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아이릭 Jan 12. 2021

사람길 국토종주 14

한 달 후 출발 전까지

전날 밤


한 달 후인 2월 15일(금요일) 오후 7시에 교대역에 다시 모였다. 다음날 국토종주 2회 차 강진 걷기 출발을 위해 강진이 아닌 목포로 향했다. 단원 중 한 명이 일 때문에 같이 출발을 못해서 다음날 가장 일찍 올 수 있는 목포에서 합류해서 같이 강진으로 이동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단원 중 재학님은 세미나가 있어 지방에 내려갔다가 목포역 건너 에 '좋은집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예약하고 먼저 가 있다. 밤 12시경 늦게 도착하니 우리를 기다리며 1층의 거실 겸 식당에서 집주인과 얘기하고 있다가 환영해 준다. 1층은 홀 중앙에 넉넉한 탁자를 놓은 공용 공간이다. 해남에서처럼 이 곳도 의좋은 주인 부부가 같이 계시다가 주인아저씨가 계란이 없다며  밤에 계란을 사러 가신다. 1층 식당은 계란 토스트 커피 등을 무료로 먹을 수 있도록 구비돼 있다.

 밤에도 목포역 앞 해장국 골목에 가서 '해남해장국' 집에서 뼈해장국을 먹었다. 백종원의 3대천왕과 생생정보에 나왔던 해장국집이라며 재학님이 미리 식당도 알아봐 놓았다. 양이 많고 담백한 맛이 특징인 것 같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1층 식당에 앉아 오손도손 얘기를 나눈 그 때가 지금도 따뜻하고 정겹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강진 가는 길


다음날 일찍 아침식사가 되는 미리 알아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목포역으로 가서 잠시 기다리니 오늘 합류하기로 했던 혁이 온다. 이렇게 멤버들이 다시 모였다. 각기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시간을 맞추고 일정 활동영역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삶의 기쁨이고 에너지이다.

강진으로 가는 차 안에서 오늘 걸을 일정과 장소, 다산의 유배생활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모든 건 그냥 사물일 뿐이다. 사물에 의미가 부여될 때만 가치로서 우리의 감흥과 영감을 이끌어낸다. 미리 알고 기대하며 그 장소에 가면 일부러 찾아보게 되고 의미가 되지만, 모르면 있는지 없는지 상관없이 지나가게 된다. 이름은 불려질 때 이름이 되듯, 의미는 주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된다. 그래서 미리 얘기하고 멤버들이 같이 공유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특히 걷기 할 때 우리가 만나는 것은 허공에 뜬 이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직접 인생을 부딪히며 살아낸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것들이어서 직접 현장에서 얻는 살아있는 자양분이 다. 이왕 같은 걷기 하는 시간을 쓴다면 그 시간에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사유하고 영감을 얻고 어떤 방향이든 성장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걷기 모임을 이끌면서 이런 지론으로 걷기를 해왔다. 걷기는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목포에서 강진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오늘 걸을 길을 함께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석문과 석문공원


1시간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국토종주 출발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도암석문공원이다. 국토종주 출발 전에 가까운 주변에 우리 국토를 더 볼 수 있두 곳을 가보기로 했다.  두 곳은 국토종주 거리 계산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석문공원은 석문산의 절경을 살린 공원이다. 석문산(272m)은 남도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금강산을 연상시키는 기암괴석으로 유명하다. 높이 올라갈 필요 없이 도암천 옆 길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기암괴석 중엔 세종대왕의 모습이 연상되는 '세종대왕 바위'가 또렷이 보인다. 석문산에 대해서는 <여지도서>(조선 후기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은 책)에 "돌산이 바닷가에 불쑥 솟아있고, 가운데는 문처럼 뚫려있으며 깨끗한 모래가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고 자세히 소개돼 있다.


지금과 달리 석문산 근처에 바닷가가 있었고, 해안에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에도 강진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의 하구에 간석지가 발달해 있는 모습이 선하다. 지금은 1900년대 초 이후부터 지속된 간척사업으로 강진만 연안에 넓게 분포돼 있던 간석지가 거의 대부분 농지로 바뀌어 있다.


