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제 20181114호
2017년 여름,
동거인은 낮잠을 자다 일어나 갑자기 붓을 들고 분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머리와 가슴, 배까지는 그런대로 봐주겠지만, 다리수도 엉망이고 더듬이와 날개 모두 근거 없는 그림이다. 이런 걸 그림이라고 그린다. 주둥이만큼은 거칠고 사납게 그려져 동거인의 심정이
당시 어땠는지 이해정도는 가능한 그림이다. 그래도 어지간히 못생긴 그림은 틀림없다. 동거인은 그림을
완성하고 뭔가 허전했는지 위쪽 여백에 mosquito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그렇게 해서 나는 태어났다.
동거인은 연속해서 친구 셋을 더 그렸는데 그들은 모두 독일인 부부에게 입양됐다. 두당 몸값은
단돈 오천 원이었다고 한다.
동거인은 날 가만두지 않았다. 천정에 달아두고 모기에게 물려 가려움을 견디지 못할 때마다 나를 흙 켜봤다. 그것은 동거인의 무식함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나는 수컷이라 사람 피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동거인은 무려 8개월을 좁은 책방에서 함께 지내게 됐다.
책을 사러 오는 손님은 하루 2, 3명으로 동거인의 한숨은 점점 무거워 보였다.
2018년 4월 30일 이사를 하게 된 동거인은 모든 물건을 옮기고 마지막으로 천정에 있는 날 상자에 담았다. 잊지는 않은 모양이다.
5월부터 동거인과 나는 새로운 곳에 불시착했다. 카페 마을과 마디. 동거인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곳에 있다. 이곳 상황도 이전 책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거의 혼자 있고 여전히 혼자 뭔가를 만들고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멍청한 동거인이 날 상자에 넣어둔 채 새까맣게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상자 테이핑이 어설퍼 그 틈 사이로 마을과 마디와 지구불시착 일부를 볼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해서 난 5개월째 상자 안에서만 지내고 있다. 어서 빨리 저 멍청이 동거인이 천정에라도 달아 줬으면 하는 게 유일한 소망이라 할까?
11월 14일, 오늘도 동거인은 뭔가를 만들고 있다. 마을과 마디의 새로운 메뉴판이다.
빈티지 신문을 모티브로 한 것 같다. 글씨체와 디자인도 잘 어울리고 제법 솜씨를 부려본 것 같다.
왼쪽에 네 컷 만화로 유모 코드를 잡을 것으로 보이는데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래 약간의 여백으로 마을 소식을 담을 지면이 있는데 공간이 넓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제법이다. 동거인 이건 칭찬해주겠지만, 돈 되는 것을 좀 더 잘해라.
지구불시착
instgram @illruw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