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2월 시편들에 투영된 생의 나이테와 구원의 문법
[이달의 시] 고독의 동토에서 피어난 불멸의 서정
- 2026년 1·2월 시편들에 투영된 생의 나이테와 구원의 문법
김한빈 (시인•문학평론가)
서론: 겨울이라는 시간의 층위와 문학적 응전
2026년의 벽두에 우리가 마주한 시의 풍경은 유독 시리고도 따스한 감각을 동시에 전해준다. 겨울은 기온이 하강하는 계절적 주기를 넘어, 인간 존재가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고독과 대면해야 하는 실존적 공간이다. 시는 단순히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삶의 벼랑 끝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자들의 치열한 발버둥이자 구원의 문법이다. 이 시평에서는 두 달간 우리를 위로했던 시인들의 목소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그들이 길어 올린 서정의 깊이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세밀하게 살피고자 한다. 특히 1, 2월호의 시편들은 '견딤'과 '비움', 그리고 그 너머의 '환대'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대인의 황폐한 내면을 치유하는 예지적 통찰을 보여준다.
본론 1: 1월호, 시린 새벽에 길어 올린 존재의 화두와 실존적 응시
1월호의 시편들은 새해의 설렘보다 그 마디를 만들기 위해 견뎌온 시간의 무게와 내면의 심연에 주목했다.
김사헌 시인의 「눈사람」은 1월호의 문을 여는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다. "순백으로 부활한 그는 수도승이다/ 뜨거운 심장 하나 제 몸에 가두고/ 녹아내리는 육신으로 침묵의 경전을 쓴다/ 햇살이 비수처럼 꽂힐 때마다/ 그는 비로소 투명한 물로 돌아가 대지의 뿌리를 적신다"라는 표현처럼, 시인은 스스로를 태워 헌신하는 눈사람의 형상을 통해 인고와 소신공양의 미학을 그려낸다. 이는 단순히 겨울의 소품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휘발시키는 성자의 자세를 포착한 것이다. 이러한 사유는 「꽃 피는 뿌리」에서 "어둠 속에서 제 살을 찢어 길을 내는 것은/ 찬란한 꽃잎을 밀어 올리기 위한 처절한 함성이다/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껴안는다"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하며, 1월호 전체를 관통하는 '견딤의 철학'을 선명히 제시한다.
김새록 시인의 「박쥐」는 경계에 선 존재의 실존적 고독을 서늘한 이미지로 포착해낸다. "낮과 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거꾸로 매달려 세상을 읽는 저 서늘한 안구/ 진실은 언제나 뒤집힌 하늘 아래 숨어 있다/ 새도 짐승도 아닌 이름으로/ 오직 어둠의 결을 따라 비행하는 저 처절한 자유를 보라"라는 묘사는 주류 사회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한 현대인의 자아를 투영한다. 특히 시인은 어둠 속에서 홀로 깨어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박쥐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정답이라고 믿었던 가치들의 이면을 응시하려는 치열한 시 정신을 보여준다.
김연희 시인의 「골목」은 사라져가는 풍경 속에서 생의 비망록을 정밀하게 읽어낸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누군가의 주름진 생애가 접혀 있는 시간의 켜/ 막다른 길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낮은 숨소리/ 깨진 기왓장 사이로 돋아난 이끼가/ 지나간 발자국들의 안부를 묻는다"라고 인식하며 상실된 서정을 회복하려 한다. 이는 단순한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속도에 밀려난 것들에 대한 정중한 예우다. 송주은 시인의 「미필적 고의」는 지적인 긴장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일상에서 무심코 저지르는 관계의 훼손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눈빛들이/ 어느새 내 심장을 겨누는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침묵은 때로 가장 잔인한 흉기였다/ 내가 던진 무심한 돌에 정작 무너진 것은 내 안의 성벽이었다"는 통렬한 반성으로 해부한다.
