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거실에 있다보면 긴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단답형 대화 정도는 가능하지만,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자기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나누는걸 싫어한다. 얘기 그만 하라고, 자기들한테 집중하라고 계속 엄마 아빠를 부른다. 거기다 잠자리마저 함께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더욱 대화할 시간이 없다. (아이가 엄마 없이 자는 걸 너무 무서워해서, 아빠만 따로 자고 아이들과 엄마가 3명이서 함께 잔다.)
그런 우리가 그나마 몇마디 이상 주고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종종 있다.
둘이서 밥 먹을 때
남편은 보통 평일엔 저녁을 먹고 들어오기 때문에, 주말에만 함께 식사를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메뉴를 따로 해서 평소 먹고 싶었던 걸 시켜먹거나 해먹는데, 밥 먹는 시간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저녁시간은 특히 아이들과 따로 먹는 편이다. 아이들이 저녁에 티비 보는 동안 우리 둘이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그 시간은 유일하게 핸드폰 없이, 아이들의 방해도 없이 둘이 오롯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우리 밥 먹을 때는 핸드폰 하지 말자’라고 자기가 먼저 이야기 했다. 그런 규칙(?)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동의하는 바이기에 따랐다. 그 규칙을 지금까지도 서로 잘 지키고 있다.
중간 중간 아이들이 채널 바꿔달라고 부르면 달려가야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꽤 긴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불 끄고 같이 누워있을 때
남편이 혼자 자는 방은 우리의 침실이다. 신혼 시절 우리가 함께 잠들던 퀸사이즈 침대가 있는 곳. 아이가 태어난 뒤로 그 방은 남편의 방이 되었다. 그 침대 위에 태블릿 pc들을 펼쳐놓고 영상도 틀어놓고 게임도 하면서.. 내가 아이들을 재우는 동안(아이들은 잘 때 아빠가 방에 들어오는 걸 싫어한다) 남편은 자기 방에 들어가서 나름 힐링을 한다. 그의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아이들이 일찍 잠들고, 나도 좀 심심하고 그러면 그 방에 침입(?)한다. 남편이 오라고 한 적은 없다. 항상 내가 먼저 침입한다. 침대에 누워서 ‘놀아줘’ 하면서 치댄다. 태블릿이랑 핸드폰 다 치워버리고 불 꺼버림. 그러면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이들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정치 이야기,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 진지하면서도 싱거운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하다보면 새벽 1시가 넘도록 이어진다. 다음 날 출근해야되는데, ‘이제 그만 자자’ 해놓고 계속 얘기 하고 얘기하고.. ‘아, 진짜 대화 안통하네’ 하면서 계속 얘기하는게 이상하고도 신기하다.
차 타고 멀리 나갈 때
아이들이 많이 어릴 때는 카시트에 앉아서 계속 칭얼거리다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다 좀 장거리를 가게 되었는데 아이가 많이 울면 남편은 운전하는데 집중 안되서 예민해지고, 나는 나대로 애 달래느라 힘들고. 그런데 이제 좀 컸다고 아이들이 차 안에서 조용히 앉아있는다. 한 시간 정도는 노래 들으면서 즐겁게 갈 수 있다. 물론 ‘언제 도착해?’라고 수시로 물어보긴 하지만.
그러다 아이들이 차에서 잠이 들기라도 하면 봇물 터지듯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물론 전제는 아이들이 조용해야 하고, 남편이 예민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운전할 때 예민해지는 경향이 종종 있음) 특히 밤에 차 타고 갈 때는 마음이 좀 차분해지는 느낌도 있어서 대화하기 좋은 것 같다. 이 때, 말 다툼을 하게 되는 일도 종종 있다. 운전 중이라서 그런가, 마음이 촤악 가라앉은 밤이라서 그런가.
우리의 대부분의 시간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 외의 시간은 최대한 서로의 자유와 생활을 존중해주려고 한다. 혼자 쉬는 시간, 작업하는 시간, 카페 가는 시간, 친구 만나는 시간.. 그러다보면 서로 고마운 마음은 생기는데, 묘하게 …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친밀하지가 않다. 서로의 마음도 모르고, 요새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는게 없어진다.
서로에게 조금만 곁을 내어주고, 조금만 먼저 다가가면 이야기 나눌 시간이 생긴다.
아마 남편은 우리의 ‘대화’에 대해 별로 의미 있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워낙 단순한 사람이라 의미 부여를 잘 안 하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소소한 대화의 시간이 얼마나 의미 있는 순간인지 계속 의미 부여하면서 살거다. 아직도 적당히 밀당이 필요한 관계다, 부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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