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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 Dec 01. 2020

#4(4-1) 병원이 나를 거부했다

나는 1% 이자 100%인 여성이다.

 

 한 달을 기다려 겨우 예약한 세 번째 병원에 가는 길이다. 60여 의 역사를 가졌고, 지점 중에는 국내 최대 난임센터를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큰 병원이다. 1달의 기다림이 있더라도 1과 원장님을 고집해 예약했다. 난임 의사 경력만 30여 년이었다. 인터넷에 그 이름을 검색하면 각종 기사도 떴다.


 나게는 앞서 두 병원에서 여러 번의 시험관 시술 기록이 있 두툼한 서류봉투가 있었다. 그것은 전부 실패의 기록이었다.


실패의 기록들


 난임부부들은 시험관 고차수로 갈수록 병원을 옮기거나 담당의를 변경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새로운 병원에 가거나 새로운 의사를 만날 때 기대감이 생긴다.


 여느 난임 병원들처럼 수 십 명에서 100여 명에 가까운 많은 대기자들이 라운지에 가득했다. 난임 병원의 평균 대기시간은 1시간 내외이다. 기대감 때문인지 그곳에서 1시간가량 대기하는 동안 병원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계속 다닐 병원이니까 어디가 화장실이고 어디에 정수기가 설치되었는지도 체크했다.




OOO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내 이름이 호명되자 괜히 장이 두근거렸다. 진료실로 들어섰다. 의사 선생님은 "그동안 고생 많았겠네!"라며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그리고 나선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서류를 보는 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1초 단위마다 그의 점잖은 얼굴찌푸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아니, *AMH0.2가 아니라 0.02?!"

"영.쩜.영!!!!"

"생리는 해요? 100% 조기폐경이네."

"이런 경우가 있어요. 유전적으로."

"1-2% 정도."


(*AMH에 관해서는 2화를 참고)


 내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 처음 듣는 수치도 아닌데. 무려 그 서류는 내가 제출한 것인데. 이 지구 상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수치인데. 그의 큰 목소리는 내 귀가 아니라 심장으로 직진했다.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다. 소수점 아래 두 자릿 수의 힘은 생각보다 막강했다.



 1%와 100%는 참 모순적이다.



 0.0이란 소수점 두 자리는 어느덧 나를 대표하는 숫자가 되었다. 내 허락도 없이 말이다.


 30여 년의 경력이 있는 의사라면 나와 같은 수치를 가진 환자는 여러 번 만나보았을 거라 예상했던 내 판단은 완전히 나간 것 같았다. 당장 진료실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휴.. 어렵겠는데?"

"뭐.. 다음 주로 예약을 잡던지.."


 그는 "잡던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괜스레 의사 선생님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간호사님 눈치가 보였다. 나는 고개를 푸-욱 숙이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자리에서 울고 싶지 않아서.


 나는 알았다.


그는'나'라는 환자를 원치 않았다.


 진실을 도망치듯 나온 뒤, 간호사님이 내게 예약 스케줄을 잡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곳에서 고개를 '먼저' 저은 사람은 난임 환자인 내가 아니었다. 

 진료실에서 도망쳤으니 이제는 이 병원에서 도망칠 차례였다.


 난임 병원에서 '나 같은' 난임 환자는 환영받지 못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이런 나라도, 나를 받아주는 병원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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