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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nalogi Oct 13. 2022

블랙홀도 우주의 일부란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 원스] 리뷰

이 글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 원스](이하 에에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온 가족의 금쪽이 탈출기;돌 굴러가는 걸로 울리면 어떻게 합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밥 잘 먹고. 차 조심하고. 전화세 나오니까 끊자.

김창옥 선생님의 무뚝뚝한 아버지는 늘 전화 통화를 하면 저 세 마디만 한다고 했다. 처음엔 저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도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 말이 아버지가 전하는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오랜만에 본 딸에게 살쪘다는 돌직구를 던지는 에블린(양자경)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에블린이 지금 딸에게 하는 말도 결국은 사랑을 전달하는 말이니까.


딸 조이도 알았을 것이다. 저 말을 가만히 해부해보면. 살이 찐 것(=변화)을 알아챌 만큼 엄마와 자신의 사이에 단절된 시간이 존재했으며. 세월의 길이만큼 농축된 그리움도 듬뿍 실은 채 던져진 직구라는 사실을.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이 버젓하게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저런 식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온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엄마의 말은 조이의 마음에 박혀 상처를 내기에는 충분히 예리했기에. 딸은 매몰차게 엄마에게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에 대한 미움 때문이기보다, 이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이 사회에서 더 이상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어 오는 괴리감과. 과연 그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나는 대단한 인간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괴감 때문에. 우리는 절절한 부모의 사랑 고백에도 늘 매몰차게 회를 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돌이 되어버려 그 어떤 면에서 보아도 부족해 보이는 상태라 할지라도. 부모는 그런 자식마저도 구하겠다는 태도로 절벽에서 몸을 던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온 우주의 에블린을 모두 모아서.


결국 엄마의 이런 태도는 모든 것을 외면하려던 조이의 마음도 녹인다. 비수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보고 싶은 딸이 생각날 때마다 갈아버려 예리해질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마음이었고, 결국 엄마의 마음이 그렇게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질 때까지 힘을 가했던 건 자신이었다는 것을 조이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포옹을 하는 장면을 쿵 하고 뭔가 부딪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흡사 큰 두  우주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제각각의 우주, 혹은 행성으로 존재했던 구성원들이 드디어 가족이라는 우주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킥, 점프대에 대해서; 가보지 못한 길;내포하고 있는 물의 의미.
사진출처:다음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킥이라는 동작이 필요하다. [에에원]에서는 다른 우주의 나(Myself)를 현재 우주로 불러오기 위한 동작을 점프대를 찾는다고 말한다.(참고 1)


두 영화에서 모두 어딘가(물)에 뛰어든다는 개념을 살포시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방식이 정 반대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셉션]에서의 물의 의미는 꿈속의 망령(?)을 씻어내고 하나밖에 없는 주체를 구별해내는 것(비빔면을 찬물에 헹궈서 면”만” 건져 내듯이)에 쓰이지만. [에에원]에서의 점프의 의미는 모든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다 들어 있는 바다로의 다이빙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도 결국 그 수영을 채우는 물방울들 중 한 방울에 불과하기에 거기 뛰어드는 게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에블린이 현생에서 자신이 가보지 못한 수많은 길을 점프를 통해 걸어보는 모든 행동들은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도 다른 에블린이 아닌 나, 지질한 에블린의 삶에서.(당연히 울었다)


또한 그 어떤 화려한 조명이 자신을 비추는 삶들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지금의 삶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굳건히 발을 현재의 삶에 뿌리내리는 모습은. 결국 반짝거리며 빛나는 별들도 가까이서 보면 뜨거운 가스 덩어리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 고난이나 블랙홀이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고. 스스로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인 “지금”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삶도. 결국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스스로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인 “지금”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눈물을 뿌리며 파묻어 버리고 출발한 수많은 과거 행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은 언제나 현생을 괴롭히는 용도로 쓰일 뿐이다.



