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산(金丹山)

<2013. 에세이문예 문학상 수상작>

by 원당

역사는 그 시대의 사건을 기록한다. 그리고는 믿으라 한다. 산 또한 그렇다. 저마다 고유한 색깔이 있는데 보는 이마다 해석이 다르다. 풀이건 나무건 돌멩이든 그 모양새가 어떻든 찾는 이의 기분이나 입맛에 따라 좋다, 나쁘다 이름표가 붙여진다. 산을 찾는 사람에 의해 산은 맛을 달리한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음식을 대할 때면 포장지와 내용물을 먼저 살핀다. 상하지 않았을까, 입맛엔 맞을까 하고. 지금 오르는 산도 처음 대하는 산이라 인스턴트식품을 손에 쥘 때처럼 마음이 편치 않다. 산객이 많을까, 단무지처럼 달착지근한 볼거리는 있을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그러면서도 햄이나 고기 조각 같이 씹히는 맛이 있는 산이겠지 하며 기대감에 들뜬다.

산으로 향하는 길에 맑은 못이 있다. 그 뒤로는 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풍경이 어느 산과 별다르지 않아 만만해 보였는데 몇 발짝 떼지 않아 숨이 턱턱 막힌다. 해발 753m 정도로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라 여겼는데, 예사롭지 않은 산명(山名)처럼 들머리부터 가풀막이 이어진다. 구불구불한 길일지라도 한옆에 야생화가 반기고, 중간중간 널찍한 바윗돌이라도 놓여 있어 쉬게 하면 좋으련만 그것조차 내놓지 않는다. 지난가을에 떨어져 쌓인 낙엽마저 심술을 부린다.

한참을 걸어도 고풍스러운 소나무나 기암절벽을 볼 수 없다. 하늘이 닿는 능선에 올라도 나무와 풀만 우거져 답답하기 그지없다. 낙엽이 쌓여 걷기조차 어려운데 길 군데군데 날짐승들의 배설물이 쌓여 있다. 그런데다 고라니나 너구리가 드나드는 굴까지 보인다. 유배지로 떠나던 정객의 심정이 이럴까. 가끔가다 새가 날며 산객의 마음을 달래지만 등산객마저 보이지 않아 고행길이나 다름없다.

익숙한 것에 길들여 살았나? 산에 오르면서도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데도 엉뚱한 길로 들어선 게 아닌가 하여 자꾸 뒤돌아본다. 별 재료를 넣지 않아도 서로 대들어 먹겠다고 아우성치는 ‘엄마 표 밥상’이나 ‘아내 표 김밥’의 느낌이 들지 않아 자꾸만 두리번거린다. 만남은 기쁨이나 즐거움을 얻는 동시에 낯섦과 부담감을 떠안게 하나 보다.

괴산군 청천면과 보은군 산외면에 걸쳐 있는 금단산(金丹山). 최근에야 괴산 35 명산(名山) 중의 하나로 지정되어 산객을 불러들이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나 보다. 등산하다 보면 길목마다 어느 산악회에서 다녀갔다고 나뭇가지에 보람을 달아놓는데 그런 흔적조차 드문 데다 있어도 오래되어 색마저 바랬다. 오래 비워둔 집의 문짝이 바람에 일렁이듯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듯하다. 산으로 접어드는 마을 입구에 자리한 사담이라는 못에도, 그 맞은편 도명산이나 낙영산에도 산객이 넘쳐나는데 그곳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얼큰한 김치찌개처럼 누구에게나 호감이 가는 산이 있다. 간이 들지 않은 깍두기처럼 밋밋한 산도 있기는 있다. 금단산이 내게 되묻는다. 어느 산에 갈까 고민하다 한껏 골라놓고는 무슨 투정이냐며. 짜장면 시켜놓고 짬뽕 달라거나 음식 이것저것 시켜놓고 반도 안 먹고 가는 사람과 뭐가 다르냐며 딴소리하지 말란다. 나의 이런 태도에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고도 남는다며 변죽이 죽 끓듯 하는 나를 나무란다. 이왕 산에 왔으면 마음먹고 정상까지 갔다 오란다.

산악회 활동을 같이하는 ‘봉황’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분은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350여 개의 산을 올랐다고 한다. 지난번 경기도 가평에 있는 운악산에서 만난 여자 회원도 한동안은 일주일에 두세 차례 산행한다고 한다. 산이 주는 맛이 있어서, 산에서 풍기는 향기에 끌려 어느 산이건 가리지 않고 오른다고 했다. 정말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은 나보다 시간 조절이 자유로운 처지이지만 그렇다고 그네들이 이름난 산만 찾아다녔을까. 산행 초보인 내가 어찌 산을 알고, 산에 대한 낯가림이 심한 내가 그들의 기분을 무슨 수로 헤아릴까.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고 나서 산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이다. 가랑잎 밟히는 소리만 들리는 고즈넉한 공간에 번개가 번쩍인다. 조금 전만 해도 햇볕이 내리쬐었는데 뜬금없이 장대비가 쏟아진다. 아직 해 넘어갈 시간이 아니건만 어스름 저녁 같다. 산짐승도 놀라 도망하는지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난다. 그런 데다 때 아닌 우박까지 쏟아붓는다. 그것도 오월에. 팥알 크기의 작은 알갱이부터 강낭콩만 한 것까지 그 기세 대단하다. 꽹과리를 치듯 북을 둥둥 울리듯 숲을 두드리고 나까지 두드린다.

오월이 다 가는 주말에 잔치를 벌인다. 나무와 풀을 바닥에 깔고 숲에 머금은 햇볕을 가져다 무대에 깔고는 한바탕 놀아보자 한다. 금낭화, 제비꽃, 민들레 대신 낙엽이 선율을 깔고 산새들이 합창하며 서곡을 연다. 1부 행사가 끝난 다음에는 바람과 구름이 하나가 되고 비와 우박이 몸을 섞는다. 잔잔한 클래식을 들려주는가 하면 볼륨과 절규가 있는 헤비메탈의 곡을 올린다. 요란스러우면 늦추고 늘어지면 당긴다. 높낮이도 적당한 게 질펀하게 논다.

내가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산을 찾았던 것처럼 산도 그렇게 마음을 풀어내고 있다. 말벗 없고 기댈 사람 없어 주저앉고 싶었는데 찾아든 산객에게 가슴을 연다. 말없이 다가오던 금단산, 그동안 찾는 이 없어 서운했는가. 산에 얽힌 전설이나 설익은 사랑가조차 들려줄 수 없어 아쉬웠는가. 산 이름에 걸맞게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저력을 드러낸다. 놀아도 흐벅지게 논다.

집을 나서면서도 마음을 다잡지 못했었는데 어느 정도 속이 풀리는 것 같다. 금단산이 들려주는 그 조용하면서도 거친 떨림을 조금이라도 알아챌 수 있어서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에세이문예 문학상 수상작, 2013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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