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왜 최고 변호사의 몸값은 오히려 치솟는가

월스트리트저널이 2024년 10월 보도했다. 최상위 엘리트 로펌들이 시간당 최대 2,500달러를 청구하고 있으며, 의뢰인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화로 환산하면 시간당 360만 원이다. 그런데 2025년에도 멈추지 않았다. Wells Fargo 법률 전문 그룹 조사에 따르면 대형 로펌의 청구 요율은 2025년 상반기에만 9.2% 더 올랐고, 최상위 파트너들은 이미 시간당 3,000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이상하다. AI가 법률 업무를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는데, 변호사 몸값은 왜 오르는가.


같은 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에 또 하나의 기사가 실렸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교수 Rita Gunther McGrath가 쓴 칼럼이었다. 제목은 "AI 덕분에 시간제 청구에 작별을 고하라." AI가 수천 건의 계약서를 수 분 만에 검토하고 복잡한 문서를 수 초 만에 작성하게 되면, '시간'이라는 단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주장이었다. AI가 일상적인 인지 업무를 처리할수록, 남은 인간의 기여는 판단력과 창의성과 관계 관리 쪽으로 이동하고, 그 가치는 투입된 시간과 거의 무관하다고 했다.


두 기사가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현상의 두 얼굴이다.


법률 시장이 두 개의 층으로 쪼개지고 있다.

AI가 처리하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


계약서 검토, 판례 조사, 문서 초안 작성 — 이 업무들은 이미 상당 부분 기계가 처리한다.

McKinsey 추산에 따르면 현재 변호사 업무의 22%는 이미 자동화 가능하고, 44%는 기술적으로 자동화 가능하다. 기업 법무팀도 그걸 안다. 2025년 하반기, 기업 의뢰인들이 루틴 한 업무를 중소 로펌이나 내부로 흡수하면서 대형 로펌의 수요 증가율은 2% 미만에 그쳤다. 반면 중소 로펌은 5% 가까이 성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하버드 로스쿨 법률전문직 센터가 AmLaw 100대 로펌을 전수 조사한 결과, AI 도입으로 특정 업무의 생산성이 100배 향상됐다고 보고한 곳도 있었지만, 변호사 인원을 줄일 계획인 로펌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024년 로스쿨 졸업생 취업률은 9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AI가 일을 빼앗는 게 아니라, 일의 성격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 경계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BASF의 일반법무실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렇게 말했다. "저런 사람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 회사를 걸고 하는 거래에서." 재판정에서 판사와 배심원을 읽으며 순간적으로 전략을 바꾸는 감각, M&A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포착하는 직관, 대법원 구두변론에서 판사의 질문 뒤에 숨은 의도를 꿰뚫는 경험 — 이것들은 데이터로 학습되지 않는다.

AI가 초안을 쓰고 리스크를 예측해 줄수록, 그 결과물을 앞에 두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사람의 판단이 더 무거워진다.


법률계 전문가들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내셔널로 리뷰는 2026년 초 법조계 전문가 8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향후 5년 안에 AI가 신입 변호사를 대체할 것이냐는 질문에 58%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AI가 대체하는 건 '일'이 아니라 '반복'이라는 인식이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학장 Austen Parrish는 이렇게 말했다.

"승자는 가장 많은 AI 도구를 쌓아둔 조직이 아니라, 더 적은 도구를 더 명확한 목적으로 운용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도구의 양이 아니라, 도구를 다루는 판단력이 경쟁력이 된다는 뜻이다.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 Eric Talley는 이걸 다른 말로 표현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건 AI를 잘 쓰는 기술이 아니라, AI가 틀렸을 때 그걸 알아채는 감각이라고 했다.

"언제 AI를 믿고, 언제 의심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 그것이 변호사다운 직관이다."


실제로 2025년 기준 전 세계 700건 이상의 소송에서 AI가 생성한 허위 판례가 문제가 됐다.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인용한 변호사들이 법원으로부터 거액의 제재를 받았다. AI가 틀렸을 때 걸러낼 수 있는 사람의 가치가 역설적으로 증명된 사건들이다.


한 법률 전문가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시간제 청구는 죽지 않는다. 고급 업무에서 로펌은 단순히 문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시장 관행을 평가하고, 선례 기반의 리스크를 판단하고, 전문가적 결정을 내린다. 그 전략적 자문에 대해 의뢰인들은 계속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시간제 청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가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나뉘는 것이다.


1839년 다게레오타입이 발명됐을 때, 초상화 화가들은 공포에 떨었다.

정확하고 빠르고 저렴한 사진이 왕족과 상인의 얼굴을 담았다.

회화의 '기록' 기능은 그렇게 사진에 넘어갔다.

일부 화가들은 실제로 의뢰를 잃었다. 그런데 그 이후가 흥미롭다. 인상주의자들은 사진과 현실 묘사를 두고 경쟁하는 대신, 사진이 절대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빛, 색채, 움직임의 주관적 표현. 회화는 오히려 사진이 제거한 바로 그 주관성을 예술의 본질로 삼았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인상주의였다.


