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집에서 소화기 터트린 얘기

화재 진압 연습을 집에서 하다

by 신익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현관에는 항상 소화기가 놓여 있었는데, 호기심이 정말 아주아주 많았던 나는 소화기의 사용 설명서를 유심히 읽고, 생김새를 자세히 관찰하며 소화기 사용법을 상상으로 실습하곤 했다. 어느 평화로운 오후, 나는 소화기 실습을 조금 더 실전에 가깝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안전핀을 뽑고 레버를 당기는 시늉만 한 뒤 다시 안전핀을 꽂아두면 되는 간단한 계획이었다. 다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안전핀을 뽑고 레버를 누르는 시늉을 하는 순간에 나는 힘 조절에 실패했고, 레버가 눌리며 하얀 분필 가루 같은 분말이 집 안으로 대량 살포되었다. 놀란 엄마는 번개처럼 달려와 현관 바깥으로 소화기 호스 끝을 돌렸지만 이미 집안에는 온통 소화기 분말이 눈처럼 소복이 뿌려진 뒤였다. 잠시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설경(雪景)이 따로 없었다.


댓가는 혹독했다. 나는 사태수습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베란다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무려 5시간 동안 계속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집안을 치우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엄마의 잔소리를 녹음해 하나의 교향곡으로 만들어 놓았으면 좋았을껄 한다. 그만큼 지루하고 길었다. 모든 청소가 끝난 뒤에도 엄마는 나를 다시 한번 혼내 셨다. 엄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다시는 소화기를 터트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만약 그날 다짐했던 내용이 '공부를 열심히 하겠 습니다'였다면, 나는 지금 하버드 졸업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 탓인지 지금도 엄마는 소화기만 보면 불안하다고 나를 째려보신다. 나도 일부러 그런건 아니지만 그 이후로 소화기를 만져본 기억이 없다. 조만간 소화기 사용법을 다시 익혀봐야겠다. 훗

매거진의 이전글ep01. 군대에서 불낸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