여기에 김순덕 시인의 「설국차」와 김흥규 시인의 「뒷거랑 소고」가 깊이를 더한다. 김순덕 시인은 "눈보라를 우려낸 찻잔 속에서/ 늙은 어머니의 굽은 허리가 향기로 피어오른다/ 쓰디쓴 생의 잎사귀들이/ 뜨거운 물속에서 온몸을 풀며 화해의 빛깔을 낸다"며 혹독한 환경에서 피어난 차 한 잔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엮는 인고의 미학을 전한다. 김흥규 시인은 유년의 기억이 서린 '뒷거랑'을 통해 "흘러가는 것은 물이 아니라/ 제 몸을 깎아 하류로 나아가는 존재의 파편들이다/ 웅덩이에 고인 적막조차/ 다음 여정을 준비하는 깊은 숨고르기였다"라며 생성과 소멸의 우주적 섭리를 철학적으로 사유한다. 또한 노순자 시인의 「이중인격자」는 "화려한 가면 뒤에 숨은 일그러진 본능/ 거울 앞에서조차 낯설어지는 타인의 얼굴/ 우리는 누구나 가슴속에/ 길들지 않은 짐승 한 마리를 키우며 산다"를 통해 인간의 모순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손선자 시인의 「지금 나 어디까지 왔을까」는 "절벽 끝에서 만난 바람이/ 내게 묻는다, 그대의 나침반은 아직 살아있는가/ 굽이진 길마다 뿌려둔 눈물들이/ 이제는 길을 밝히는 이정표가 되어 반짝인다"라는 정직한 물음으로 위안의 불씨를 지핀다.
1월호의 시적 풍성함은 계속된다. 김수민 시인의 「기울어진 나의 지구」는 "욕망의 무게로 축이 틀어진 행성 위에서/ 우리는 각자 위태로운 평형을 잡고 있다/ 한쪽으로 쏠린 사랑과 비대해진 자아가/ 지평선을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며 탐욕의 무게로 인해 빛을 잃어가는 지구적 자아를 성찰한다. 윤여용 시인의 「겨울 정취의 밤」은 추위 속에서도 행복의 꿈을 꾸는 강인한 생명력을 노래하고, 김원용 시인은 「고맙습니다」를 통해 "무너진 담벼락 사이로 스미는 달빛조차/ 상처를 어루만지는 신의 손길임을 이제야 안다/ 고통의 끝자락에서 만난 작은 풀꽃 하나가/ 내 생의 가장 눈부신 은총이었다"는 근원적 감사를 전한다. 김지원 시인은 「느린 숨결을 걷다」를 통해 속도 맹신주의에 대한 우아한 저항을 보여주며, 최매실 시인의 「공영장례」는 "이름 없는 명패 위에 내려앉은 먼지/ 누구도 마중 나오지 않는 마지막 여행/ 차가운 수의 한 벌에 담긴 생의 무게가/ 겨울 강물보다 무겁게 가라앉는다"라는 소외된 죽음을 향한 서늘하고도 치열한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그늘을 직시하게 한다.
1월호의 시적 풍경을 완성하는 나머지 필진들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우선 손순이, 안영철, 이효애, 최진환 시인은 우리네 삶의 비속함과 숭고함이 교차하는 현장에 밀착한다. 추억의 맛을 길어 올린 호박죽(손순이)과 "빈 수저 위에 얹힌 삶의 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모여 한 편의 교향곡이 된다/ 밥그릇에 담긴 것은 허기가 아니라/ 생을 지탱해온 눈물겨운 리듬이다"라는 수저에 곡을 붙이는 소소한 감성(안영철), 게으른 나무늘보 같은 일상을 깨우는 채찍(이효애)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시어는 구체적인 삶의 비유로 가득하다. 특히 "점잖은 가식의 옷을 벗어 던지고/ 흙바닥을 뒹구는 저 순수한 헐떡임으로/ 꼬리 흔들며 주인의 발치를 핥는 저 투명한 진심으로" 개같이 살고 싶다는 파격적인 역설을 던진 최진환 시인의 해학은 실재하는 삶의 온기가 무엇인지를 역설하며 사람 냄새를 더한다.
