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Jun 21. 2019

청국장 노스탤지어

by  윤희

청국장 노스탤지어


청국장은 때에 따라 단단한 마음을 갖고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면 옷에 냄새가 배기진 않을까 걱정하며 먹어야 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 청국장은 예전에 비해 냄새가 많이 나지가 않는다. 냄새나지 않는 기술이라도 개발한 걸까?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는 시골에서 겨울마다 청국장을 보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건강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시골에 갈 때면 사랑방 아랫목에 메주가 단단히 묶여 층층이 쌓여 있는 걸 본 기억이 있다. 할머니가 보내준 청국장을 겨울 동안 엄마는 자주 끓여주곤 했다. 덕분에 내 교복에서는 청국장의 냄새가 향수처럼 여겨졌었다. 고등학생 시절 내 짝꿍은 오늘도 청국장 먹고 왔냐며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똥냄새도 아니니 교복에서 퍼지는 은은한 냄새는 그저 겨울에 나를 든든하게 하는 할머니의 향기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식습관 때문인지 입맛이 없을 때면 청국장을 찾곤 한다.


10년쯤 됐을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 인근 골목길에 꽁꽁 감춰있던 청국장 전문집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새싹 나물에 여러 반찬과 고추장을 넣고 청국장의 콩과 두부를 한데 섞어서 비벼먹는 청국장. 그 한 끼를 먹고 나면 남은 오후가 든든했다. 옷에는 냄새가 한껏 배겨 퇴근할 때까지도 청국장의 온기를 함께 하는 것 같았다. 그곳의 청국장 냄새는 너무 심해서 섬유 방향제를 신발장 위에 항상 올려놓곤 했었다. 얼마 전 그 기억이 떠올라 장소를 더듬더듬 찾아갔다. 10년이 지났는데 그곳은 아직 건재했다. 반가움에 모든 감각이 깨어난 듯했다.

엄마와 함께 따뜻한 청국장을 먹고 난 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회초년생일 때 다녔던 직장 건물은 다른 업종과 점포들로 채워졌다. 나는 10년 가까이 왜 여기를 올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때의 사회생활이 떠올랐다. 난 꽤 당당한 사회초년생이었지만 신입의 기를 죽이겠다며 행하는 몇몇 선배들의 행동들과 눈빛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자리에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이 보였던 내면의 초라함과 불안은 한데 뒤섞여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분명 이해 차이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어른의 자리의 놓여 있지만 그때의 그들처럼 치열하게 자리를 지켜야 할 곳이 없다. 당시 내가 선배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어른이라는 갑옷 안에 다양한 모순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들의 나이가 되고 난 뒤 그때 비난했던 어른보다 더 어른답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반문을 해본다. 버스를 타고 그곳을 지나칠 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과 그때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들 모하면서 살고 있을까? 신기루처럼 모든 게 사라진 공간에서 청국장 집만이 그동안의 역사를 다 알고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청국장 집만은 그곳에서 오래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식당을 나왔다. 청국장의 구수함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는 향기로 마음 안에 온기를 품을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 켜켜이 쌓아 올린 청국장의 추억의 맛은 더 깊고 진해졌다.




by 윤희

instagram @kim_sensitive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뭐해? 그러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