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 - 하동 쥐 편
[편집자 주]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는 서울 쥐와 하동 쥐의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서울 쥐와 하동 쥐는 함께 지역을 위한 연구를 하다가 만났습니다. 서울 쥐는 여전히 서울에서 비루한 삶을 살고 있고, 하동 쥐는 지역 현장에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둘의 푸념들이 여러 청년(혹은 중년)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어봅니다.
이번 여섯번째 글은 하동 쥐의 이야기입니다. 부디 즐감하시길~
이제 막 6.1 지방선거가 끝나는 찰나야. 내가 사는 하동군은 종료집계기준으로 투표율 73.8%가 나왔어. 다른 지역들 투표율을 봤더니 농촌은 투표율이 높고, 도시는 아주 낮은 경향성이 뚜렷하더라고. 전국기준으로 50.5%의 투표율에 비해서 하동이 이렇게 높게 나온 이유는 뭘까?
지난 대통령선거 때처럼 이 좁은 하동에서도 네거티브 선거의 모습이 뚜렷했어. 군수 후보 여론조사 1등의 무소속 후보, 만38세의 민주당 후보, 도의원 출신의 국민의 힘 후보가 나와서 치열하게 유세를 하더니, 결국은 높은 투표율을 보였어. 만38세의 군수 후보가, 그것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더 기쁠까 싶기도 해. 변화의 시작이 이번 선거부터였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 못할 듯한 상황이라, 뭔가 씁쓸해져.
그럼에도 초여름의 맑은 날씨는 좋기만 하더라. 지난 주말에는 몇 달 만에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어. 햇볕은 따가워도 나무아래 그늘 길은 선선한 게 걷기에 딱인 날씨였지. 친한 지인들과 13Km가량을 걸었는데, 모처럼 만의 여유를 마음에 품었던 듯해. 근육통을 얻었음에도 상쾌함은 오늘까지도 계속되는듯하네. 오래 살기 위해 가 아니라, 즐겁기 위해 하는 운동은 또 얼마 만이었던가 싶고. 찍었던 사진 하나하나에 그 마음들이 담긴 듯해서 더 행복했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던 요즘이었지! 너의 글을 보고 마음이 한창 무거웠었다. 마치 몇 겹의 방어막을 만난듯한 느낌이랄까? 우리가 하는 일이,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너의 일이, 그 길이 혁신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매우 어려운 설득의 과정이 필수적인 일이라 생각했어.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목소리로 표현된 말이 누군가에게는 네가 정의한 모습으로 강요받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면 그건 모순 아닐까? 너의 목소리가 타인의 목소리를 강요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 나도 조심스럽게 너에게 질문한 건 아니었을까? 그것을 받아들이는 네가 그조차 사회적 말하기라는 너의 언어로만 받아들인다면 그건 논리적 비약은 아닐까!
사회적 말하기라는 개념 이전에, 너의 뜻을 곡해하지 않고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그에 대해 더 편하게 반박할 수도 있게 좀 더 친절하게 말을 해줄 수 있지도 않겠냐는 의견이었지! 나의 말을 한다는 건, 좋다고 봐. 다만 대화는 서로간에 일어나는 화학적이고, 물리적이고, 암튼 무슨 무슨 적인 교류가 아닐까 싶어. 대화의 주체가 되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 상대방도 있다고 봐. 그 타인에게 대화의 물꼬를 열어주는 것, 가끔은 먼저 내어주는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떠냐는 의견이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나를 정의하고 나를 알아가면서도 또 나를 깨부수어 나가야 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어. 그러기 위해선 나를 그만큼 방어해야 하기도 하겠지만, 또 나를 그만큼 비판하기도 해야겠구나 싶어.
머릿속에서 한참을 맴도는 생각들이 있어. 우리가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내 안에서 체화된 생각들인지, 내가 하는 어떤 말은 나를 필요 이상으로 드러내기 위한 말은 아니었던지 말이야. 말의 홍수 속에서 위선의 큰 파도에 셀 수 없이 노출되고 있는 듯해. 병적으로 드러낸다는 말을 싫어하는 나의 예민함도 있겠지만, 말을 하는 나에게 그 말이 나를 당당하게 만드는지 반대로 나를 막아서는 말이 되는지 계속해서 곱씹게 돼. 그만큼 입으로 나오는 그것이 더 조심스러워져. 그럼에도 나이가 들었다는 둥, 그간 많은 고민을 했다는 둥, 이런저런 자기합리화로 쓸모없는 말들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느낌이 들더라고. 소통하기 위해 대화를 한다던 나는 어느새 소통을 가장한 일방적인 선언을 하고 마는 듯해.
그래서 이제야 답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너에게 속 시원하게 욕을 좀 하고 싶은데, 어눌하고 답답한 내가 말을 해도 되는지 내 안에서 불편함이 일어나고 있더라고. 그럼에도 또 헛소리를 늘어놓고 마는 거지.
그래도 고맙네. 친구 헛소리든 참소리든 들어는 주는 너이니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내 안에 가득 차 있어도, 눈앞에 초록으로 가득한 산을 보고, 파랑으로 가득한 하늘을 보고, 햇살 담은 강을 보고, 물을 머금은 논을 보면서 어느새 그 안에 존재하는 나를 만날 때면 그 생각들을 잃고 잊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순간을 별개로 두어보는 생각을 했더니 쪼개 사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드라마처럼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툭 넘어가듯, 마치 순식간에 태세전환이 일어나서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경험을 하는 중이야. 삶이 재미있냐는 생각은 못 하고 있지만, 순간순간 재밌구나 싶은 이따금의 경험들이 켜켜이 채워지는 느낌이야.
이번 주말 2년 만에 서울에서 너를 보겠구나 싶다. 코로나 덕택에 가지 못하고 있던 서울이었는데, 지인의 결혼식을 핑계 삼아, 네온사인 샤워를 받으러 기차표를 예매해 뒀어. 서울에서 일상적으로 다니던 길에 다시 가볼 거야. 늘 가던 홍대의 카페에 들러보고, 저녁 시간엔 라이브 재즈바에 가보려 해. 추억팔이 여행일 수도 있겠지만, 함께하는 이가 있기에 새로운 추억을 쌓으러 가는 여행이 될듯해. 그 기억 속에 우리가 나눌 헛소리들이 얼마나 즐거울지 조금은 기대가 되는 중이다. 네가 다니던 길에 먹었던 음식들을 너의 SNS에서 봤다. 그중에 하나만 소개해주길!
요즘 하는 일은 어떤지 이렇게 글로 물어보고 싶어. 서울 쥐가 시골 정책을 제안하며 겪는 마음이 어떨는지! 물론 도시정책을 연구하고도 있겠지만 말이야. 어떤 정책이 되었든 네가 요즘 어떤 시시콜콜한 일을 하는지 들려줘!
며칠 후에 봅시다. 친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