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 대유행이다. 십여 년만이란다. 결국 면역력이 약한 노인 환자들 중에 먼 길을 떠나는 분이 계셨다. 그제 새벽은 동이 틀 무렵 한 분이 떠나셨다. 그것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당황스럽고 황망했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해서 알리는 일은 내 일이다. 새벽 다섯 시에 전화를 건다. 한참 전화벨이 울리지만 받지 않는다. 다시 건다. 잠이 취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기 병원입니다."
"네."
"어머님께서 ..."
최대한 담담하게 상황을 전한다. 이런 소식을 전하는 것은 여러 번 한 일이지만 참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아!"
전화기를 통해 짧은 탄식이 흘러나온다. 서둘러 병원으로 오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돌아가신 환자에게로 서둘러 간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 다시 떠지지 않을 감은 눈, 조금 벌어진 입술, 헝클어진 머리, 차가워진 손.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푸른 에메랄드 알이 박힌 반지가 보인다. 오래전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갔을 때 남편이 선물해 준 반지라며 행복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두 팔을 나란히 반듯하게 해 드린다. 환의를 잡아당겨 구겨짐을 펴준다. 두 다리도 굽은 무릎을 편다. 바지의 매무새도 가다듬어 드린다. 머리도 빗겨드린다. 베개의 주름을 펴고 머리를 편히 놓아드린다. 목덜미가 아직 따뜻하다. 가족들이 올 때까지 온기가 남아있기를 바라며 귀에 대고 속삭인다.
"따님이 금방 오실 거예요."
그때 발이 보였다. 오랜 병원 생활로 신은 커녕 양말도 신어 본 지 오래된 두 발이 싸늘하다.
언제부턴가 먼 길 떠나시는 분들의 맨발이 마음에 걸렸다. 울퉁불퉁해진 발톱과 여윈 발목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가방에 양말을 준비해 두었다. 내가 보내드리는 분들만이라도 양말을 신겨드리고 싶었다.
다행히 이 분은 양말이 두 켤레 있다. 그중 한 켤레를 신겨 드린다. 발등에 귀여운 곰돌이 얼굴이 있는 분홍색 양말이 신겨진 발을 본다. 따님이 사다준 양말인가 보다. 비로소 환자가 아니라 사람이 보인다. 누군가의 엄마가 보인다.
내가 하는 양을 보고 누군가가 혼자 중얼거린다.
"어차피 금방 벗길 텐데."
그렇겠지. 장례식장으로 가면 이승의 옷은 다 의미가 없겠지. 하지만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장아장 걸으며 세상살이를 시작한 그때부터 앓아눕기 전까지는 양말과 신을 신은 두 발로 세상 속에서 걷고 뛰고 달렸을 것이다.
이미 걸을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병원을 나갈 때는 영혼이라도 걸어 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양말을 신겨 드리고 싶었다. 신발 대신 양말이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