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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y Feb 14. 2024

소화 속도

만성 소화불량 상태

최근 들어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뭘 먹으면 배는 안 찼는데 가슴이 계속 답답한 느낌이고 조금 이따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 그럼에도 답답함은 그대로.


시간이 지나 배가 고파와도 여전히 답답함은 그대로 남는다.

기분 탓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체한 느낌과 배 고픔이 공존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정말 인체는 신비롭다.



생각해 보니 나는 뭘 먹지 않아도 "소화 속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 적이 많다.

감정의 소화 속도에 대해서다.


화가 나도 슬퍼도 기뻐도 그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일단은 한번 다 억지로라도 삼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다 소화가 됐을 때 비로소 그 맛을 느끼고 행복해하고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냉정하게 돌이켜보면서 표현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서운함을 토로할 때 상대방에게는 이미 그 일이 과거의 일이 되어 있어 온도차가 많이 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내가 뭘 해도 느리고 둔한 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순발력을 갖고 싶었고 주변에 바로 반응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다.


그런데 과연 나는 정말 느린 걸까.

진짜로 느렸다면 삼키지도 입안에 넣지도 않았을 텐데.


서운함을 창피함을 죄송함을 행복함을 티가 안 나게끔 숨기려다가 바로 삼켜 체하게 된다.

나는 오히려 너무 빨랐다. 너무 방어적이었고 내 기준으로 남에게 못 보여줄 모습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몸 안에 여러 필터도 필요하고 그러다가 내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결과적으로 만성 소화불량상태가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삼키지 말고 받아쳐야겠지.


삼십몇 년 못한 걸 지금부터 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만 못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도 이제는 꼭 꼭 지켜야 할 게 있으니.



체한 체로 산책을 나가본다.

숨을 크게 내쉬면서 걸어본다.


배가 고파 오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체한 것도 조금 나아진 것 같고 머리가 복잡해진 것도 조금은 맑아진 느낌이다.


결국 내가 움직여야만 하는 것 같다.

나머지는 시간이 도와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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