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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 Aug 16. 2023

프로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아는 동생이 하나 있는데, 하는 말이나 행동이 귀엽다. 자신의 삶과 소속된 세상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모습이 놀이터에서 진지하게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를 닮았다. 친구는 기자를 준비하고 있다. 얼마 전 연락을 해왔다.


"언니 프로란 뭘까."


나는 이 질문을 보자마자 웃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정말 그 동생다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찰하고 누구보다 진지한 자세로 임하려는 사람, 나와 닮은점이라곤 없지만 옆에 두고 보고 싶은 사람,  이 진지한 질문에 농담을 던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진지한 답변을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 잘 들어 뚠뚠.


뚠뚠은 대학원 동기이자, 나의 첫 룸메이트였다. 대학원에는 뚠뚠이 존경하는 기자 출신 교수가 있었다. 그는 (글쓰기 평가에 인색한 내가 보기에도) 글을 잘 썼다. 그리고 (사이비 교주처럼) 말도 잘하는 편이었다. 사람을 홀린다고 해야 할까. 내 순진한 친구가 그에게 매혹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매혹, 아주 적확한 표현이다. 뚠뚠은 교수의 삶에 닿고 싶어했다. 글을 향한 동경은 교수를 향한 동경이 되었고, 그가 하는 말은 기자를 꿈꾸는 뚠뚠의 지침서가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프로'로 규정짓고, 우리에게도 프로의 삶을 살라고 자주 말했다. 그가 정의하는 프로는 그때 그때 달랐다. 때로는 '장인정신'을 떠올리게 했고, 때로는 찰리 채플린 영화가 떠오르는 기계적인 삶을 연상시켰다. 글쓰기에 대한 감수성 어린 시각은 예술가를 떠올리게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교수는 사람을 말로 홀릴 줄 아는 사람이다. 교수의 말은 준비생인 우리에게 프로에 관한 느낌적인 느낌을 심어줬고, 프로란 이상을 각자 그리게 했다. 솔직히 알맹이는 없었다.


최근 교수가 소셜미디어에 '프로'에 관한 단상을 올리면서 그가 생각하는 프로의 윤곽을 조금 더 정확하게 잡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인간관계에 관한 단상이었는데, 그 안에서 프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3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주변에 어떻게든 자기 사람을 두려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그 욕심 때문에 오히려 인간관계를 그르친다. 두 번째는 주변에 사람을 아무도 두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은 혼자서 세상을 왕따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외롭다. 마지막은 주변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두는 사람이다. 너무 가까워져서 실망하는 일도 없고, 자신의 삶을 잘 유지한다. 그리고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태도'를 갖췄다 말한다.


인간관계와 프로페셔널,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란 말인가!


뭐,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상대편을 일로 놓고 본다면 그가 생각하는 프로란 무엇일지 알 수 있다. 첫째, 일에 매몰되서는 안 된다. 둘째, 일과 멀어진 사람은 당연히 프로가 될 수 없다. 셋째, 일과 일상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꾸준히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의 일상화를 위한 거리감'과 '이를 바탕으로한 꾸준함' 그가 생각하는 프로페셔널의 삶일 것이다.


나는 뚠뚠이 이 사실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뚠뚠은 프로의 삶을 이미 실천하고 있다. 그러니까 교수의 말을 정리해 주려고 이 글을 쓴 게 아니란 거다. 너가 동경했던 그 교수, 그리고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동경의 눈길을 보내는 그 교수가 너의 눈 앞에 펼쳐놓은 장밋빛 장막을 찢어주마.


교수가 칭찬한 학생들을 알 것도 같다. 그 학생들은 주변 사람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려고 하지도 않고 너무 멀리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았다. 항상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해냈다. 교수의 거리에서 지켜보면 그랬다. 옆에서 함께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한편 그들은 인간관계에서는 소심했다. 속으로 사람들이 다가와주길 간절히 바랐지만, 이를 티내기는 자존심이 상하는지 친구들을 조용히 관찰했다. 그러다 말을 걸어주면 설레는 눈빛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이들처럼 재밌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공부했다. 불안하고 소심한 프로들이었다.


