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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온직 Sep 09. 2019

친구를 호주로 시집보냈다는 착각

달을 좇아 행복을 찾아 간 그녀

올 4월, 남편과 호주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 자체도 설레는 일이었지만 그때, 이미 내 마음속에는 꽤 근사한 꿍꿍이가 있었다. 서호주 여행 후 시드니까지 몰래 찾아가, 그녀를 놀래켜주자! 시드니에 사는 내 친구 빵순이(Bread Lover)를.



나의 오랜 친구인 그녀는 2년 전, 시드니에서 호주 교포와 결혼했다. 동갑내기 부부인 그들의 인연은 23살, 그가 그녀의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오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나도 소싯적 남편과 장거리 연애를 좀 해봐서 알지만, 장거리 연애란 엔간한 신뢰와 평정심이 있지 않은 이상 무탈하게 흘러가기가 쉽지 않은 법 아닌가. 내가 본 그와 그녀는 둘 다 사교적이지만 지나침이 없었고, 부드러우면서도 독립적인 성향이 균형 잡힌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호주로 돌아간 뒤에도 그들의 관계는 미풍에 여유롭게 흔들리는 해먹이나 유유히 연못을 떠내려가는 돛단배처럼 편하고 안정적이여 보였다. 어느 날 만난 그녀가 손목 한켠에 새끼손톱만 하게 새겨 넣은 타투를 보여주었을 땐,  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의 성씨인 Moon을 상징하는 작은 초승달이었다.





그녀가 시드니에서 결혼식을 한다고 했을 때, 빵순이와 함께 삼총사 멤버인 C와 나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녀에게 웨딩 들러리가 필요하다면 응당 그 자리는 우리의 것이었다. 당시, 나는 준이를 출산한 지 6개월을 막 지난 참이었다. 호주 결혼식을 목전에 앞둔 며칠 전, 평일에 아이를 돌봐주기로 하신 친정 엄마가 갑자기 편찮으셔 비행기표를 취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남편은 '후회를 남기지 말라'며 '아이는 본인이 알아서 하겠노'라고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비행기표를 다시 알아봐 주고 비싼 값에 결제하며까지 기꺼이 내 등을 떠밀어주었다. 그의 사려 깊음에 발을 뗀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지붕 아래 위치한, 아담하지만 꽃과 사람이 만개한 식장 안에서 나는 그녀를 위한 축사를 했다. 분홍색 민소매 드레스 위로 출산 후 빼지 못한 군살이 뒤룩뒤룩 삐져나와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단상에 나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순간에도 창피하지가 않았다. 축사의 일부는 이런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내 친구 윤정아. 우리 같이 중학교 시절에 사운드 오브 뮤직의 ‘Sixteen Going On Seventeen’을 듣던 때 기억나니? 그때는 그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가 장미만큼 순진해, 17살 고등학생이 되는 것조차 두렵고 설렜었지. 내 앞에 드레스를 입고 선 너의 모습을 보니 시간이 유수와 같이 빠르다던 어른들 말씀을 실감한다. (...)

라디오에서 들으니 한 여성작가가 결혼에 대한 책을 냈는데, 여러 가지 제목의 후보가 있었대. 나는 그중에 선택받지 못한 책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어. 그 제목은 ‘내 남편만 아니라면 평생 그리워했을 당신’이야. 내 배필이 되지 못했다면, 평생 그리웠을 남자가 지금 내 옆에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이니? 그 남자와 실로 그물을 짜 나가듯 사랑을 재료 삼아 일생의 행복한 시간들을 짜 나가자.





그로부터 정확히 2년 만에,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다시 호주를 방문하게 되었고, 나는 한국에서부터 그의 남편인 문과 충분한 사전 작당모의(?)를 마친 뒤였다. 친구가 좋아하는 최신호 한국 잡지 4권과 꽃다발도 준비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빵순이는 남편과 근사한 점심 식사를 기대하며 내가 전날 묵은 호텔 로비로 걸어 들어오던 중 나를 발견했다. 한국이었으면 서로 대수롭지도 않을 얼굴들. 그런데 그 순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나 대수로운 존재임을 알게되었다.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선물이 되었다.



우리는 그녀의 남편이 안내해 준 현지인들에게 핫하다는 플리마켓 시장 한 켠에 앉아 부리또와 에이드를 먹었다. 탁월한 장소 선택이었다. 테이블에는 음식물과 새똥흔적까지 난무했지만 그녀도, 나도 개의치 않았다. 개시한 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그녀의 베이지 색 고급 코트에 브리또 양념이 묻은 게 그리 웃긴 일이던가. 순수하고도 헤픈 웃음이 난무한 오후였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져야 할 순간이 되자 불현듯 나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마지막 포옹을 하고 돌아서야 하는 순간이 되자 마치 이 외지에 혈혈단신인 그녀를 두고 돌아서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너무 일찍 철이든 아이를 보면 가끔 가슴이 시린 것처럼, 그녀가 독립적이고 야무지다는 것을 알기에 내 마음이 더 애처로웠다. 깊은 속마음은 숨긴채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와 그의 남편과 서로 '고마웠다'는 카톡을 주고받던 와중 그의 한마디에 나는 아차싶었다.



너하고 형 덕분에 나하고 윤정이가 너무 잼있게 놀고 좋은 시간 보냈지...부족하겠지만, 윤정이의 행복과 웃음 위해 늘 노력한다.



교포인 그의 문장은 조금 서툴렀지만, 내게 와 닿은 그의 진심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왜 나는 그녀가 잠시 한국에 머물다 다시 호주로 돌아가면 '그녀를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땐 '그녀를 호주에 남겨두고 간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헤어질 때 친구를 향한 내비친 염려섞인 내 눈빛이 그에게서 저런 말을 이끌어 낸 것만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지금 누구보다 빵순이의 행복과 웃음을 위해 노력하는 단 한사람은 단언컨대, 바로 그였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우리가 그녀를 한국에서 호주로 시집보낸 것이 아니리, 그녀가 달(Moon)을 좇아 행복을 찾아간 것이다. 정말 나의 축사처럼 그녀는 남편과 함께 실로 그물을 짜 나가듯 사랑을 재료 삼아 일생의 행복한 시간들을 짜 나가고 있었다. 연애 시절에도 사랑을 지속시키는 데 떨어진 거리가 문제가 될 게 없었듯, 지금도 그녀는 마치 행복을 누리는 데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 사람인 것만 같다.



그래, 그녀는 빵순이(Bread Lover)이다. 세끼 빵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자칭 빵순이. 그런 그녀에게는 밥 먹으라는 잔소리를 안 들어도 되는 시드니가 얼마나 적합한가. 나는 이제 문에게 빵순이를 맡기고, 더 이상 알량하고 쓸데없는 걱정일랑 그만하기로 했다. 여전히 빵순이의 손목에는 그녀의 웃음만을 위해 노력하는 달이 짙게 새겨져 있을테니.


2년만에 찾은 시드니에서, 그녀와 비비드페스티벌을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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