한편 신미선, 우창수, 이재유, 정길언, 정사라, 한영희 시인은 내밀한 형이상학적 사유로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다. 구름의 호흡을 듣는 그네의 비유(신미선)나 붉은 잡초처럼 흔들리는 고독(우창수), "보이는 것들이 모두 허상임을 알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진실의 문이 열린다/ 집착의 끈을 놓는 순간/ 우주는 내 안에 들어와 정좌한다"며 허상과 무상의 경계를 묻는 일념(이재유)은 1월호의 지적인 층위를 깊게 만든다. 또한 응급실의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응시(정길언)와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빛의 민낯(정사라), 꼬인 새끼줄처럼 엉킨 삶의 흔적(한영희)을 노래한 시편들은 고통의 심연조차 시적 승화의 재료가 됨을 증명하며 풍성한 사유의 장을 완성한다.
본론 2: 2월호, 고독의 텃밭에서 피어난 화해와 예지적 서정
2월호의 문학적 무게 중심은 단연 김철 시인의 「김수영」에 있다. "죽음조차 시인의 영혼을 가둘 수 없어/ 56년 전의 그 풀잎이 다시 눕고 일어선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그 불멸의 푸른 울음을 보라/ 비겁한 침묵의 시대에/ 그는 다시 살아나 거친 복음을 전한다"라는 구절은 상주사심(常住死心)의 철학을 선명히 드러낸다. 죽음을 늘 곁에 두고 삶을 경건히 대하는 태도는 불멸하는 시 정신이 역사의 파고를 넘어 이어지는 문학사적 사건이다.
박희자 시인의 「그믐달」 역시 "기울어졌다고 서러워마라/ 네 몸도 한 때는 찬란한 보름달이었으니까/ 어둠 속에 제 몸을 깎아 바치는 것은/ 새벽을 데려오기 위한 마지막 산고다/ 작아질수록 깊어지는 저 눈빛을 보라"라는 구절로 노년의 쇠락을 성숙한 준비 과정으로 격상시킨다. 이는 생의 황혼기에 선 이들에게 바치는 우주적인 위로다. 공가람 시인의 「당당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세요」는 이러한 위로를 '환대'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시인은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세계를 향해 압도적인 개방성을 선언한다. "비바람에 젖은 어깨도, 먼지 쌓인 구두도/ 그대로 두지 말고 당당히 문을 열고 들어오라/ 마음의 지붕 아래 당신을 위한 의자는 늘 비어있다/ 문턱을 넘는 순간 당신은 이미 나의 집이다"라는 초대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바치는 뜨거운 격려다.
권미숙 시인의 「비워져 가는 들녘」은 비움의 미학을 완성한 수작이다. 시인은 "추수가 끝난 자리는 결핍이 아니라/ 더 큰 환함을 맞이하기 위한 거룩한 여백/ 비워낼수록 채워지는 것은 우주의 숨결이다/ 남겨진 이삭 하나가/ 굶주린 새들의 저녁 성찬이 되는 기적을 보라"라고 선언한다. 소유에 집착해온 우리 삶에 묵직한 경종을 울리는 이 작품은 텅 빈 공간이야말로 가장 화려한 탄생의 요람임을 증명한다. 김정숙 시인의 「섬에 사는 울음」은 고립된 존재의 비명이 어떻게 시적 승화에 도달하는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섬이라는 공간을 내면으로 치환하여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독을 '울음'으로 형상화한다. "바다를 건너가지 못한 울음들이/ 갯바위 틈마다 소금기로 굳어 반짝인다/ 그리움은 결국 제 몸을 태운 결정체였다/ 소금기가 쓰라릴수록 울음은 더 단단한 보석이 된다"는 표현은 슬픔조차 결정체로 만드는 서정적 저력을 증명한다.
이어 이말례 시인의 「그것의 끄트머리」는 사물의 가장자리에서 발견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 "가장자리에 머물러 본 자만이/ 중심의 위태로움을 읽어낼 수 있다/ 끄트머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매듭이다/ 벼랑 끝에서 피어난 꽃이 가장 향기롭다"라는 통찰은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시인만이 건넬 수 있는 전언이다. 도상태 시인의 「혈세」는 강렬한 현실 비판과 풍자적 미학을 보여준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앗아간 온기가/ 누군가의 화려한 성벽을 높이는 벽돌이 된다/ 우리 시대의 시는 이 눈물을 닦는 손수건이어야 한다/ 빼앗긴 들에도 시인의 붓끝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진술은 시인이 공동체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시단에 건강한 자극을 선사한다. 박순옥 시인의 「추석 그후」는 축제 뒤의 적막을 다루고, 황윤택 시인의 「오답의 미학」은 "정답만을 쫓아 달려온 길 위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 오답의 숲에서 길을 잃을 때 비로소 꽃을 본다/ 틀린 답들이 모여 내 생의 가장 정직한 지도가 된다"며 실패를 긍정한다.
