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도 정인이처럼, 불행해 보이던 아이가 있었다. 내 손이 머리 근처에 가기만 해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눈을 질끈 감던 녀석. 초등학교 2학년. 아이는 매일 전과목 교과서를 가방에 넣어 매고 다녔다. 아무리 사물함에 넣으라 해도 엄마한테 혼난다며 안 된다 했다. 제 몸보다 뚱뚱해진 가방 무게에 온 몸이 휘청휘청하는데도 매일 책가방에 교과서를 꾸역꾸역 넣어갔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아이 아빠는 새엄마가 아이를 엄하게 키우느라 그런다 했다. 매일 교과서를 베껴 쓰면서 공부시키느라 그렇다고. 오죽 말을 안 들으면 그러겠냐고. 결혼도 안 한 젊은 선생이 뭘 아냐며 내버려 두라 했다.
길지도 않은 교직 경력인데, 나는 어른들이 만든 불행 속에 사는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꼭 신체적 학대가 아니라 해도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보살핌 받지 못하고 자라는 아이들이 참 많았다.
초등 저학년인데 말을 못 배운 아이가 있었다. 도망간 아빠 탓에 농사짓느라 바쁜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하루 종일 애가 집에 혼자 있느라 말을 제대로 못 배웠다. 그 어눌한 말로 '예쁘다' 하며 나의 긴 머리를 만지던 더벅머리 여자아이. 할머니가 머리카락 기르면 안 된다고 늘 짧게 잘라 버린다고 했다. 학교 끝나고 우리 집에 데려와 하룻밤 자던 날, 평범한 모든 것이 그 아이에게는 처음이었다. 처음 타 보는 엘리베이터, 누군가와 함께 하는 숙제, 처음 먹어보는 피자, 처음 타 보는 자전거. 여전히 채 다 벌리지 못한 입모양으로 어색하고 행복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혼하고 따로 사는 엄마 이야기를 날마다 하는 아이도 있었다. '선생님이 안경을 쓰면 우리 엄마랑 닮았다'며 나보고 맨날 안경 쓰고 오라던 아이. 소풍날 처음 뵌 아이 엄마는 나처럼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계셨다. 소풍이 끝나고 통학버스 앞에서 헤어지기 싫은 엄마 배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더라. 소풍 때 엄마가 오기로 약속했다고 몇 날 며칠 그렇게 자랑하며 행복해했었는데.
말수가 적고 공책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아이도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 나온 김홍도의 풍속화를 표정부터 옷 주름까지 섬세하게 따라 그렸다. 이건 재능이다 싶어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허무했다. 이 시골에서 그림을 아무리 잘 그린다한들, 뭐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되겠냐고. 어차피 크면 농사지을 애니까 선생님이 바람 넣지 말라고.
정인이가 겪어야 했던 가혹했던 고통과 비교할 수 있겠냐만은, 정인이의 죽음을 바라보며 우리 반을 스쳐 간 몇몇 아이들이 떠올랐다. 정인이도, 우리 반 아이들도, 생각할수록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어른들이 만든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힘없는 아이들. 나도 어른이기에 미안할 뿐이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을 더 끌어안고 더 지켜주지 못한 그 어른들처럼, 나도 어른이라 부끄럽고 미안하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불행에 대해 꾸밈없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듣고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까. 참 싫다. 가끔 교사인 내가 참 무능력하게 느껴진다.
정인이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지금 어떤 심정일까. 사진 증거도 남기고, 병원에도 데려갔지만 결국 아이는 이 세상에 없다. 두렵다. 나도 교사니까. 어떤 아이의 불행을 맞닥뜨리는 것도 두렵고, 그 불행 앞에 내가 얼마만큼 행동할 수 있을지도 두렵다. 두려운 내가 미안하고 싫다.
정인아, 선생님이 미안해. 어른들이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