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민스미트 작전]리뷰
이 글은 영화 [민스미트 작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위 첩보영화라고 불리는 류의 작품들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할 수 있다.
하나는 [007], 혹은 [본] 시리즈로 대표되는 영화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 누구도 상대해낼 수 있을 만큼 강하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궁지에 몰리지 않는다. 스스로의 목숨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목숨과 때로는 한 나라의 안위까지도 너끈히 구해낼 수 있다. 캐릭터로서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이 시리즈의 인기를 유지하는데 한몫을 한다.
반면 나머지 한 쪽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류의 영화이다. 치밀하고 날카로운 계획들이 켜켜에 쌓여 영화 내내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가장 클라이맥스는 보통 영화의 마지막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 서스펜스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만이 영화의 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민스미트 작전]은 후자에 속한다 할 수 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실제로 있었던 기만작전을 모티브로 했으며. 단 한 사람의 영웅보다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데 일조한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 [1917], [이미테이션 게임]의 제작진들과 이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와 [킹스맨]으로 첩보영화의 두 축을 모두 경험해 본 콜린 퍼스가 출연하는 영화인 만큼. 완벽에 가까운 짜임새를 가진 영화라는 기대도 함께 할 수 있다.
안갯속에서 체스 두기;슈뢰딩거의 식스센스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주 쉽고 직관적으로 비유하자면, 한국 예능인 [식스센스]의 제작진들의 입장을 담은 영화라고 이해하면 빠르다.
연합군은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가상의 부대를 창조해냈다. 이 부대를 막기 위해 적군이 병력을 재배치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속여야 하는 대상이 히틀러였으니. 이 계획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 어떤 곳에서도 "가짜 냄새"가 나서는 안 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웬(콜린 퍼스)을 필두로 한 연합군은 말 그대로 혼을 갈아 넣어 작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했다.
작전의 대부분은 가정(If)을 기반으로 이뤄져 있었고, 연합군의 수뇌부들은 과연 이 손에 잡히지도 않는 안개 같은 작전이 통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불안함 속에서 많은 부담을 무릅쓰고 한 발씩 내디뎌야만 하는 과정들에서 관객들도 당시의 책임자들이 느꼈을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작전에 대한 확신과 함께 불안함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일정 시점까지는 커지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었던 이 안갯속의 정국은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꼬이고 비틀리며 어떤 형태를 드러낸다. 결국 연합군 세력은 연기를 꼬아 밧줄을 만들어 냈고. 전쟁광 히틀러는 그 어떤 의심도 하지 않은 채 이 견고하고 매력적인 밧줄을 꽉 잡고 놓치지 않았다.
전쟁 영화의 이면.;피 튀기는 장면 없이도 충분하다.
한때 전쟁 영화의 묘미가 "스케일"의 크기로 점쳐지던 시절이 있었다.
거의 모든 영화에는 베일에 싸인 백발 백중의 스나이퍼가 등장하거나 혹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쟁 장면이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감게 되는 잔인한 장면이 항상 포함되곤 했다. 병사들의 절규와 생사가 오고 가는 장면이 가득한 것이야말로 전쟁영화라고 말하는 듯한.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영화는 전쟁의 뒤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용맹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군사들이 아닌 수뇌부들의 잘못된 작전 하나가 불러올 수많은 희생에 대한 무게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작전 진행 상황의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묘미를 중시하는 영화의 특성상, 전반적으로 크게 잔인한 장면 없이 긴장감을 높이 쌓아올리면서 영화는 자신의 갈 길을 간다.
회의감이 가득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차올랐다가, 한 번은 거품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그 속에서 조금은 뒷전으로 밀어 놓아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어우러져 이 어지러운 전시 상황을 더 불안하고 위태롭게 만든다.
마지막의 클라이맥스라고도 할 수 있는 "사이다" 장면은 아주 짧고, 혹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시시하다 느껴질 수 있을 만큼 통쾌하게 그려지진 않지만. 덤덤하게 전쟁의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는 영화를 보고 있지만 오히려 전쟁은 이렇게 씁쓸하게 그저 흘러가는구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신은 전범과는 주사위 놀이조차 하지 않는다.;전범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전쟁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일 중 가장 잔인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쟁에 의해 목숨을 잃은 자식의 시신조차도 수습할 수 없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이별도 해야 하며. 개인이 처리할 수 없는 많은 장벽들 앞에서 중요한 것들도 뒤로 미뤄야만 한다.
[민스미트 작전]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독일, 혹은 벙커 속의 한 남자에게는 치욕적이지만 당연했을 패배로 기울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우리는 다시 한번 전범의 오만함이 얼마나 큰 미끼이자 패망의 지름길이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1세기가 되어 이런 실화를 영화로 만날 수 있게 된 지금도, 안타깝지만 가까운 곳에서는 실제로 전쟁이 이뤄지고 있고. 언젠가는 지금의 이 현실조차 영화로 만나거나 교과서에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의 벙커 속 남자도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역사를 통틀어 전범에게는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선물이 주어졌다. 그에게 걸맞은 지저분한 최후가 바로 그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그 어떤 예우 없이 이름으로도 겨우 불리고 있는 한 남자는 자신은 늘 승리한다 생각했을 것이고. 그 거짓에 스스로 홀려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이 선물은 전쟁을 자신의 손으로 선언함과 동시에 이미 포장되어 스스로에게 배송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이 영화는 전범인 당신이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됐던 과거임과 동시에 현재이며, 처참한 미래다.
당신이 미래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신은 전범과는 주사위 놀이조차하지 않으므로.
마치면서
호불호가 (매우) 갈릴 수 있다.
전쟁영화라고 부르기엔 우리가 기대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고. 작전을 바탕으로 한 스파이 영화라고 하기엔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영화 전체를 관망해야 한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처럼 켜켜이 쌓이는 긴장감을 즐기는. 그리고 콜린 퍼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좋은 영화였지만. 누군가에게 추천해 주기에는 조금은 꺼려지는 작품이긴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쓸쓸함 마저도 내 스타일이었던 영화라. 수요일 오전을 바친(?) 것에 대한 미련은 없다.
카카오뷰도 있어요+_+
[이 글의 TMI]
1. 아킬레스건이 너무 부어서 며칠 힘들었음.
2. 하지만 영화 보러 나가는 것까지 참지는 못했고,
3. 그렇게 영원히 의사 선생님께 혼났다고 한다.
4. 복숭아 언제 나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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