라이더들이 남기는 데이터를 이용해 신용을 정확히 평가하고 합리적인 대출 상품을 제공하려는 목적에 닿아 있다.
난해한 기술 용어에 두려워하지 말고 데이터와 기술이 주는 가능성에 집중하면서 기획자·비즈니스 전문가·기술자가 각자의 전문 지식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조정하는 자리를 반드시 공식화해야 한다.
회사 조직 체계로서 교차 기능팀을 갖추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제도가 아니더라도 이미 많은 프로젝트들은 교차 기능 조직의 형태로 수행된다. 모여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기획자는 기획만 하고 비즈니스 전문가는 검수만 하고 기술자는 개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건설적인 대화를 해야만 서로 배우고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다. 디지털이 펼치는 가능성을 확신하고 계속 배우고 끊임없이 적응해 가는 태도를 가질 때 상상은 조금씩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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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M이 한경비즈니스에 연재한 '이용수의 경영 전략'을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