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산다는 것]을 읽고
ᅠ지역, 농촌, 농업과 관련 의제는 뉴스나 출판업계에서 정말 가뭄에 콩나듯이 드문드문 다뤄진다.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워진 일상은 사실 복구가 안 된다. '6시 내고향'이나 '세상에 이런일이', '생활의 달인' 이런 코너에서 간간히 대상화되어 농산물, 가볼만한 관광명소, 맛집, 그리고 기이한 사건들로 나올 뿐이다. 지역 뉴스도 지역 지면도 '쪼가리'에 불과할 만큼 협소하게 다뤄지거나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대부분 광역 중심 뉴스이다. 도청 소재지 도시나 광역시 아니면 지역 뉴스에 명함을 내밀기도 힘든 여건이다.
ᅠ이미 도시인의 시각 중심에서 타자화되어 있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반가웠다. '지방에 산다는 것'이라니. 대부분 미디어에 등장하고 지면을 차지하는 인사들의 사는 지역 분포도를 누가 논문으로 써줬으면 좋겠다. 아마도 대부분 수도권 중심이고 지역이라 하더라고 광역도시 중심일 것이다. '지방에 산다는 것'이란 주제로 글을 쓸만한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ᅠ책 초입부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15 문예연감>에서 발표한 '예술활동지수'에 대해 나오는데 '서울을 600을 기준으로 경기가 149.2로 2위를 차지합니다. 이어 부산(106.4). 대구(63.7), 경남(60.4)이 뒤를 따랐는데요. 최하위 지역은 제주(16.0), 충북(15.3), 세종(1.5)였습니다'라고 언급된다.
ᅠ세종이야 이제 막 커나가는 도시이니 이 지수는 금방 따라잡을 터이지만, 충북이 꼴찌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같다. 충북 중에서도 대부분 이 예술활동지수가 도청 소재지인 청주에 80%이상이 몰려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군 단위는 더욱 열악한 것이다.
ᅠ나는 옥천에 산다. 책의 필자가 경남도민일보 기자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는 옥천신문 기자를 하고 있다. 만일 필자가 군 단위에서 생활했다면 이 책의 방향은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만큼 다른 의미로 사는 곳은 많은 생각과 의식을 변화시킨다. 기자가 사는 곳, 활동하는 곳에서 뉴스가 나온다. 살아보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는 기사도 있다. 물론 나올 수야 있겠지만, 그 깊이가 다르다. 역으로 살기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기사들도 있다. 감수성의 문제다.
ᅠ광역시와 일반 중소도시, 그리고 농촌 군단위에 사는 생활문화가 확연히 다르고, 군 안에서도 읍에 사느냐 면 소재지에 사느냐 면 변두리에 사느냐는 삶의 수준이 다르다. 서울의 눈으로 봤을 떄는 다 퉁쳐서 지방이라 하겠지만, 지역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차이에도 엄연히 급수가 있다.
ᅠ이 책에 따르면 '서울, 경기도, 인천 3개 시도 인구가 2천592만명(50.1%)으로 사상 처음 50%벽을 넘었습니다. 한국의 전체 국토면적 10만387제곱킬로미터의 11.8%에 불과한 서울, 인천, 경기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몰려사는 기형적 상태가 극에 달했습니다'고 나온다.
ᅠ옥천만해도 면적으로 볼 때는 인근 대전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인근 대전광역시는 150만명 가까이 살고, 옥천은 5만명이 간당간당하다. 인근 보은과 영동은 옥천보다 인구가 더 적은데 면적은 더 크다.