앞서 살펴본 시인들의 화답에 이어, 2월호의 시적 영토를 완성하는 나머지 목소리들은 크게 두 부류로 수렴된다. 우선 윤유점, 김구림, 배상구, 문금영, 노옥분 시인은 삶의 구체적인 결핍을 성찰의 동력으로 삼는다. "냉동고 속 꽁꽁 얼어붙은 말들을/ 회개의 눈물로 하나씩 녹여낸다/ 인연의 고리마다 맺힌 성에를 닦아내며/ 비로소 따뜻한 악수를 준비한다"(윤유점)는 인연의 참회와 미래의 불안을 직시하는 빗소리(김구림), "하얀 종이 위에 붉은 피로 써 내려간 연민/ 찢겨진 문장들 사이로 흐르는 타인의 슬픔"(배상구)과 삶의 정점에서 깨닫는 구간단속의 지혜(문금영), 그리고 마음 하나로 이슬 나이테를 새기는 안목(노옥분)은 각박한 현실을 견디게 하는 단단한 성찰의 힘을 보여준다.
한편 박송죽, 이성의, 곽현의, 김숙자, 김월강, 이복심, 현옥환 시인은 정화의 미학을 지향한다. "세포 하나하나가 우주의 리듬에 맞추어/ 공생의 춤을 추는 영혼의 새벽/ 나를 지우고 우주로 채우는 시간"(박송죽)과 서운암 뒤뜰에서 우주의 모난 돌을 다독이는 시선(이성의), "지나온 청춘의 텃밭에 뿌려진 것은/ 미움이 아니라 자비의 씨앗이었다/ 용서라는 물줄기가 메마른 가슴을 적신다"(곽현의)는 자비의 예지와 상상을 수호하는 겨울 독서(김숙자)는 존재의 경건함을 자아낸다. 또한 "거미줄처럼 얽힌 인드라망의 인연 속에서/ 너와 나는 결국 하나의 숨결이다/ 어느 한 줄만 끊어져도 온 우주가 아프다"(김월강)는 연대의 가치를 일깨우며, 맨발로 걷는 치유의 바다(이복심)와 유채꽃 강변에서 생의 봄을 반추하는 서정(현옥환)은 2월의 시적 풍경을 찬란하게 완성한다. 마지막으로 정웅규 시인은 「망덕포구에서」를 통해 "찢긴 나뭇가지마다 시의 등불을 건다/ 어둠이 깊을수록 등불은 더 선명한 문장이 된다/ 물결 위에 쓴 시들이 등대가 되어/ 길 잃은 영혼들을 집으로 부른다"며 시인의 소명을 다짐한다.
결론: 오답의 길에서 만나는 사람 냄새와 서정의 구원
지난 1월과 2월, 우리는 수많은 시인의 문장을 통해 겨울을 통과하는 법을 배웠다. 시인들이 보여준 태도는 차가운 현실에 대한 회피나 무기력한 절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상처를 생의 나이테로 당당히 받아들이고, 비워진 들녘에서 새로운 환함을 발견하며, 기우는 달 속에서 새벽의 징조를 읽어내는 역설적 긍정의 자세였다.
2026년 초의 부산 문단의 시학이 도달한 지점은 결국 정답만을 강요받는 각박한 효율의 세계에서 벗어나, 기꺼이 길을 잃고 오답들 사이를 걸으며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 냄새 나는 연대였다. 문학은 우리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위로하고 지탱해 준다. 시인들이 꽁꽁 언 손으로 써 내려간 이 이슬 나이테들이 독자들의 가슴 속에서 환한 꽃비로 흩날리기를 소망하며 시평을 마친다. 우리가 마주한 이 시린 겨울은 결코 끝이 아니라, 가장 뜨거운 봄을 잉태하기 위한 침묵의 시간임을 이 시편들이 증명하고 있다. "시인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의 겨울은 결코 어둡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