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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익준 Jan 12. 2019

뭐가 그렇게 귀찮아서

야근이 많은 달엔 택시와 친해진다. 매번 11시, 혹은 12시를 훌쩍 넘겨 휴대폰으로 부르는 택시. 때로는 그 택시가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와 주는 게 괜히 고마워서 종종 속으로 감사 인사를 건네곤 했다. 오늘도 귀갓길을 잘 부탁한다. 


피곤한 몸을 택시에 싣고 목적지를 확인하고 나면 곧바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기사님이 나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가끔 기사님이 뭐라고 말을 거는 소리가 들렸지만, 창문 밖에 시선을 고정하고 못 들은 체했다. 기사님과의 대화는 한번 물꼬를 트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멈출 수 없으니까.


출발하면서 엄마에게 안심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를 전송하고 핸드폰을 넣으려다가 무심코 채팅창을 보는데 온통 안심 메세지 뿐이다. 어라? 엄마랑 오늘 문자를 안 했던가? 다시 확인해 보아도 아들이 엄마에게 건넨 말은 없다. 


지금 들어가요. 그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뭐가 귀찮아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굳게 마음을 먹었다. 오늘은 반갑게 인사를 건네야지. 몇 번이고 속으로 예행연습을 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엄마.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엄마.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엄마가 주무시고 있다. 이 시간에 깨어 있으신 게 이상하지. 뭐가 맘대로 되는 게 없다. 씁쓸한 기분으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가스레인지 위에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어묵볶음은 김치냉장고 위 칸에, 김치는 아래 칸 서랍에. 밥은 큰 냉장고 락앤락에 있으니 데워 먹어. 


허기가 졌지만, 밥을 먹을 힘은 없었다. 발끝을 세워 내 방으로 들어와 손잡이를 꺾은채로 조용히 문을 닫는다. 천천히 좁아지는 방문 사이로 보이는 엄마에게 속으로 싱거운 말을 건넸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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