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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는사람 최지인 Nov 04. 2023

파타고니아와 벤처캐피탈 그리고 Exit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파타고니아'라는 회사를 알고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는 실용적이면서도 디자인 예쁜 의류 회사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고, 좀 더 관심 있는 분들은 매출액의 1%를 환경 보호에 사용할 만큼 환경 보호에 진심이고, 퇴사율이 4% 밖에 되지 않을 만큼 기업 문화가 좋기로 유명한 회사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는 책을 보고 파타고니아의 팬이 됐다. 파타고니아의 여러 가슴 뛰는 스토리 중에 투자업계에서 일하는 나에게 가장 감명을 줬던 스토리는 이본 쉬나드 창업자 일가의 Exit에 대한 이야기였다. Exit은 보유 지분을 매각하여 투자했던 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뜻하는 경제용어인데, 많은 분들이 파타고니아 창업자 일가의 Exit에 대해 모르고 계신 것 같아서 글을 써보려 한다. 그와 더불어 자본시장과 벤처캐피탈, 일반적인 Exit에 대해서도 살짝 다뤄보겠다.


고집 세 보이는 할아버지,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


2022년 9월,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는 본인과 가족들이 소유한 파타고니아 지분 100%를 비영리단체에 양도했다. 정확히는 전체 지분 중 약 2%인 의결권이 있는 주식은 'Patagonia Purpose Trust'라는 신탁에 양도하고, 나머지 98%의 의결권이 없는 주식은 'Holdfast Collective'라는 비영리 단체에 양도했다. 일반적인 주식 구조에서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는 배당에서 후순위고,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는 배당에서 선순위다. 이에 따라 추측해 보면 보통주는 신탁에 양도하여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도록 하고, 우선주는 비영리 단체에 양도하여 배당 이익을 통한 환경 보호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인 것 같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려면 벤처캐피탈과 자본 시장의 Exit Flow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비상장 기업에 투자할 때 통용되는 상식 중 하나는 'Exit은 IPO 아니면 M&A다.'라는 것이다. 다른 투자자에게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매각하는(구주 매각)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구주를 매입한 투자자도 결국은 기업이 IPO나 M&A를 가야 최종 회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저런 상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VC들이 투자 검토를 할 때 기업 대표님들께 종종 Exit에 대한 플랜을 물어보는 것도 결국은 '이거 IPO 가능한가요? 아니면 M&A 가능한가요? 그것도 아니면 향후 몇 년 이내에 다른 투자사가 구주 매입할 정도로 성장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이 중 IPO는 예측 가능하고 회수 이익이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투자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Exit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은 IPO를 이렇게 좋아하는데 말이다 - LYFT의 나스닥 상장


그런데 이본 쉬나드는 IPO도 M&A도 아닌 신탁과 비영리 단체에 기부라는 방법으로 Exit을 했다. Exit을 결정하면서 홈페이지에 쓴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글을 보면 그렇게 Exit한 이유에 대해 알 수 있다.


1) IPO를 할 경우 : 좋은 의도를 가진 기업이라도 기업이 공개되면, 장기적인 비전과 책임감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압력이 가해질 수밖에 없다.

2) M&A를 할 경우 : 파타고니아를 팔고 모든 돈을 기부한다고 해도, 파타고니아의 새로운 오너가 기존의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킬지 알 수 없다.


위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따진 것을 보면 이본 쉬나드는 정말 환경 보호라는 목표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또 하나, 그가 고려했을 자본의 흐름까지 생각해 보면 엄청나게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기업 가치 평가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DCF(Discounted Cash Flow)이다. 기업이 앞으로 벌어들일 예상 현금 총액을 현재 가치로 할인하고 리스크에 대한 할인율을 곱해 기업 가치를 산출한다. 예를 들면, 건물을 구입할 때 앞으로 평생 이 건물에서 임대료로 받을 수 있는 현금의 총액을 구해서 할인률을 적용해 계산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2) DCF로 기업 가치를 계산한다면 IPO든 M&A든, Exit 시점에서 받을 수 있는 현금의 총량은 파타고니아가 앞으로 사업을 지속하면서 벌게 될 현금의 총량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현재 가치로 할인도 들어가고, 리스크에 대한 할인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3) 그렇다면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면서도 가장 많은 돈을 환경 보호에 쓸 수 있는 길은, 회사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의사 결정 구조를 최적화하고 앞으로 벌게 될 돈을 환경 보호에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가. 파타고니아의 결정이 너무 놀랍지 않은가. 파타고니아의 추정 기업 가치는 약 4조 원이라고 하는데 롯데타워를 짓고도 남는 돈을 말 그대로 지구에 환원한 거다. 그것도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그래서 Exit 하면서 쓴 마지막 글의 제목이 '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이다.



다만 여러 생각이 드는 부분은 여기다. 이본 쉬나드의 이 모든 결정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아서다. 파타고니아를 창업했던 1973년부터 Exit을 한 2022년까지 지분의 100%를 창업자 일가가 가지고 있어서 가능했다. 만약 내가 파타고니아에 투자했었고 창업자가 이 Exit 방법에 대한 동의를 구해왔다면 나는 어떻게 했었을까? 아마 절대 동의하지 못했을 거다. 높은 배당률과 배당 우선권을 요구하거나, IPO 혹은 M&A를 하라고 회유하거나, 지분 매입 금액에 높은 이자율을 적용해 다시 사가라고 소송을 걸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성장시키고 싶은 투자자인데, 파타고니아 같은 진정성 있는 기업이 탄생하고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벤처캐피탈은 방해가 되는 존재일까? 지분 투자가 아닌 CB, BW 같은 메자닌 투자나 대출이 더 맞는 길일까? 점점 더 공부하고 고민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책에 나온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친다.


기업가 정신에 관한 말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기업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비행 청소년을 연구하라"이다. 비행 청소년은 행동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이건 정말 엿같네. 난 내 방식대로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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