ᅠ인구가 적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터이지만, 군 단위 안에 인구구조를 보면 또 놀란다. 옥천군의 경우 절반 이상인 3만명 가까이가 읍에 거주한다. 2만명 남짓 인구가 8개면에 나눠 거주한다. 군 단위에서도 중앙집중은 여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무맥랑한 일인지 이쯤 되면 알 수 있다. 분권이라고 백날 이야기하고 투쟁해봐야 그 몫은 대부분 지방의 거점도시들이 차지한다. 하물며 군 단위에서도 읍중심으로 재편되는데 도의 경우도 거점 도시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뭐라 말할 건덕지도 없다. 이 나라의 구조를 송두리째 바꾸려면 알량한 분권 가지고 되먹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수직적인 위계구조의 중앙 집중의 이 썩을 놈의 문화를 바꾸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잘 되는 놈 하나만 키워서 '짱'먹어보자'는 양아치 같은 근성이 아직도 자욱하게 안개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책 말미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의 누군가는 '지방소멸'을 언급하며 인구유출을 막는 중핵도시, 컴팩트 도시라는 댐을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을 말했는데,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저어기 왜군이 몰려오니 시급히 방책을 내세워야 한다며 마치 조금더 신경써주는 어투로 그리 말하는 것에 깜박 속아넘어가서는 안 된다. 지금도 이미 중핵도시가 여러개 있다. 그 중핵도시는 군웅할거 하듯이 서울과 겨루려고 몸집을 한껏 부풀려 광역시의 꿈을 꾸고 있다. 행정구역을 통폐합하여 우리도 광역시 하나 만들어보자는 꿈에 부풀고 있다. 청주, 청원이 통폐합하여 큰 도시가 되고 있고 이미 마산, 창원, 진해도 통폐합하여 광역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 아니던가.
ᅠ광역시는 도 단위 행정에서 분리되어 들러리 농업군 다 떨궈내고 혼자만 쑥쑥 커나가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균형발전'이란 해묵은 칼은 이미 지방, 지역에서도 실패했다. 수도권을 향해 분권과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스런 말이지만, 이미 단체자치를 20년 넘게 하면서도 균형발전과 분권을 하지 못하는 당신네들은 도대체 무언가? 새의 눈으로 보면 작아서 안 보이는 것들이 땅바닥에 박박기는 벌레의 눈으로 보면 무지하게 커서 확확 들어온다.
ᅠ면 지역이 이미 붕괴되고 있다. 농촌의 가장 기본단위는 면 단위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각 면마다 오일장이 열렸고 초중학교가 왠만큼은 다 있었다. 학구와 장터가 하나가 되면 얼굴 마주보는 횟수가 많아지고 절로 공동체가 형성된다. 관계와 관계가 중첩되면서 공론장이 만들어지고 지역 정체성이 스며드는 것이다. 옥천 사람이라기보다 청산 사람, 이원 사람, 안남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 오일장이 사라진지 오래고 학교가 하나둘 폐교되고 있으며 보건진료소와 우체국, 치안센터와 소방서, 농협이 하나둘 소리없이 없어지고 있다.
ᅠ관공서 뿐만 아니라 시장이 형성이 안 되고 자본이 이미 퇴각한 곳에 목욕탕도 없어지고 열악한 면 단위는 식당 하나도 없다. 병원과 약국을 바라는 것은 비교적 큰 면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어린이집도 없어서 통학버스를 40분 이상 타고 가야 하는 이 현실에서(이전에는 그나마 멀다고 받아주지도 않았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하는가.
ᅠ책에는 강준만 교수의 지방식민지 독립선언 이야기가 나온다.
"왜 청년들에게 고향을 지향하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없는가?"
"청년들이여 고향을 지향하라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말하자. 고향을 지향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제발 고향 떠나는 것이 지역발전의 지름길이라고 범 지역 차원에서 부추기는 내부 식민지 근성만큼은 깨보자. "
ᅠ솔직히 이야기 해보자. 청년들을 탓할 필요가 없다. 물론 청년들을 애써 생각하고 지역을 위해서 하는 말인줄은 알겠다. 그런데 자기 자식부터 도시로 학교를 보내고 있는데 청소년, 청년들이 머무르기를 바란다는 것은, 들어오길 바란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누굴 탓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이리 만들고 있다. 폐교를 하면 사실 그 지역은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진배없다. 하지만, 폐교 문제는 국가도 해결 못하는 문제라며 진보교육감도 통폐합을 추진하고 있는 이 마당에 정말로 답이 없다. 1면 1교 정책도 머지 않아 무너질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 읍에 거주하고 면은 출퇴근하며 농사짓는 구조로 바뀔 것이다. 노인들만 사는 곳으로 게토화될 것이며 향소부곡처럼 계급별 촌락이 될 것이다. 수천년을 이어온 마을 공동체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는데 대책은 요원하다.
