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왜 실패하는가

말은 오가지만, 의미는 엇갈린다

by 이키드로우

우리는 보통 소통이 실패하면 이렇게 말한다.

“말이 잘 안 통한다.”

“내가 설명을 잘 못한 것 같다.”

“저 사람은 이해력이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문제는 대부분 그 지점에 있지 않다.


말은 분명 오간다.

질문도 있고, 답도 있다.

설명도 했고,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도 돌아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화가 끝난 뒤 남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찜찜함이다.


“내 말이 제대로 닿은 게 맞나?”

“저 사람은 내가 한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왜 다시 설명해야 할 것 같지?”


이 엇갈림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회의실에서도, 관계 속에서도,

브랜드가 세상에 말을 걸 때도

같은 방식으로 반복된다.



소통이 어긋나는 순간을 떠올려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화자는

자신이 전하고 싶은 말을

이미 충분히 다 전했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화자는

“이 정도면 충분히 말했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상대가 이해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누가 틀렸느냐가 아니다.

누가 말을 더 잘했느냐도 아니다.


문제는

말은 나갔지만,

의미가 아직 가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미는

말 안에 자동으로 들어 있지 않다.

의미는

상대의 해석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같은 메시지를 던져도

어떤 사람에게는 명확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모호하다.


소통의 실패는

대부분 여기서 시작된다.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해석이 엇갈리도록 놓여 있었기 때문에.



이때 우리는 종종

말을 더 보태는 선택을 한다.

설명을 늘리고,

맥락을 추가하고,

예시를 덧붙인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의미는 또 한 번 갈라진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말은

아무리 늘어나도

의미를 하나로 모으지 못한다.



소통은

말의 총량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표현력으로 밀어붙인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소통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처음부터

의미가 가닿을 수 있는 조건 위에

놓여 있었는가의 문제다.


말은 오갈 수 있다.

하지만 조건이 없으면

의미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소통의 실패는

대부분

대화의 중간이 아니라,

시작 이전에 이미 결정된다.



이 장에서 남겨야 할 문장은 이것이다.


말이 오간다고 해서

소통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통은

말 이후에 생기는 결과가 아니라,

말 이전에 갖춰져야 할 조건 위에서만

비로소 성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