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easy)는 친절이 아니라 이해의 기준이다

침팬지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by 이키드로우

브랜드에서 말하는 이지는

말을 부드럽게 하는 일이 아니다.

설명을 길게 덧붙이는 것도 아니다.

이지는 누가 보더라도

대략 이해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침팬지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침팬지의 지능은

사람으로 치면 대략 네 살 수준이라고 한다.

그 정도로 쉽게 전달하지 못하면

브랜드는 이미

설명에 실패한 상태다.


이 말은

사람을 낮춰 보자는 뜻이 아니다.

전달의 기준을

공급자 기준에서 끌어내리자는 뜻이다.


대부분의 대표들은

자기 브랜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고민했고,

수없이 설명해 왔고,

자기에게는 이미 익숙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려운 말을 쓴다.

본인에게는 쉬우니까.


문제는

그 언어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전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한 번에 너무 많은 말을 하려는 습관이다.

이것도 말하고 싶고,

저것도 중요하고,

이것도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모든 메시지를

동시에 꺼내놓는다.


하지만 사람은

여러 개의 메시지를

한 번에 이해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메시지는

고민으로 남지 않는다.

그냥 지나간다.


이지한 브랜드는

모든 걸 설명하지 않는다.

한 번에 하나만 말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음으로 미룬다.


이건 친절함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의 순서를 설계하는 문제다.

무엇을 먼저 알면 되는지,

무엇은 나중에 알아도 되는지,

무엇은 몰라도 되는지를

미리 정리해 두는 일이다.


이지는

고객을 가르치지 않는다.

고객에게

추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아, 이거구나”라는

첫 이해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이지는

심플 이후에만 가능하다.

본질 외의 것을

이미 버린 상태에서만

이해는 쉬워진다.

본질이 흐릿한 브랜드는

아무리 말을 풀어도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애쓰지 않아도

대략 알아듣게 만드는 일이다.


침팬지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건 아직

이지 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