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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앤나 Jun 14. 2021

이메일대신 현관문을 열어놓는 서점

예술가를 위한 .com 이름은 0프랑, 그리고 Ofr.

파리에서 가장 힙한 서점의 주소 .com



걷기만 해도 낭만이 넘치는 마레 지구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카페, 갤러리, 소품샵으로 즐비하다. 곳곳이 볼거리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이 가는 곳이 있다. 커다란 유리창에 걸려있는 포스터와 크고 작은 테이블 위로 진열된 사진, 패션, 건축, 예술, 문학 책들이 조명 아래 빛나고 있는 곳. 그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 사이로 들어서면 Librairie, galerie(서점, 갤러리)라고 적혀있다.



갤러리, 출판사, 서점

특유의 감성으로 활기를 띄는 마레지구에서 Ofr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상점 앞에는 대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유리창에 걸려있는 포스터를 바라보거나 이 달에 진행될 이벤트 소식같은 것을 읽고 있다. 활짝 열려있는 문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걸치고 있는 에코백에는 Ofr이라고 적혀있다.


Ofr은 예술 서점이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름일 뿐 Ofr이 하는 일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들은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너머 독립 출판 후원, 작품 전시, 다른 예술 분야와 협업으로 새로운 이벤트를 진행하며 예술가의 커뮤니티를 자처하는데, 그들이 후원하는 프로그램을 보자면 안식처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작품을 펼쳐낼 수 있도록 돕는 것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낼 영감을 환영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다루는 품목은 방대하다. 책과 매거진부터 포스터와 엽서를 비롯해 티셔츠와 점퍼, 조명과 도자기, 사진과 회화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종류의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서점의 주인 알렉상드르(Alexandre)는 말한다.


"패션 잡지를 사러 온 고객이 '어라, 고대사에 관한 책도 꽤 멋진데'라고 말할 수 있도록 배치합니다. 그건 우리만의 기술이라고 할 수 있죠."


왜 서점이자 갤러리로 불리기를 바라는지 알 수 있는 대답이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아름답게 공유하는 곳, Ofr은 그렇게 시작됐다.



서점의 역사, 새로울 역사

Ofr은 1996년 프레텍스트(Pretext)라는 이름의 매거진으로 출간된 것이 시초다. 영화와 사회학을 연구하던 알렉산드레와 마리(Alexandre, Marie의) 남매는 파리의 다양한 문화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매거진이 없다는 것을 포착한다. 당시 매거진들은 특정 분야만을 다루거나, 가볍게 읽기엔 꽤 높은 가격대로 구성되어 있던 터였다.


이들은 파리의 문화를 더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매거진을 제작하기로 한다. 주말에 볼 수 있는 소규모 전시나 신진 예술가를 소개하며, 친근한 주제로 생생하게 전하기를 원했다. 일단 관심을 받는다면,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거진의 가격은 0프랑. 무료로 제작했다.



처음엔 매거진을 배급하기 위해 유명 박물관이나 관광지 주변의 상점을 찾아다니다가, 마침내 출판과 판매의 기능을 모두 갖춘 서점을 설립하기로 한다. 매거진의 오프라인 공간이자, 다양한 예술가와 교류하는 장소가  될 것이었다. 이후 1999년 생마르텡 운하에서 첫번째 서점의 이름으로 문을 연 이래 마레지구로 옮긴 지금까지 코펜하겐, 런던, 베를린 등 200곳에 이르는 팝업스토어로 예술을 공유하는 세계적으로 힙한 장소가 되었다.



Ofr은 초기의 목표처럼, 주요 출판사 몇 군데가 아닌 여러 사람과 만나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한다. 모든 사람들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있고, 서점은 그것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150여개에 이르는 책을 출판했으며, 영화 상영이나 밴드 공연, 북 토크 등 한 해에만 평균 60~80개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 주 당 최소 2개의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인 덕에, 마레 지구 전체의 문화축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파리의 예술가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브랜드도 찾아오지만, 이들은 한결같다. 모든 이를 문을 열고 맞는다. 단, 정말로 현관문만.


