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을 애써 모른 척하는 습관

by 지구불시착 김택수




어느 날 월요일 아침이었다.

지난밤, 잠을 쉽게 다루지 못했던 이유로 아침이 늘어지고 말았다. 오늘 하기로 했던 부가세 신고를 상기시켜준 것은 아내였다. 아침을 먹는 동안 아내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가세 신고 기간이란 말을 아내는 허투루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잠을 이루지 못한 원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에게는 회계와 관련된 용어들이 너무 두려웠다. 신고 기간이라는 압박감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거부감이었다. 지난해부터 부가세 신고를 스스로 해야만 했다. 10여 년을 함께 해오던 회계사와 결별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그 정도 일은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 형편임을 지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 만만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한편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도 했다. 매달 회계사로 지불되는 돈을 아껴야 하는 게 우선이었다. 1년에 두 번. 그렇게 산을 넘으면 언젠가는 익숙해질 것이다.


작년 이맘때였다. 나는 구청에 가서 신고를 끝낸다는 구체적이지 않은 무언가의 명제만 가지고 무작정 구청에 갔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와야만 했다. 데스크의 직원에게 어떻게 왔냐는 말을 듣자 언어체계가 텅 비어버리는 버그가 생겨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나에게 일사천리 해법을 가르쳐 줄 것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것만을 기대하고 구청에 간 건 아니었을까. 허무하게 날아가 버린 의지는 걸음을 무겁게 했다. 부가세 신고를 포기하고 책방에 돌아오는 길에는 알라딘이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 피천득의 수필집 한 권을 샀다. 기분 전환을 위해서였다. 마침 지인으로부터 피천득 산책길에 가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나는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던가. 어려운 일을 애써 모른 척하는 습관은 시간이 흘러도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오전 내내 부가세 신고 동영상을 봤다. 발성이 좋은 아나운서가 하나도 어렵지 않아요 하는 얼굴로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알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어느새 허물어진다. 나는 언제나 모르기 때문에 누리는 편함을 학습해 왔다. 누군가 해주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늘 그런 식이었다. 결국, 아내와 난 세무서에 가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세무서는 코로나로 인해 대면을 멀리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부가세 신고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고, 홈페이지 영상을 적극 참고하라며 결의에 찬 안내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우린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 아내와 난 다정했다. 아내에게 나의 점수를 물으니 60점이라 한다. 생각보다 점수가 작다고 불평했다. 아내는 시키는 일에 조금만 더 지체 없이 하면 90점이라며 기회를 준다. 아내가 나는 몇 점이냐고 물었을 땐 한 번도 백 점이 아닌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우린 잠시 부가세 신고를 잊기로 약속한 것처럼

아무말 없이 손을 맞잡고 걸었다.


조금 귀찮은 일을 뒤로 미루고 나니 남는 건…….



illru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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