ᅠ큰 틀에서 자치입법권과, 자주, 자율재정권,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마땅히 되어야 할 문제이다. 이 책에서 몇 가지 인용된 말들 중에서 그나마 와 닿는 말들이 있었다. '분권은 두 차원으로 진행돼야 합니다. 하나는 중앙정부의 권한과 자원을 지방정부로 넘겨받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분권운동이 이 부분에 치중해왔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지방정부 내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기초를 만드는 일, 그래서 생활자치를 실현하는 데도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읍면동 주민자치에서 마을자치로 아파트 자치로 확대되어야 합니다.(이시원 경상대 행정학과 교수)' 스위스는 지방분권의 교본이다. 스위스 분권을 알게되면 지금 우리가 사는게 뒤집혀져 있다. 물구나무 서기 해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실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참정권은 투표가 거의 유일하다.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자신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민주정치다. 나는 스위스 사람들이 표정이 다르다고 느꼈다. 표정의 품질이 다르다. 국민소득이 8만불이상이라서? 그게 아니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일상을 정책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거기는 따분할 정도로 차분하다. 그런데 뭐가 계속 바뀐다. 우리는 정치가 시끄럽다. 그런데 안 바뀐다.(이창용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상임대표)'
'결국 개헌은 국민의 힘으로 해야 한다. 그게 주민자치가 필요한 한 축이다. 또 하나 보통 행정학자들은 지방분권을 중앙-지방 정부간 관계로 설정하는데 그건 잘못이다. 시민, 주민 통칭해서 지방에 사는 시민에게로 분권하는 것이 요체다. 그걸 실현하려면 시민들이 일상에서 주권자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 범위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이즈가 되어야 한다. 마을이 되어야 하고 최소한 읍면동 사이즈는 되야 한다. 주민자치가 절대적인 또 다른 한 축이다.(이창용)'
ᅠ그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이즈가 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면이다. 면 소재지를 통해서 자주 만날 수 있고 물리적 거리도 그리 멀지 않는 면단위를 살리는 방책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마을단위, 권역단위에 돈을 쏟아부으면서 실패 사례를 양산했고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마을공동체 범위와 정책의 범위를 불일치 시키면서 면 내에서 많은 갈등과 불평등을 야기시켰다. 행정은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큰 옷으로 지방자치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자생적이고 자립적인 마을공동체를 행정에 복속시켰다. 읍면동은 자체 기획부서가 없고 행정을 수행하는 하부 기관으로 종속되었다. 자치구역이 되지 못하고 그냥 행정구역이 된 것이다.
ᅠ읍 중심의 시내버스 교통체계, 마을, 권역단위로 쪼개진 농림축산식품부 정책, 시군으로 시작한 지방자치체계가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며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ᅠ생활권을 다시 재편해야 할 것이다. 행정구역과 생활권이 불일치 하는 것도 상당부분 되니 조정이 필요하고 좀더 낮은 자치를 아래로부터 실현해야 할 것이다. 제도적인 문제는 용어도 생소해 이해하려면 사실 머리가 아프다. 생활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어내 보면 오히려 쉽게 풀 수 있다. 유사한 사례를 이야기하면 머리에 팍팍 들어온다.