서기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강진만에 유입되기 전 이곳으로 흘러 만덕산과 석문산을 뚫고 바위 협곡을 만들고 지나가는데, 이 양안의 암석 지형이 마치 돌 문이 서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이 곳을 석문, 이 산을 석문산이라 불렀다. 석문은 일찍이 <해동지도>(18세기 조선의 군현지도집. 보물 제1591호)에서 처음 확인되는데 '험악하다'는 설명이 별도로 붙어 있을 만큼 옛부터 기암괴석이 알려져 있었다.


석문산과 사랑 구름다리(직접 찍은 것이 아닌 강진군 자료사진)


사랑 구름다리


강진군은 이 일대의 자연자원을 2016년 공원으로 꾸몄다. 끊어진 만덕산과 석문산을 잇는 구름다리는 가장 특별한 설치물이다. 원래 만덕산(412m)의 줄기인 석문산 구름다리로 이어 서로 통할 수 있게  뜻을 살려 연인 부부가 이 곳에서 사랑을 기원할 수 있도록 '사랑 구름다리'로 명명했다. 국내 최장(길이 111m)의 산악 현수형 출렁다리라고 한다.


이 구름다리에 올라가면 석문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도로에서 불과 23m 위(아파트 8층 높이)에 설치돼 있는데도 올라서니 금강산 봉우리를 잘라다 이 곳에 꽂아 놓은 것인지, 설악산 만경대가 연상되기도 하고 높은 산에 가도 쉽게 볼 수 없는 기암괴석이 바로 눈 앞에 셀 수 없이 펼쳐진다. 바람이 차서 옷을 싸매고 아직 아침잠에서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올라왔다가 펼쳐진 비경에 저도 모르게 갑자기 생기가 돌고 추운 것도 잊었다.  서울 근교라면 줄을 서더라도 다리 위에 한번 올라가기가 힘들 것 같다.




우도 출렁다리


석문공원을 나와 강진만으로 향했다. 7km 거리에 있는 강진의 또 하나의 명물 가우도 출렁다리에 도착했다. 다들 이름대로 출렁다리인 줄 알고 가보면 아닌 것을 알고 의아해하는 다리이다. 원래는 출렁다리로 설치하려다 강진만의 바닷바람과 파도가 세서 튼튼한 인도교로 건설됐지만 지금도 원래 계획했던 출렁다리로 불리고 있다. 웬만한 한강 다리보다 긴(1.2km) 인도교다.


이 다리가 잇고 있는 가우도(면적 0.32 km2 : 약 9만 7,000평)는 서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가우도는 강진만의 4개 섬(간척 전엔 10개) 중 유일한 유인도로 조선 초기부터 고씨들이 거주했다. 수백 년 역사를 가졌음에도 육지의 ‘도암면 망호리’에 예속되어 이 섬사람들은 서자 취급을 받으며 많은 서러움을 겪어야만 했다. 어촌회의나 반상회를 하려면 배를 타고 뭍으로 나가야 했다. 가우도 주민들의 지속적인 분리 건의로 2005년에야 '가우리'라는 제 주소를 가진 독립된 행정 마을이 되었다.


이후 2007년 마을 주민들에게 출렁다리 계획이 전해진다. “가우도 입도조 이후 천지가 개벽하는 가장 큰 경사”라고 주민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지금은 출렁다리와 연계된 섬을 한바퀴 도는 해안산책로, 짚트랙, 요트 등 해양레저 시설을 갖춘 강진의 최대 관광명소로 상전벽해를 이뤄놓고 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던 소외받던 섬이 강진의 대표 명소로 탈바꿈된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도 누구에게든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언제 올지 모르는 기적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시간이 많지 않아 다리 중간까지 걸어갔다. 바다 위를 걷는 특별한 체험이다. 아침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푸른 바다와 강진만 양안의 뭍까지 한눈에 보이는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다리 복판으로 불고 있는 바닷바람마저 살가운 친구처럼 느껴진다. 힐링 힐링이다.


그러나 벌써 오전 9시40분을 가리키고 있다. 빨리 출발지로 가야 한다. 서둘러 한 달 전 첫회 국토종주 종료의 감격이 머물렀던 곳으로 향했다.


출렁다리 뒤로 가우도가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길 국토종주 16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