첫 인상주의 전시회가 열린 장소가 파리의 사진가 나다르의 스튜디오였다는 사실은, 그 역설의 마침표처럼 남아 있다. 위협이라 여겼던 도구의 공간에서 새로운 예술이 태어났다.


변호사의 미래도 같은 구조로 읽힌다.

AI가 문서를 처리하고 판례를 분류할수록, 인간 변호사의 역할은 '시간을 파는 것'에서 '판단을 파는 것'으로 이동한다. 시간은 AI와 경쟁할 수 없다. 판단은 아직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 논의가 한국에서는 다른 층위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 리걸테크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 조건 하나는 데이터였다.

미국 연방법원은 PACER 시스템을 통해 하급심을 포함한 거의 모든 판결문을 공개한다.

렉시스넥시스, 웨스트로 같은 법률정보 기업들은 수백만 건의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AI 서비스를 개발했고, 그 위에서 케이스텍스트 같은 스타트업이 탄생해 결국 톰슨로이터에 8,650억 원에 인수됐다.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대법원은 2019년 판결서 인터넷 열람제도를 도입했지만 공개 범위를 제한했다. 2024년부터 2023년 이후 선고된 민사·행정 미확정 판결문 열람이 가능해졌으나 그 이전 건과 형사 하급심은 여전히 벽 안에 있다. 헌법은 재판의 공개를 명시하지만, 현실에서는 판결문 열람에 건당 1,000원의 수수료가 붙는다. 하급심 판결문은 원칙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이 격차가 산업 지도에 그대로 찍혔다. 시장조사기관 트랙슨 집계에 따르면 전 세계 리걸테크 기업 9,770개 중 미국은 3,609개, 한국은 41개다. 한국 리걸테크 유니콘 기업은 아직 단 한 곳도 없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렇게 토로했다. "미국에서는 수백만 건의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지만, 한국은 출발선조차 밟을 수 없는 구조다."


그런 조건에서도 민간이 먼저 움직였다. 리걸테크 기업 엘박스는 민간 역량으로 하급심 포함 405만 건의 판결문 전문 데이터를 축적했고, 2025년 기준 개업 변호사의 절반이 넘는 2만 3,000명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대법원도 같은 해 엘박스·KT와 145억 원 규모의 재판업무 지원 AI 플랫폼 구축 협약을 맺었다. 수문이 완전히 닫힌 건 아니다. 다만 공공 데이터는 여전히 갇혀 있다.


2025년 국내 리걸테크 AI 특별 전시회(LTAS) 기조발표에서 로앤컴퍼니 법률 AI연구소장 안기순은 이렇게 말했다.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쓰는 변호사가 그렇지 않은 변호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이 명제의 전제는 변호사가 쓸 수 있는 AI가 충분히 고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도화의 핵심 원료는 데이터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이자 성균관대 로스쿨 한애라 교수가 수년째 강조해 온 화두도 같은 지점이다. AI가 사법절차와 법률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만약 법원행정처가 하급심 판결문을 전면 공개한다면 — 가능성은 아직 낮지만 방향은 이미 시작됐다 — 이 논의의 결론은 달라진다. 미국의 리걸테크 지형이 그랬듯, 방대한 판례 데이터 위에서 AI 서비스의 정확도와 깊이가 급격히 올라갈 것이다. 그 조건에서 한국 변호사 시장도 같은 분기점에 놓이게 된다. 루틴을 AI에 넘기고 판단에 집중하는 상층, AI가 처리하는 것조차 감당 못 하는 하층. 데이터 수문이 열리는 순간, 그 분기는 지금보다 훨씬 빨리, 훨씬 선명하게 찾아올 것이다.


다만 냉정하게 볼 필요도 있다. 오늘의 '대체 불가'가 내일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Stanford 연구에 따르면 법률 특화 AI 툴인 Lexis+ AI의 오류율이 17%, Westlaw AI의 경우 34%에 달한다. 범용 모델은 훨씬 더 나쁘다. AI는 아직 틀린다. 그런데 틀리는 속도보다 개선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Thomson Reuters CEO Steve Hasker는 2026년을 이렇게 규정했다.

"AI 전략을 가진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사이에 새로운 분열이 생겨나는 해."


인하우스 법무팀 조사에서 26%가 2026년 외부 로펌 지출을 줄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요율은 오르는데 수요는 내부로 흡수되는 구조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결국 질문은 단순해진다. 나는 AI가 대신할 수 있는 층에 있는가, 아닌가.

AI가 100배 빠르게 계약서를 검토해도, 그 결과물을 의뢰인 앞에서 설명하고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여전히 인간이다. 법정에서 판사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질 때, 0.3초 안에 판단을 내리는 건 알고리즘이 아니다.


카메라가 발명된 날, 화가는 죽지 않았다. 다만 달라졌다. 그리고 어쩌면, 더 깊어졌다. 변호사도 그럴 것이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달라지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 법원행정처의 결정 하나가 그 시계를 수년 앞당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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