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겨나간 문명의 척추, 파르테논은 집으로 가고 싶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올라 파르테논 신전을 정면으로 마주하면,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부재(不在)의 감각을 마주하게 된다.
인류 건축의 정점이라 불리는 이 신전의 몸체는 곳곳이 뜯겨나가 흉측한 상흔을 드러내고 있다.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그리스가 주권을 잃고 신음하던 시절, 영국의 엘긴 경이 신전의 대리석 조각군을 대거 해체해 런던으로 실어 나른 탓이다.
오늘날 대영박물관의 한복판에서 관람객을 맞는 ‘엘긴 마블스’는 사실, 누군가의 뼈아픈 상실 위에 세워진 박제된 영광일 뿐이다.
영국은 줄곧 ‘인류 유산의 구조자’라는 프레임을 고수해 왔다. 만약 자기들이 가져오지 않았다면 전란과 방치 속에서 파괴되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 ‘보존의 공로’는 사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제국주의적 발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엘긴이 받았다는 허가증조차 연구에 따르면 ‘신전 잔해를 조사하고 본을 뜨는 것’에 국한되었을 뿐, 건축물의 일부를 통째로 뜯어내도 좋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법적 정당성마저 흔들리는 상황에서 영국이 매달리는 마지막 핑계는 그리스의 관리 능력 부재였다.
하지만 그리스는 아크로폴리스 바로 옆에 세계 최고 수준의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지어 그 오만을 무너뜨렸다. 박물관 내부에는 런던에 인질로 잡혀 있는 조각상들이 돌아올 자리를 텅 비워둔 채,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실제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게 설계되어 있다. 이 ‘비어 있는 전시실’은 영국의 고집을 향한 가장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고발장이다. 이제 "보관할 기술이 없다"는 말은 보호가 아니라 소유욕의 다른 이름일 뿐임이 증명되었다.
영국이 이토록 완강하게 버티는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엘긴 마블을 내주는 순간,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인 로제타 스톤부터 나이지리아의 베닌 브론즈까지, 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수만 점의 약탈 유물들이 줄줄이 반환 리스트에 오를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에게 뼈아픈 기억인 프랑스의 외규장각 의궤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오랜 투쟁 끝에 돌아왔음에도 ‘영구 대여’라는 해괴한 형식을 취했던 것은, 소유권을 인정하는 순간 무너질 제국주의의 논리를 프랑스가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도둑맞은 내 물건을 주인인 우리가 빌려 써야 하는 이 황당한 비극은 유물 반환 문제가 여전히 차가운 힘의 논리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 문화의 정체성을 상징했던 멜리나 메르쿠리는 1986년 옥스퍼드 유니언에서 이 비극의 본질을 이렇게 꿰뚫었다.
"You must understand what the Parthenon Marbles mean to us. They are our pride. They are our sacrifices. They are our noblest symbol of excellence. They are a tribute to the democratic philosophy. They are our aspirations and our name. They are the essence of Greekness."
— Melina Mercouri, Address to the Oxford Union, 1986
"파르테논 조각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부심이자 희생이며, 탁월함의 가장 고귀한 상징입니다. 민주주의 철학에 대한 헌사이며, 우리의 열망이자 우리의 이름 그 자체입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다움'의 본질입니다."
역사는 단순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를 찾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2500년 전 신전의 일부였던 이 조각상들의 유랑은 ‘완전한 소유권 반환’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영국이 제안하는 ‘장기 대여’라는 꼼수는 기만일 뿐이다. 빈자리가 채워지고 신전의 척추가 다시 맞춰지는 날, 우리는 비로소 제국주의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문명의 진짜 품격이자 결자해지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