ᅠ여기서 옥천 안남면의 사례를 언급해본다. 안남면은 옥천군에서 가장 작은 면이다. 실거주 인구가 1천명이 안 될 정도로 작은 면이다. 이 면에서는 현재 주민자치회가 이야기 되기 전인 훨씬 전인 2007년에 지역발전위원회라고 자치적인 주민 평의회와 공론장을 형성했고 이를 최근에 (사)안남지역공동체로 바꾸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권역단위 공모사업에 선정되었지만, 권역단위에 한정짓지 않고 전체 면 단위로 사업을 했으며 이 사업으로 인해 면의 새로운 공공형 시가지를 조성하는 데 단초를 마련했다. 면 소재지 편의시설이 하나둘 줄어들면서 인구 이탈이 가속화되자, 주민들의 중지를 모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계속 진행형이다. 마을신문을 만들었고, 마을 장터를 다시 복원했으며 권역센터를 만들어 로컬푸드 식당과 숙박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친지와 자식들도 언제든 방문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갖춰놓았다. 도서관을 만들었으며 도서관 순환버스 정책을 활용해 면내 전체를 순환하는 무상 마을버스를 만들었다. 앞으로 목욕탕과 안남어머니학교가 들어갈 수 있는 복지관, 실내 체육시설까지 면 주민이 필요한 많은 것들이 설치될 것이다. 이런 사례를 미뤄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론장의 형성이다. 주민의 마음을 한데 모으고 여러 민원을 해결하고 조율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다. 이를 주민들이 짜임새있게 직접 만들었다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12개 마을 이장을 당연직으로, 12개 마을 대표를 추가로 추천받아 지역 위원을 만들었고 면 내에서 활동하는 새마을지회, 의용소방대, 풍물단, 체육회, 적십자회, 자율방범대 등 다양한 단체의 장들을 비례대표 격으로 참여시키면서 40여 명에 달하는 지역 공론장을 스스로 구성했다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ᅠ관에서 만들려 한 주민자치위원회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해법이 안남면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여러 풀뿌리 읍면에서 이뤄질 수 있는 보편성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ᅠ이 책에서 내가 '픽'한 구절은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이즈'라는 거다. 해묵은 분권, 지지부진한 균형발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 우리는 다른 구호를 생각하고 성찰해야 할 때가 왔다.
ᅠ정부의 정책에만 목 메지 말고, 우리의 대책을 세워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가야 한다. 낭비를 막고 효율을 강조하는 행정구역 통폐합의 실상을 취재하러 진해와 서귀포 시에 간적이 있다. 도시는 거대해졌지만 시민은 작아졌으며 고유한 역사문화적 정체성은 실종됐다. 가까운 물리적 거리와 정서적 관계로 군수실, 시장실에 가서 바로 항의하며 시위를 할 수 있었지만, 통폐합을 하면서 이마저도 요원해졌다. 우리 안에 아직 자리잡은 성장과 발전의 악마를 몰아내야 할 때이다. 자치와 자급, 그리고 연대, 순환과 공생의 가치로 이제 수평적인 작은 지역공동체의 연대를 꿈꿀 때이다.
ᅠ우리나라의 역사가 퇴행적으로 변모했다고 생각한다. 옛날 역사책에서는 조그만 읍락국가의 연맹체로 삼한이 존재했지만, 중앙집권화 되고 왕권이 강화되면서 삼국시대로 나라꼴을 갖췄다고 기술되어 있다. 과연 그러한가. 소국과민이다. 나는 여전히 과거 읍락국가 연맹체의 삼한을 꿈꾼다. 금강 언저리에 물을 나눠 먹고 같이 살았던 연맹체 국가인 마한을 생각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연방제가 되었으면 한다. 위에 무게 중심이 아니라 아래에 무게 중심을 둔 그런 나라를 생각한다.
ᅠ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한 이 책을 쓴 경남도민일보 이일균 기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시즌2로 '지역 농촌에 산다는 것'이란 시리즈가 나왔으면 한다.
ᅠ이후로 '면에 산다는 것', '오지 마을에 산다는 것' 등이 지속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