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인이라면 누구에게라도 닥칠...
인생은 불완전한 것
퇴근 즈음 갑자기 보스가 나를 찾았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다운되어 있고 어두웠다. 퇴근한 것 아니면 잠깐 방에 들르라고 한다. 뭐지? 내가 뭐 잘못했나?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잘못한 일이 없기에 노크 후 방에 들어갔다.
뭔가 공기가 쎄했다. 들어서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나 짤렸어'다.
응? 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내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고 눈은 그러잖아도 큰데 더 커졌다.
'내일부터 다음 주 내내 휴가 쓰고 그 담주에 짐 싸서 나갈거야' 이런 얘기를 담담하게 전했다. 평소에도 쿨한 양반이지만 오늘은 특히 더욱 투 머치로 담담하려는 목소리다.
왜요? 라고 물어볼 생각조차 할 수 없이 벙쪘고 그렇게 머뭇머뭇하다 방을 나왔다. 뭐지?
우리 회사는 스타트업이지만 최근 회사 입지를 변화시킬만한 굉장히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그것을 이끈 것이 보스고 무사히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큰 리워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보스는 꽤 오랜 시간 회사와 같이 한 사람이고 나를 뽑은 장본인이다. 이제까지 많은 보스를 모셨지만 가장 합이 잘 맞고 다음 회사를 가더라도 같이 일하고픈 그런 보스다. 그런데 갑자기 잘렸다? 앞뒤자른 맥락에 머릿속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어찌됐든 어떤 연유에서건 대표가 한순간에 그를 잘랐고 그는 꽤 큰 타이틀을 내려놓고 다시 실업자가 될 것이다. 사실 나와 나이차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뉴스레터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사실 사업이라고 하기에 별다른 수익이 없어 거창스럽지만, 언젠가 내 월급 이상을 벌 것이다란 목표를 갖고 있기에 굳이 사업이란 수식어를 달아본다. 어찌됐든 뉴스레터를 시작하게 된 이유도 바로 위와 비슷한 사건 때문이다.
이 직전 회사 역시 스타트업이었는데, 악화된 경영난에 임직원 80%가 내쳐졌다. 그때 희망퇴직을 요구받았고 PR팀 전원이 나가게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회사에 잘만 붙어있으면 큰 걱정 없겠지?란 안일한 생각을 한 순간에 무너뜨린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회사에 연연하지 않고 짤려도 돈 걱정 없고, 커리어 걱정 없을 나만의 일을 해보자 라고 해서 시작한 것이 뉴스레터 사업이다. 중간중간 수익도 나고 어느정도 인정도 받고 있지만 아직 월급 이상을 넘어서지 못해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런데 데쟈뷰처럼 비슷한 모습이 다시 그려지게 된 것이다. 비록 난 아니지만, 마음 놓고 다닐 수 없는 곳이야말로 회사구나, 나도 한 순간에 내쳐질 수 있는데 뭐하러 굽신굽신과 스트레스를 달면서 헌신(?)하나란 생각이 아주 강하게 내리쳤다.
지금 일을 하면서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이정도만 잘하겠지? 나를 대체할만한 인재는 없겠지? 나 인정받고 다니는 거 맞지?'란 생각을 자주했다. 그런데 이 또한 나만의 착각이겠구나란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돈을 받으며 일하면 당연히 잘해야 할 것들이고 세상에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특별한 것은 없다 란 생각이 들었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세일하는 회 종합세트와 청하 한 병을 사들고 와서 조용히 해치웠다. 마음 한켠 쓸쓸하고 내 커리어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불안정한 인생 속에 나를 지킬 수 있는 무기는 지금 현재 얼마나 장착하고 있는지 다시한번 돌아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