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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Mar 08. 2017

호세 카레라스의 '마지막' 기립박수




 호세 카레라스의 '마지막', 
예술의전당에 '기립박수' 터졌다




[공연 리뷰] 테너 호세 카레라스 마지막 월드 투어 < A Life in Music >


보기 전부터 짠해지는 공연이 있다. 전설의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마지막'이라는 타이틀로 투어공연 중이다. 세계가 사랑하는 이 음악가의 무대가 이제 마지막이라니. 그의 목소리를 한 공간에서 직접 들을 기회가 더 없을 거라고 하니 마음이 허전해진다. 지난 4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는 이런 마음을 안고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빈자리를 찾기 힘든, 말 그대로 만석이었다. <호세 카레라스 마지막 월드 투어> 한국공연 현장을 전한다. 


전설의 테너가 보여준 '열정', 객석은 '열광의 도가니'


▲ 호세 카레라스2017년 3월 4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테너 호세 카레라스의 마지막 월드 투어 공연이 열렸다. ⓒ 크레디아
▲ 객석의 기립박수를 받고 있는 호세 카레라스. 행복한 표정이었다. ⓒ 크레디아


'열광의 도가니'라는 표현. 웬만해서 클래식 공연 리뷰에 쓰지 않는 말일 테다. 아이돌 공연에서나 쓸 법한 이 표현이 호세 카레라스의 공연에 딱 맞게 쓰일 줄이야. 그런데 정말 그랬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풍경이 맞나 싶은, 기립박수 장관이 펼쳐졌다. 카레라스가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을 끝내자 객석의 반이 일어났고, 이후 앙코르 무대가 끝나고선 전원 기립했다. 한국 팬들은 전설의 마지막을 이토록 뜨거운 박수로 배웅했다.


이날 공연은 주인공 호세 카레라스를 필두로 소프라노 살로메 지치아가 함께 노래했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데이비드 히메네스)가 연주했다. 카레라스는 코스타의 '5월이었네', 그리그의 '그대를 사랑해', 미치 리의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중 '이룰 수 없는 꿈', 발렌테의 '열정' 등을 혼자서 불렀다. 


1946년생인 이 음악가는 생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쩌렁쩌렁한 성량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섬세하게 감성을 다루고 표현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생의 활기 같은 게 느껴졌다. 특히 절제 중에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터뜨릴 때는 가사를 못 알아들을지언정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이야기'가 그려졌다. 세계의 많은 평론가와 음악팬들이 그를 일컬어 우아하고, 아름답고, 로맨틱한 목소리의 테너라고 부르는 게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니 알 것 같았다. 표현의 섬세함이 뛰어났다.     


카레라스는 소프라노 살로메 지치아와 함께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사티의 '당신을 원해요'를 비롯해 클래식 메들리와 앙코르곡들을 그녀와 듀엣으로 부르며 풍성한 무대를 선물했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두 성악가의 하모니가 부드럽고 매끄럽게 섞였다. 살로메 지치아의 솔로 무대도 객석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카레라스가 2부에서 발렌테의 '열정'을 불렀을 때 관객의 환호가 크게 터졌다. 환호는 점점 더 뜨거워졌는데, 프로그램의 끝 곡으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불렀을 땐 앞서 말했듯 객석의 반 정도가 기립했다. 이날 카레라스는 앙코르로 무려 6곡이나 불렀다. '전설의 테너'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선물을 줄줄이 내어놓자 관객은 박수로 모자란 듯 환호성을 질렀다. 마지막 앙코르곡을 끝냈을 때는 3층까지 전원 기립박수가 터졌다. 진풍경이었다. 카레라스는 오래도록 그 풍경을 마음에 담는 듯했다. 


'쓰리 테너' 막내는 은퇴를 선언한 걸까


▲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2일 오후 마지막 월드 투어 기자간담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정민
▲ 테너 호세 카레라스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쓰리 테너'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 이정민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세계 3대 테너다. 세계가 사랑한 이 전설의 '쓰리 테너'는 분명 서로 라이벌이었지만 '축구 사랑'으로 똘똘 뭉친 형제이기도 했다. 맏형인 파바로티는 '유벤투스', 도밍고는 '레알 마드리드', 막내인 카레라스는 'FC 바르셀로나'의 열혈 팬이다. 세 테너는 15년 동안 함께 활동하며 월드컵 기념 무대 등에서 같이 노래했다. 지난 2007년 맏형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났고, 올해 76세인 도밍고는 이미 마지막 한국 공연을 지난해에 가졌다. 이제 만 70세의 막내 카레라스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마지막 공연을 연 것이다.


'마지막'이란 말은 곧 '은퇴'라는 의미일까? 공연 이틀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의 대답을 직접 들었다. 지난 2일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카레라스는 은퇴라고 못 박지도 않았지만 곧 은퇴가 다가올 것이란 걸 부정하지도 않았다. 


"이 투어가 2~3년 정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월드 투어가 끝나면, 그때가 되면 정말로 제가 은퇴할 시기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우수에 젖곤 합니다. 인생의 이치니 어쩔 수 없겠지요. 다만 제가 프로로서 은퇴를 한다고 해서 공연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백혈병 재단 등 자선공연은 계속 할 것입니다. 47년간 프로로 활동한 것에 무척 감사하며,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퇴를 하게 된다면 그날은 행복한 날이지 슬픈 날은 아닐 겁니다."


카레라스는 1987년, 한창 세계무대에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때 백혈병으로 쓰러졌다. 병마와 싸웠고 기적처럼 무대로 복귀했다. 이후 그는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워 전 세계 백혈병 환자에게 희망을 보태왔다. 이날 간담회에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레퍼토리"를 묻자 "한 곡을 꼽는 건 무척 어렵다"며 "다만, 투병 때문에 한동안 무대에 못 서다가 재기하여 무대에 섰을 때의 감격은 잊지 못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신께서 목소리 허락하는 한 계속 노래할 것


ⓒ 이정민
▲ 소프라노 살로메 지치아(왼쪽)와 테너 호세 카레라스. ⓒ 이정민


이번 공연에서 카레라스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곡들을 선별해 들려줬다. 간담회에서 그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과 함께했던 곡들을 선보인다"며 "하나하나가 역사적으로 내게 중요하고 추억을 준다"고 말했다. 카레라스는 "처음에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기 때문에 그곳이 제 근원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카레라스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났고, 1970년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에서 오페라 가수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줄곧 프로로 활동해온 카레라스에게 "아직도 노래 연습을 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 질문에 카레라스는 "당연히 연습한다"며 다음처럼 덧붙였다. 


"'목소리'란 단어가 여성명사입니다. 목소리는 여성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다뤄줘야 하죠. 어떤 때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 어떤 때 쉬어줘야 하는지 판단해서 연습합니다. 공연 때마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추가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듣기에 아름답게 여겨지는 노래를 추가하려고 합니다."


카레라스는 예전에 가졌던 느낌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데뷔 때부터 제가 느끼는 감정을 관객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며 "무대에 대한 열정은 데뷔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언제까지 노래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답했다. 


"며칠 전에 테너 도밍고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언제까지 노래할 것이냐는 질문에 도밍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께서 나에게 노래할 수 있는 목소리를 남겨주는 한 노래할 것"이라고요. 그 대답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 호세 카레라스는 "1976년 오페라 <토스카>를 공연하기 위해 한국에 첫 방문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 무대를 찾았다"고 말했다. ⓒ 이정민
▲ 전설의 테너 호세 카레라스가 47년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마지막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 3월 4일 공연을 펼쳤다.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공연이었다. ⓒ 크레디아


기사입력 17.03.0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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