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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엄의 불가침 Oct 11. 2024

농촌으로 유학 온 고3엄마 #16

'명봉도서관'을 아시나요?

 우리 동네 가까운 곳에 너무너무 예쁜 사립 도서관이 하나 있다. 정읍에 내려와 제일 먼저 한 일이 근처에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찾는 것이었다. 그때 검색창 맨 윗줄에  명봉도서관이 있었지만, '사립'이란 두 글자 때문에 '개인이 소소하게 카페 겸 도서관을 운영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지나쳤다.  나는 그때까지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언제든 빌릴 수 있어야만 참다운 도서관이란 나름의 정의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정읍시에서 하는 시립 도서관을 찾아가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책을 빌려왔었다.


 그런데 윗집에서 사는 영미(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쓴다)씨가 어느 날 물었다.

"명봉도서관을 아시나요?"

"사립도서관 아닌가요?!"

"거기 가봤어요?"

"아뇨."

"거기 한번 가보세요. 책을 읽어도 좋고, 그냥 벤치에 앉아 있어도 좋아요. 특히 해 질 무렵 벤치에 앉아있으면 마음이,,,  ,,,  ,,,  ,,, 위로가 되기도 하고 ,,, 음 ,,,

가보면 알 수 있어요."

영미 씨는 이미 나에게 유용한 정보들을 제법  알려주었던 터라 그녀의 정보가 알토란 같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영미 씨가 갑자기 명봉도서관을 가보라고 했다. 도서관에 책이 많다거나 거리가 가깝다거나 그런 얘기가 아니라 그냥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숨은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들떠서 아들과 함께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들어가는 입구가 범상치 않았다. '역시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구나' 싶어 차를 돌려 돌아가려다가 마침 도서관에서 나오시는 두 분이 있길래 창문을 열고 물었다.

"도서관에 왔는데 아무나 이 문으로 들어가도 되는가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우산을 쓰고 계시던 두 분 중 유난히 인상 좋은 한분이 몸을 숙여  안에  있는 나에게 눈을 맞추며 대답을 하셨다.

"그럼요. 이리로 들어가서 둘러보셔요."


 그날 그 인상 좋은 분이 도서관 관장님인걸 아는 데는 서너 시간이 체 안 걸렸고, 그 후로 나는 뻔질나게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있다. 마치 내 사적 공간인 거처럼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수시로 밟고 있으며, 영미 씨가 말한 벤치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덕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지만, 늦은 시간까지 개방해 있는 열람실에서 간혹 더위를 피해 작업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어린이 자료실을 전세 낸 듯 아들과 둘이 사용하는 날이 많다. 감수성이 뛰어난 영미 씨가 그냥 가보라고 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미국 개척시대에, 서양에서 쳐들어온 침략자들이 원주민인 인디언을 힘으로 아내면서 '이제부터 이곳이 내 땅이야'라고 선언했다. 그때 인디언들은 '어떻게 하늘을 소유할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하늘과 땅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인디언들의 철학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들어준 명봉도서관. 명봉도서관을 이토록 잘 누리고 있는 내가 이 도서관의 주인이 아닐까?! 책은 한 줄만 읽는 날도 있지만 그냥 하염없이 초록의 잔디밭을 바라보다 꾸벅꾸벅 졸고, 내리쬐는 햇볕아래에서 눈을 감고 한발 한발  땅과 교감을 하고, 무궁화꽃, 배롱나무꽃, 능소화의 제각각 다른 색의 꽃들과 눈인사를 하고, 비 오는 날엔 흙내음이 은은하게 풍기는 뒷 정원을 코를 킁킁거리며 거닐고, 도서관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을 오래된 나무에 손을 지긋이 대어 지나간 이야기를 듣고, 비 온 뒤 티끌하나 없는 하늘과 유난히 새하얀 구름을 핸드폰에 담는다. 

도서관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처음 도서관에 뼛쭈뼛 들어갔을 때, 복도에 전시되어 있던 '시'가 내  발길을 붙잡았다. 서툰 글씨였지만 견뎌온 세월의  무게를 실어 온몸으로 쓴 것 같은 시들.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한 맺힌 사연들이 끝내 길어 올려진 듯, 땅을 밀어  올리면서 삐죽삐죽 올라오는 글자들의 꿈틀거림이 예쁘기도 하고 아리기도 했다.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도서관관장님이 매주 도서관에서 한글교실을 열고 있는데, 그곳에서 한글을 처음 배우신 할머니들이 쓰신 시라고 했다. 가난과 가부장적인 사회가 봉인해 버렸던 할머니들의 이름을 늦은 나이에 글을 깨우쳐 기어코 찾아냈고, 자신의 모습을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으로 아름답다. 


