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혼자 노래해 본 적이 언제, 어디서 인가요? 무슨 노래였나요?
언제였더라 대략 15년 전 운전면허를 땄다.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확정 지은 시점이었다.
이제 취업을 하면 내 이름으로 된 차도 뽑고 멋지게 운전해 보자라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필기까지는 좋았다. 실기에서 한번 낙방을 하고 재수를 해서 간신히(?) 면허를 취득했다. 그러나 운전이 뭐 쉬운가.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그 아저씨선생님도 참 무서웠지만 견디었다는 이 기세로 차를 끌 수 있을 거라는 건 큰 오산이었다.
취업 후에는 진짜 운전이 필요해졌다. 운전을 못하니 제약이 많았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찾으며 어느 운전 학원에 운전연수를 등록했다. 운전연수를 받기로 한 날, 양 팔이 문신으로 뒤덮인 어느 강사님이 낡은 소나타를 끌고 나타났다. 본인의 딸 사진이 있는 키링을 내게 보여주며 다정한 아빠임을 어필했다. 그러나 무서운 아저씨임을 감출 수 없었음에 운전연수는 쉽지 않았고 결국 그 이후에도 나는 운전을 하지 못했다.
5년 전, 아이를 낳았다. 주변에서 아이가 있으면 운전은 필수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해주었다. 용기를 내보았다. 100일을 갓 넘긴 아이를 엄마에게 잠시 맡기고 친정 근처에서 운전 연수를 받기로 했다. 내 인생 두 번째 운전연수. 이번 강사님은 다행히 양팔에 문신은 없는 동네 아저씨 느낌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이제 애엄마가 되어 무서운 것도 덜했지만, 내가 차선을 아슬아슬하게 비켜갈 때마다 목소리가 높아지셨다. 연수 하루를 남겨 놓고 주차를 알려주었다. 오른쪽으로 두 바퀴 반 이럴 땐 한 바퀴 반. 열심히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었고 문자로도 보내주셨지만 실제러 그 공식으로 주차를 해보지 못했다. 역시나 내 두 번째 운전연수도 나를 도로로 내몰지 못했다.
지난달, 어느덧 나는 40이 되었고 아이도 내후년이면 학교에 가는 나이가 되었다. 마지막이다라는 심정으로 맘카페에서 찾은 그리고 동네엄마가 실제 겪어봤는데 괜찮았다는 “탁 샘”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대기가 많아 바로 연수가 안되면 어쩔까 싶었는데 다행히 다음 주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탁 샘은 이전 두 강사님과는 달랐다. 연수가 끝나갈 무렵 탁 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명강사시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세 번째 운전연수라면 당연히 세번째 강사가 명강사가 될 수밖에 없다며 겸손의 미덕까지 보여주었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도로를 활주 할 수 있게 되었다. 운전을 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것 두 가지가 있었다. 드라이브쓰루 카페에서 맛있는 라테를 픽업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 드라이브하는 것.
그날이 왔다. 드라이브쓰루 스벅에서 라테 한잔을 받고서 나뿐인 차 안에 드디어! 음악을 틀었다. (한동안은 정적을 유지하여 집중해야만 해서 아이에게도 엄마가 운전할 때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었다.) 학창 시절의 추억이 가득 담긴 플라이투 더스카이의 Day by day. 이제는 운전하며 어느 정도의 멀티태스킹이 되어 큰소리로 따라 부를 수도 있었다. 행복하다.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이런 큰 행복을 가져다 줄지 몰랐다. 운전을 하며 단계별로 하나하나 해낼 때마다 생기는 성취감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노래도 부를 수 있다니! “오늘 하루 어땠나요~괜찮았나요~”목소리를 하나 둘 높여보았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에서. 그 시절 오빠들과 나의 세번의 운전연수를 추억하며 목청껏 노래를 불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