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퇴근을 하던 날. 하필 비가 오더라. 날도 축축하고 기분도 꿀꿀했어. 집에 들어와서 우산을 접는데 글쎄 우산살이 하나 뚝 부러지는 거야. 신경질이 나서 우산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렸어.
집엔 아무도 없었어. 비 내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창문에 노크를 하고, 거실엔 TV가 혼자 수다를 떨고 있는.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였어. 습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축축 처지고 무거운 느낌이 들더라고.
짊어진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샤워를 했어. 최대한 느린 속도로, 더 흥얼거릴 노래가 없을 때까지. 씻고 방으로 들어와서는 이불에 아무렇게나 몸을 던지고 음악을 틀었어. 음악이라도 들어야 좀 괜찮아질까 싶어서. 왜 그런 노래 있잖아. 우울한데 개운한 느낌이 드는 그런 노래. 딱 한 곡만 반복해서 틀어놓고 멍하니 누워있었지.
가만히 천장만 보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 많이 나더라. 취준생, 대학교, 초중고, 유치원까지. 주섬주섬 낡은 생각을 헤집어 보다가 토라지듯 돌아누웠어. 딱히 나쁜 추억은 없었는데 그냥 갑자기 내가 미련하게 느껴지더라.
그날따라 불 꺼진 방이 참 까맣더라고. 낯설었어. 새삼 밤이라는 건 참 조용하구나 싶기도 하고. 방 안이 겨울에 장롱에서 갓 꺼낸 이불처럼 차갑고 시려서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지.
그냥 그런 날이었어. 이제 오늘은 됐으니까 그만 끝내고, 내일이 얼른 왔으면 하는 날. 그냥 어둠 속에 조용히 오랫동안 누워있고 싶은 날. 슬프지도, 기쁘지도 말고, 꿈도 안 꾸고 조용히만 지나갔으면 하는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