그래 멀티버스가 별거냐;거울나라의 앨리스 모티브+베이글의 의미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의 첫 장면은(혹은 인트로) 한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하다 했다.(FEAT. 이동진 평론가님) 이 영화의 가장 첫 장면은 거울 속에 비친 삶의 한 조각이고. 그 거울 속 삶이 현실의 삶으로 대변되는 순간은. 영화의 메인 메시지 중 하나를 말해주기도 한다 멀티버스에 대한 암시와 함께. 이 멀티버스를 모두 합쳐놓아야 온전한 사람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람을 일컬어 작은 우주라고 종종 부른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 어떤 모습의 나라고 해도(비록 손가락이 소시지라 해도!!) 모여 있어야만 우주라고 부를 수 있는 방대함이 갖춰지는 셈이고. 이를 멀티버스에 비교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베이글의 비유도 마음에 들었다. 보통 에브리씽 베이글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거의 대부분의 토핑이 붙어 있는 것으로 총칭될 텐데. 가장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지만 동시에 싫어하는 것은 골라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마치 거의 모든 인간들의 우주(=삶)가 그렇듯 아쉽다고 생각하는 블랙홀 같은 부분을 뽕 빼놓고는 스스로의 인생을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단지 조이의 블랙홀은 힘들었던 부분만 가득 넣어 만들었기에 유달리 검고, 씁쓸해 보이며 빨려 들면 큰일이 날 것처럼 보이는 것뿐.


우리 모두는 그 모든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들로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 선택이 모여 현재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모든 가지 못했던 길이 결국은 우리의 인생에 한가득 별로(as a star)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아무리 초라한 삶이라 해도 에블린은 현재의 삶을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인생에 특별히 탐나는 별이 있다 해도. 블랙홀이 있다 해도. 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며 포용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고 있는 이 제각각의 토핑이 묻은 베이글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니. 그래 멀티버스가 뭐 별거인가 싶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마치면서




영화적인 장면들, 혹은 흐름을 봤을 때. 호불호라는 말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멀티버스, 그리고 가족애(를 비롯한 삶에 대한 애정)라는 설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대해서가 더욱 그렇다. 분명히 새롭긴 하다. 보는 내내 어떻게 이미 정해진 결말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영화가 끝으로 가 있음을 깨닫게 될 정도다.

그러나 방식이 새롭다는 말은 익숙해지기엔 조금 먼 상대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고. 그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개인적인 선호도와 맞지 않는다고 하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혼란스러움이 내게는 자신의 삶에 있어 존재했던 수많은 가능성(성공한다라는 뜻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로 존재하는 가능성을 의미함)의 갈래에서 고민했던 모든 순간들을 합쳐놓은 것으로 보여 어느 정도는 납득 가능했다.


한 배우는 연기하는 데 있어 손이 못나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온 가족들이 자신에게 집안일을 일체 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투박하고 온 마디가 굵고 쭈글거리기까지 하는 양자경의 손이 더 아름답게 느껴져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영화가 담은 메시지가 영화가 가진 형식보다는 더 내 마음에는 강하고 진하게 남았다. 물론 형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합격점을 줄 수 있었고.


나도 내가 살다 살다 돌 굴러가는 걸 보고 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참고 1

매우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점프가 완료되었을 때의 모션이나 영화 속의 주제와 비교해 봤을 때 점프대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곧바로 다이빙대로 인식되었음. 그래서 물속으로 다이빙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인셉션과의 비교를 한 것임.


개인적으로는 토템을 돌리는 행동도 비교해보고 싶었으나. 너무 개인적으로 느낀 것 같기도 하고, 또, 리뷰가 3부작이 될 것 같아 접음. 요새 말이 많아져서 리뷰 짧게 쓰는 게 목표임. 네. 잘 안됩니다.



[이 글의 TMI]

1.     사랑니를 뽑았고. 매우 아팠으며 현재도 아픔.

2.     후유증이 너무 심해 스테로이드성 약 먹기로.

3.     거의 뭘 먹을 수 없어서 강제 다이어트 중.

4.     내 근손실은 멀티 유니버스의 내가 뭐 알아서 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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