그렇다. 교수는 불안정하고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는 혼자 다니길 좋아하고 학생들이 말 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티를 팍팍 냈는데, 비 오는 날에는 오렌지 색 비옷을 입고 다녔다.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니, 분명 취향이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 이후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취향을 나타낸다고 했다. 그 눈에 띄는 오렌지색의 취향이란,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길 간절히 바라는 욕망을 마구마구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불안정하고 소심한 자신의 성격을 '프로'로 정당화하는 (위기의) 중년 남성에 불과했다.


여기까지가 내 진심, 아니 주관이었다. 주관은 아무런 진실을 담고 있지 않으며, 교수의 말대로 객관, 사물의 실체를 고찰할 때만이 진실은 드러난다.


교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프로다. 그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에서 한 획까지는 아니고 (거대한) 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의 저널리즘 사상은 전염성이 강한 모낭염처럼 한국 저널리즘 토양에 내러티브 저널리즘이 피어나게 도왔다. 그리고 그의 (사상을 어렴풋이 담고 있는) 에세이는 쿤데라를 (진짜 아주 조금) 닮았다. 사람의 속물적 속성을, 그것도 자신의 일화를 통해 지독히도 잘 풀어낸다. 그는 프로다.


그렇다면 그는 어쩌다 프로가 된 것일까? 타고난 것일까, 만들어진 것일까? 그는 타고난 관찰자이고, 사상가이며, 글쟁이다. 그러나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한국 언론계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독에는 소질이 없었다. 또한 대학생 때 막스주의자로 혁명과 민주화를 외쳤지만, 세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옆에서 관찰하며 추측하건대, 그는 사회적 맥락보다 개인의 심리적 맥락에 더 예민하다. 즉, 기자로서는 타고나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히 기자가 되었고, 그래서 조금 많이 헤맸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했다.


교수는 기자를 그만둘까 고민할 때쯤 가난을 처음으로 마주했다. 물론 빈부격차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이를 마주하긴 처음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한국 언론계에는 낯선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저널리즘이 담겨있었다. 사회적 맥락 속에 탄생한 가난, 그 가난 속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 그는 사람을 관찰하는 일에 소질이 있었을 뿐인데, 우연히 '가난'의 맥락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기자의 글쓰기 세계로 부름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운이 좋았던 것이다!


카메라 렌즈를 상공으로 올려보자. 대류권을 넘어, 성층권으로, 그리고 우주로. 교수는 70억 인구 중 한 사람이다. 70억 인구의 삶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비슷하다. 그들의 삶은, 아니 우리의 삶은 '드라이 리허설'과 같다. 엉망진창이다.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인생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려온 스케치는, 그리고 앞으로 그리게 될 삶의 스케치는 조악하기 짝이 없다. 그 교수도 마찬가지다.


교수가 처음 대학원에 왔을 때가 기억난다. 그는 수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몰라 숨어다니는 느낌이었다. 쉰 살 가까운 어른이 낯가리는 모습이란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학생들한테 낯을 가리는 쉰을 보고 있자면 내가 더 민망했다. 그리고 새로 개설한 수업은 형편 없었다. 저널리즘에 관한 생각은 머릿속에 분명히 있었지만, 그것을 언어화하는 단계까진 이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는 교수로서의 스케치를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가 학생들에게 말해준 프로란 기자로서의 스케치를 이리 맞춰보고 저리 맞춰보며 깨달은 단상의 합일 뿐이다. 열정과 꾸준함이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 건 사실이지만, 그 역시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몰랐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듯이 그는 우연히, 진짜 우연히 아마추어 기자들이 동경하는 프로의 길을 걸은 것이다.


그러니까 뚠뚠, 너는 너가 꿈꾸는 프로가 될 수 없을 거다. 너가 존경하는 교수님들에게 물어봐도, 그들도 제대로된 답변을 주지 못할 거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너가 너만 걸을 수 있는 프로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믿는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네 믿는대로 될지어니.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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