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절대
끌리지 않는 것에
끌려가지 않아
국내 음원차트는 'Kitsch(키치)'와 'I AM(아이엠)'의 1위 쟁탈전 양상이다. 하지만 어떤 곡이 1위를 해도 그건 IVE(아이브) 곡이다.
데뷔곡 'ELEVEN(일레븐)'부터 'LOVE DIVE(러브 다이브)', 'After LIKE(애프터 라이크)'까지 데뷔 1년도 채 안 돼 3연속 홈런을 친 아이브가, 이번에도 대형 홈런을 치면서 대세임을 입증했다. 대체 아이브의 어떤 매력에 대중은 열광하는 걸까.
아이브 측은 스스로 그 매력을 '자기애, 자신감, 자유'라고 정의한다. 이 키워드를, 발표하는 매 곡마다 녹여내 당당한 자기 확신과 사랑에 대한 주체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 이것이 대중에 아이브가 어필한 포인트고, 결과적으로 보면 잘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첫 정규앨범 <아이해브 아이브(I've IVE)> 역시도 '자기애'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자신감이 핵심이다.
모두 맞는 분석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성숙한 가사가 다른 어떤 것보다 아이브의 인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전작 '애프터 라이크'에서 "두 번 세 번 피곤하게 자꾸 질문하지 마/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라는 구절이 밈으로 유행했을 만큼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혔는데, 이렇듯 아이브 곡의 노랫말들은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똑 부러짐이 있다. 사랑받길 갈구하는 수동적인 소녀의 여림이 아니라, 상대에게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써 어퍼컷을 날리는 힘이 있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이 아닌, 알 것은 아는 성숙함이다.
아이브가 'MZ 워너비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데는 이렇듯 '할 말 하는' 짜릿한 가사가 한몫했다. 이번 신곡 '키치'에서도 이런 똑똑한 가사가 여러 군데서 눈에 띄었다.
"난 잘 살아 내 걱정은 낭비야/ 네가 보낸 DM을 읽고 나서 답이 없는 게/ 내 답이야"
이런 노랫말을 듣고 있으면 막 스무 살이 된 MZ 세대가 내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당돌함에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럽기도 하고 속으로 '뭐지?' 싶지만,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냥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DM을 읽었는데도 왜 답장이 없느냐 묻는 말에 "답이 없는 게 내 답이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어떤 말을 더 할 수 있겠나. 똑똑함에 항복이다.
"My favorite things 그런 것들엔 좀/ 점수를 매기지 마"
이 대목도 흥미롭다. 점수 매기고 줄 세우기 좋아하는 기성세대에게 한 방 날리는 것 같기도 하고,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인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친구에게 한 방 날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달콤한 말, 뒤에 숨긴 너의 의도대로/ 따라가진 않을 거야/ 난 똑똑하니까"
"난 절대 끌리지 않는 것에 끌려가지 않아/ That's my style"
나는 이 부분 가사를 듣고 심지어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살면서 내가 끌리지 않아도,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남에게 끌려갈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 가사를 듣는 순간 '그렇게 좀 살지 마' 하고 꾸지람을 듣는 듯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타인의 말에 순응하는 '착한 아이 증후군'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가사에 뼈를 맞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브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을 지속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키치'는 비록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아이브의 이러한 정체성과 메시지를 확실하게 품고 있는 곡이라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뭐 어때", "쓸데없는 생각 따위 Go away"라는 직접적 표현의 가사를 통해서도 이들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다.
아이브의 '뼈 때리는' 어퍼컷 가사는 더욱 MZ스러워지고 싶은 주눅 든 MZ에게도, 처음부터 당당함을 모르고 살았던 MZ 아닌 세대에게도 고루 통하는 한 방이다. 아픈데도 계속 맞고 싶은 마력의 한 방.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 손화신 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