 그중에 '꽃 길이었네'라는 시가 왜 그랬는지 그날 내 마음에 와닿았다. 혼자만 보기 아까워 아들 친구엄마로 인연을 맺은 후 오랜 시간 한동네에서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는  두 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4일 전 둘째와 띠동갑 늦둥이딸을 순산한 지인의 안부도 물을 겸 도서관 얘기와 함께 그 시를 단체카톡방에 남겼다. 그녀는 젖몸살로 무척 고통스럽다고 했고, 그런 그녀에게 할머니의 시가 힘이 돼주길 바랐다.


 그렇게 카톡을 나눈 지 일주일도 안된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늦둥이를 낳은 그 친구가 갑자기 뇌출혈로 응급 수술을 받았다 한다. 그 소식을 전해 준 지인은 그 친구를 위해 새벽기도를 올린다고 했고, 의식의 여부를 포함해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길 얘길 한 우리가 아니던가? 갑작스러운 비보에 가슴이 심하게 요동쳐 그때부터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가장 먼저 임신소식을 알려준 사람이 남편을 제외하고는 나와 새벽기도를 올리고 있는 지인에게였다. 우리 둘은 늦둥이 소식에 철없이 좋아했고, 순진한 아이들처럼  열렬히 축하를 해주었다.

"낳기만 해요~ 내가 다 키워줄게~" 라며 주책없이 흥분해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었던지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쏟아놓고 나는 농촌유학을 왔다.

그 사이 고양시에 올라갈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린 같이 만나 아들의 농촌생활과 학교 얘길 나누었고, 함께 산책을 했고,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을 아가를 축복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마음으로 바라고 또 바랬다. 어느 날은 걱정의 눈물이 흐르기도 하고, 어느 날은 고통을 공감해 주기는커녕 꽃길애길 한 내 탓인 것만 같아 자책을 하기도 했다. 제발 깨어나서 아무 일 없이 태어난 아가의  재롱을 보며 웃을 수 있기를 기원했다. 며칠이 지나 늦둥이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천만 다행히 의식도 있고, 말도 하는데 시력과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나는 한편으론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이럴 땐 종교가 있으면 도움이 될까? 신이 있다면 그녀를 예전처럼 온전한 모습으로 돌려달라고 사정이라도 할 텐데.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작은 존재임에 몸서리를 쳤다. 그런 날이면 명봉도서관이 생각났다. 왠지 그곳에 가면 하잘것없는 인간일지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서관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살며 얻은 통찰과 깨달음 그리고 고유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역사가 있으니, 분명 그것들 중 어떤 것이 나에게 말을 걸어와 지혜를 나눠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첫 만남엔 "차 한잔 할 시간이 돼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봐주셨고,

그 후론 "일루 와 차 한잔 해요~"라고 따뜻하게 속삭여주시는 관장님이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관장님께 '이런 일이 있어요'. '그래서 매일매일 걱정되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관장님이 타주시는 따뜻한 홍차는 모든 걸 다 알고 나를 다독여주는 듯했다. 영미 씨가 그냥 가보라고 한  이유가 이거였을까? 많은 책들 사이에 있으면 그 책들 중 하나쯤은 나를 위해 손을 내밀기도 하고, 말을 걸어주기도 하고, 깊은 울림을 주기도 했다. 관장님도 그런 책들 중 하나로 늘 그곳에 있으면서, 어떤 날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 소설을 추천해 주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주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나에게 그런 것도 사랑이 맞다고 단호하게 알려주셨다.


  늦둥이 엄마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에 나는 매 순간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수술 후  늦둥이 엄마와 예기치 않은 첫 전화통화를 하던 날 기쁨에 온몸이 전율했다. 방학을 맞이해 고양시에 가서 직접 만난 그녀는 염려했던 것보다 상태가 좋았다. 나는 안도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두개골을 떼어냈고, 그 떼어낸 두개골을 다시 붙이는 수술이 남아있긴 하지만 일상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게 아직 힘들고, 글자를 쓰는 것도 안되지만 인지능력은 아주 많이 좋아졌다 했다. 무엇보다도 신체적인 활동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생명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아이를 둘이나 키웠으면서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가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아가에게 손을 대는 거조차 망설여졌다. 만지면 깨질 것만 같았다. 아가를 다루는 늦둥이 아빠의 노련한 손놀림이 신의 손길처럼 숭고하게 느껴졌다. 내가 선물한 모자를 쓰고 소녀처럼 웃는 그녀와 조막만 한 아가는 참으로 초현실적인 세계의 그림 같았다.


 늦둥이 엄마가 더 많이 건강해져서 꼬물꼬물 움직이는 한 생명을 안고 정읍에 놀러 오는  그날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명봉도서관에 간다. 누구도 하늘을 소유할 수는 없다는 인디언의 철학은 뒤집어보면 누구나 하늘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리고 지금 누리는 자만이 진정한 주인인 셈. 늘 그곳에 존재해 누구든 그곳에 가면 모든 것을 내어주는 도서관. 소유보다는 '존재'를 실천하는 명봉도서관을 이제 나는 안다.


그녀가 늦둥이를 낳기 전 카톡에 공유해 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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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정읍 비밀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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