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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코치 Aug 17. 2022

불편한 대화를 잘하는 사람.   

감정 & 관계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숨이 찼고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 같았다.

입에서는 비릿한 피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 바로 그 느낌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화가 났을 때, 질책을 받았을 때, 불안할 때, 억울할 때, 한 마디로 감정이 몹시 불편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올해 봄.

길에서 모르는 사람과  언쟁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니다 싶어도 모두의 평화를 위해 양보하거나 수긍하고 말았을 텐데,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기로 스스로 다짐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용기를 내어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며 목소리를 냈다.

딸과 함께한 나들이였기에 비겁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날이기도 했다.

그랬더니 TV에서 보던 것처럼 언쟁을 하게 되었고, 생전 처음 기분 나쁜 욕까지 듣게 되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 느낌이 다시 시작됐다.




갈등관계에서 나는 긴장을 넘어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 사이가 틀어질까 봐 최대한 친구에 에 맞춰주곤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친구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는 것 마저도 불편했다.

중.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며 성격은 많이 바뀌었으나 갈등관계에 있어서 나의 대처는 비슷했다.

그런 내가 살기 위해 나름의 꼼수(?)를 만들게 된다.


공적인 관계에서 초반에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다.

짧은 만남이라 할지라도 '수박 겉핥기식' 보다는 조금 더 깊은 관계가 되려고 노력한다.

친한 사이에서는 일처리를 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놓지 못하고 끝까지. 문제없이. 웃으면서. 일처리가 마무리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결말이 꼭 해피엔딩이어야만 하는 고집스러운 작가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일이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그야말로 꼼수가 묘수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상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언제나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좋았던 관계가 깨어질까 두렵다.

상대가 나에게 원망이나 실망을 하게 될까 봐 걱정된다.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을 자꾸 부린다.

초반에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 갈등이나 문제 발생 시 용이하게 처리하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이다.

이럴 땐 꼼수가 자충수가 된다.

그래서 내가 서비스를 받으러 가는 곳에서는 오히려 사담을 나누지 않으려고 애쓴다.

서로 친해져 버리면 일이 잘 못 되었을 때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 동아리 회장이었을 때, 회사 팀장이었을 때가 기억난다.

활발하고 유쾌해 보이는 성격 덕분에 리더를 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문제나 발생하거나 갈등이 발생하면 숨고 싶었고, 어쩔 땐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리더가 되었을 때 힘들었던 이유도 갈등관계를 잘 처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없고, 타인의 감정이 지나치게 신경 쓰인다.

모두가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 못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다행히 상대가 곤란해 보이는 나를 향해 화를 거두거나 나의 친절함에 마음이 누그러져 양해를 해주면 머리를 조아리고 싶을 정도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긴 건 마음속으로는 잘 넘어가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호기로운 척하며 나와 주변인을 속인다는 것이다.

' 내가 진짜 넙죽 엎드린 줄 알지? 그건 그 사람을 위한 예의 같은 거야. 이런 행복한 결말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니까. 그냥 그건 하나의 행위일 뿐이지. 미안하지만 내 진심은 많지 않았거든. '


비겁함. 유아스러움이다.

책임지고 싶지 않아 엉엉 울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이 딱 나이다.

어서 나를 가엾게 여기시고

" 그래. 니 의도는 그게 아니었구나. 오해해서 미안해.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지. " 하며

" 자, 여기 사탕. 이제 그만 뚝! " 하는 어른의 반응을 기다리는 아이.

때론 그걸 이용하는 아이. 그리고선 내가 어른을 속여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자기 위로를 하며,

친구들에게 허세 부리는 꼬마 아이. 딱 그 모습 같다.


그게 지금껏 내가 자주 쓰는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이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불과 얼마 전이다.

나의 본모습을 제대로 마주 보기로 결심하면서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아니어서 정말 실망하기도 했다.  

반면에 그동안의 일들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며 시원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 공간에 나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는 행위가 부끄럽기보다는 오히려 자유를 느끼게 한다.


그러고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앞으로는 불편한 대화를 하게 되더라도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니 죄책감을 갖지 않고, 팩트와 나의 감정만 전달하며 공을 그쪽으로 넘기기로 했다.

이런 일로 관계가 깨어진다 해도 여기까지였나 보다 하고 넘기기로 했다.

그렇게 살았을 때 내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느껴보고 싶다.


이제는 갈등 상황에서

첫째, 내 감정을 먼저 확인하고

둘째, 문제가 발생했을 시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며 그로 인해 멀어지는 관계가 생기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셋째,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구분 지을 것이다.

넷째, 그리고 상대에게 차분히 잘 전달할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삶을 살아볼 참이다.
비겁하지 않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아볼 참이다.
불편한 대화를 기꺼이 하며 살아볼 참이다.


- 책  [타이탄의 도구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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