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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Mar 01. 2022

보험회사는 손해보지 않는다.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리뷰

이 글은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조사에서 소개팅에 나갈 때 절대 입어서는 안 되는 색의 옷으로 노란색이 1위를 한 적이 있었다. 노란색이 주는 이미지는 산뜻하고 밝지만. 어느 색깔을 매치한다 해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없는 착장이 나올 확률이 높고, 호불호가 강한 색이라 그런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고 한다.


자기주장이 강한 것들은 늘 다른 것과 동화되기 어렵다. 그것을 완벽히 잠재우는 것도. 그렇다고 그 특징을 살리는 것도 언제나 문제인 것임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과감히 노란색의 길을 선택했다. 그것도 후자인 노란색의 길.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덜 마른 수건 같아서 몸을 닦는 내내 소름을 몰고 다니기에 충분하다. 또한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괴물들은 영화마다 등장해 관객들뿐만 아니라 영화 속 사람들마저 놀래킨다.


전작인 [판의 미로]로 동심을 깨부수고,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는 정형화된 사랑의 모양도 거부해버린 감독은. 이번 영화인 [나이트메어 앨리]를 기인들로 가득한 인간 서커스장에서부터 시작한다. 참으로 기예르모 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영화를 보고나면 반드시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감독이 만들어내는 괴물은 그렇게 노오란 옷을 입고 나를 유혹하고 있는 것만 같아 극장으로 달려가는 것을 멈출수가 없다. 




이 영화에 괴물이 없다고요?;전부다 괴물인데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는 두리안 같다. 모든 감각기관을 막아버릴 듯 강렬한 냄새는 감독의 영화에 선뜻 다가가기 힘들게 한다. 그러나 지독한 냄새 뒤에 숨어 있는 과육의 맛에 익숙해지고 나면. 그의 영화는 가장 해괴하지만 맛있는 고통이 된다.


감독의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성실하게 가져다주는 고난의 맛은 매번 달라지기에, 기억 속에서도 입속에서도 조금씩 "다음 것"에 대한 갈망과 기대가 자연스레 자라난다.


이 냄새 나는 감독의 작품들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진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괴물, 혹은 괴생명체의 등장일 것이다. 기이한 것. 나와 다른 것. 말이 통하지 않거나 소통을 하기까지의 시간과 마음이 많이 쓰이는 것. 그리고 영화에 길들여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모든 장애물들의 큰 덩어리를 가득 끌어안은 것.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는 서커스단의 기인(Geek) 외의 괴물은 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홍철 없는 홍철 팀의 탄생처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감독의 새로운 변주가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다. [나이트 메어 앨리] 속 괴물들은 하나같이 멀끔하게 생겼고. 언뜻 보기에는 정상인과 구분되지도 않음을.


그렇다.

영화 속 거의 모든 인물들이야말로 감독이 준비한 새로운 괴물의 모습이다.


누군가는 서커스단에, 혹은 알코올 병 속에 갇혀 있는 기인(Geek)이 괴물이라 생각하겠지만. 비뚤어진 욕망을 마음속 가득 품은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감독의 예전 영화들에서 마주쳤던 그 어떤 괴물들보다도 미간의 주름이 펴질 생각조차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감독의 새로운 괴물들은 영화 안에서 충분히 모든 것을 부수며 돌아다녔다. 관람객의 예상도. 영화 속 죄 없는 사람들도. 그리고 결국 자신 스스로까지도. 무너지는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의 모습에서 느끼는 연민에서도. 감독이 얼마나 괴물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감독이 고집스럽게 가진 애착 덕분에, 이번 영화도 고통스러운 행복으로 남았다.





고통 중독자들;주객이 전도된 삶. 그리고 스스로를 속이는 삶.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이 괴물들, 특히 스탠턴(브래들리 쿠퍼)이 "정상인 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누가 뭐라 그래도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에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믿을만한 견고한 포장 속에 자신을 숨겨야 오래 발각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지나(토니 콜레트)와 릴리스(케이트 블란쳇)의 경고를 무시한 채. (참고 1)

자신을 속이고, 또 자신이 내뱉는 거짓들이 진심이라 믿으며 포장 속에 숨겨 놓은 그의 진짜 모습을 더 악랄하고 흉측하게 키워나갔다.


영악한 스탠턴의 그물에 걸려든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에 존재하는 그 상실의 흠만 없애면 완벽한 삶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의 우울감을 감추기 위해 그 고통을 기꺼이 이용했고, 그 결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이 가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고통을 놓지 않는 주객전도의 삶. 자신의 발에 묶인 쇠사슬이 얼마나 무거운지를 서로 자랑하는 노예의 삶을 사는 그들을 스탠턴이 놓칠 리가 없었다. 돈만 많을 뿐, 자신과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간파한 스탠턴이 당대 최고이자 동시에 부자인 심령 술사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의뢰자들의 마음이 거울을 들여다보듯 빤하게 보였을 테니.