이것이 Ofr이 고수하는 가치다.



"우리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를 원해요. 함께 일할 사람과 작품을 직접 보길 바라죠."  


서점은 이메일을 주고 받거나 전화로 말하는 대신 서점에 오기를 권한다. 실제로 이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 연결이 어렵다는 약간의 불평이 섞인 후기가 많은 이유다.



작품 너머 예술가를 만나면 탄생하는 서로의 영감은 무수한 작품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하나의 작품은 결코 하나의 전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Ofr의 지론이다. 서점에 찾아와 서로를 만남으로써 수갈래로 확장되는 여정을 즐기길 바란다며 덧붙인다. "서점의 문은 항상 열어둡니다. 네, 정말이죠. 그러니까 영하의 날씨에도 말이에요."



서점의 이름 Ofr의 뜻은 0프랑, 즉 무료라는 뜻에서 출발했다. 처음 프레텍스트 매거진의 이름이었던 Ofr은 지금에 이르러 Open, Free, Ready라는 뜻을 포함하게 됐다. 항상 열려있어서 누구든 자유롭게 들어오는,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된, 서점은 예술가의 거실이고 예술의 안식처다.



서점은 아티스트 레지던시도 운영하고 있다. Ofr을 통해 출판하거나 갤러리에서 전시한 적이 있는 예술가라면 누구든 머무르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 레지던시는 프랑스 남서부 Lot 지역에 있는데, 아름다운 강이 흐르는 시골 마을이다. 지금까지 100명이 넘는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 휴식을 취했다.


레지던스 이용요금은 놀랍게도, 혹은 예상하듯 0프랑이다. 처음 프레텍스트 매거진이  불러온 가치는 엄청났다. 대중의 관심, 호감, 그리고 예술의 연결과 창조. 그로써 무수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되었듯, 레지던시 역시 마찬가지다.


예술가를 환영하고 편안히 머무르게 하면, 그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서점계와 출판계, 대중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Ofr은 여전히 믿는다.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 '예술가를 위한 .com' 이 되고 싶다는 서점에는 이미 만들어진 책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만들어 갈 이야기의 소재와 영감이 무한하다. 이에 공감하고 합류하는 사람들로 매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서점은 말한다. 출판에 대해 전혀 몰랐던 자신들이 매거진을 펼쳐냈듯, 모든 예술가의 시작이 어렵지 않길 바란다고. 그렇기에 가진 것이 돈이 아니라 영감일 때, 할 수 있는 것이 판매가 아니라 표현일 때, Ofr은 그 과정이 즐거운 여정이 되도록 도울 것이라고.


지점이 아니라 방향, 목적이 아니라 가치를 공유하는 곳.


흥미로워 보이는 타이포그라피 책을 구매하며 파리의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마리는 펜을 꺼내들며 즐거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데 잠깐만요. 생각할 시간좀 줄래요?" 서점 안 쪽의 전시는 봤는지, 어떤 책을 살펴봤는지 대화를 이어가며 마리는 봉투에 적었다.


지금 파리에서 주목받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 갤러리, 팔레 드 도쿄.

아름다운 정원과 뒷골목의 앤티크 상점이 매력적인, 팔레 루아얄.

그리고 지하철역 피라미드.



파리에서 일어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기 위한 길까지, 즐기길 바라는 마음일까. 파리의 곳곳에서 다양한 장소를 추천 받았지만 -더구나 그 자체로 유명한 역이 아니라- 갤러리나 전시회를 보러 가기 좋은 지하철의 볼거리를 추천해준 곳은 Ofr이 유일했다.



이메일 대신
현관문을 열어두는
서점의 문으로 연결되는,
파리로 떠났다.



우선, 피라미드역으로.



언제나 새로운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은 흥미롭고 다정하게, 다음 문을 열어주었다.

게다가, 파리를 0프랑으로 즐길 수 있는 쏠쏠한 방법도 알게됐다.


작은 전시와 골목길, 그리고 가는 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 적혔다


"파리 여행,

영감을 얻는건 0프랑이야,

지금 이 길에서라면.

지금 이 순간부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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