그런 스탠턴도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릴리스의 연구실에 있을 때면 늘 눈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눈은 소리도 없이 소복하게 쌓이고. 눈 아래 깔린 그 어떤 형상도 눈치채지 못하게 가려버린다는 것을. 스탠턴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릴리스라는 여자의 본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눈이 녹는 봄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겨울은 길었고 눈은 매서웠으며. 릴리스의 총알은 스탠턴의 의심보다 한 발 빨랐다.


그리고 스탠턴의 몰락과 돌고 도는 운명은 총알보다도 빨랐다. 스탠턴 역시 고통에 중독된 삶을 살게 되어버린 셈이다.





보험회사가 돈을 버는 법;보험회사는 절대 손해 볼 일을 하지 않음.
사진출처:다음 영화

2030을 제외한 모든 세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의심할 이유 없이 암이다. 암은 어디에나 생길 수 있으며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쌓여 만들어진 단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한다. 암세포는 세포분열을 담당하는 시계가 고장 나 있는 8톤 트럭처럼(+운전석에 술 취한 무면허의 촉법소년 앉아있음) 제멋대로, 혹은 미친 듯이 분열하며 암이 초기 단계일 경우에는 통증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슬그머니 세를 키워서 건강 적신호에 말뚝을 박아버리는 암에 대한 불안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과연 현대 사회에 몇이나 될까. (참고 2)


보험회사는 이런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한다.

고객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약관의 중요한 것들은 늘 작은 글씨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지금 현재 설명해 주는 모든 말들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불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몸에서 암이 자라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스탠턴은 이런 심리상태인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한 마디를 날릴 줄 알았다. 내가 있으니 괜찮아요. 같은 말.


그의 말에 껌뻑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그가 하는 일이면 뭐든 믿었고. 결국 그가 내민 기약 없는 행복을 약속하는 서류에 기꺼이 사인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스탠턴의 말을 믿고 사인한 서류 한 장으로는 암에 걸리는 것 까지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자신들이 정신을 차리고 읽어야 했던 작은 글씨들과 방대한 약관들이 아직도 남았으며, 그것을 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스탠턴만 믿는다고 다 괜찮아지는 게 아니란 걸 의뢰인들은 눈치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릴리스가 말한 것처럼. 그들도 그들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급히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본모습을 단 한순간도 참을 수 없었을 테니.





마치면서.+좋아한 장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데리고 온 괴물들은 여태 영화에서 만났던 괴물들보다 끔찍했다. 그들은 웃을 줄 알았고, 속내를 숨길 줄 알았으며. 뭉툭한 칼을 다른 사람의 허리춤을 아무 생각 없이 찔러버릴 줄도 알았다.


원작에 있던 대사를 많이 차용했으면서도 쓸모없는 애정 신들은 삭제한 것도 좋았다. 다만 각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많이 생략된 것은 영화 전체의 분위기나 인물들의 행동에 완벽히 공감하기 힘들게 했다. 조금만 더 살릴 수 있었다면 영화의 미스테리함이 조금 더 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영화 속 마음에 들었던 장면 하나]

서커스단에 있던 브래들리 쿠퍼가 2년 뒤 독심술사로 성공하면서 목소리와 풍채가 바뀐 장면. 눈빛, 손짓, 어깨 모두 완벽하게 다른 사람 같기만 했다.



카카오뷰도 있어요+_+


참고 1

보통 점, 혹은 토정비결 같은 걸 보면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예전에 이런 미래에 대한 귀띔도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음. 예를 들어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과거로 간 본인이 결혼하기 전 상태인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낳을 수 없을 것이고 그로 인해 본인은 탄생할 수 없으므로 이 전제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 됨. 이걸 할아버지 패러독스, 혹은 [타임 패러독스]라고 하고 동명의 영화가 있는데 매우 재미있으니 안 보신 분들은 꼭 봐주세요(?)


참고 2

이 걸리는 이유는 오래 살아서 임. 유전적, 후성 유전적 이유도 있겠지만. 암이라는 병 자체가 생긴 가장 큰 이유는 인류의 수명이 길어져 유전적 변이(Mutation)이 쌓일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임.


[이 글의 TMI]

1.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에는 제목을 달리해서 포스팅함.

2. 왜 그러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음.

3. 병맛이 체질이라 이상하게 제목은 항상 병맛으로 여러 개 떠오름.

4. 그걸 다 버리기 아까워서 글은 이미 망했으니 제목이라도 살려보자 싶어서 그런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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