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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틈에 자란 독버섯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 리뷰

by Munalogi

이 글은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시해주세요.


그남자_1.jpg 사진출처:다음 영화

또 한 번 뿌리내릴 곳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찰스(에디 레드메인)는 살인자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사람을 살리는 일의 최전방에 서 있는 간호사일 테니까. 그것도 경력 많고 훌륭한. 그는 이 상충되는 두 개념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회색 틈 사이에서 단단히 틀어박힌 채 조용히 살았다. 물론 이번에도 발각되기 전까지만 이겠지만.


죽음이란 것은 참으로 이상했다. 그는 죽음에 다다른 사람이 가진 특유의 축축한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그 냄새는 저승사자의 부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함을 베푸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찰스는 그 친절이 마치 죽음을 향한 마중처럼 느껴졌다. 기꺼이 베풀 수 있는, 희생자를 위한 자신만의 담담한 장송곡.


옮긴 병원에서는 비집고 들어가야 할 틈새를 찾기 위해 조금 덜 두리번거려도 되는 행운도 맞이했다. 이미 경계에서 사는 삶을 경험하고 있는 에이미(제시가 차스테인)가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남자_2.jpg 사진출처:다음 영화

에이미의 심장 박동은 그녀가 가진 삶에 대한 의지만큼이나 거세고 힘찼지만. 그녀의 현재 상태는 그녀의 심장벽처럼 압력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얇고 약해져 있었다. 넉 달가량 더 버텨야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현실도. 견디지 못할 만큼 위태로운 딸들과의 불화도.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녀의 재정 상태도 자꾸 에이미를 두드려댔다. 그녀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매번 그녀를 쓰러뜨렸다.


에이미의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냄새를 온몸으로 뿜어대고 있었고. 그 냄새는 찰스를 안정시킴과 동시에 그녀를 향한 목적 없는 친절의 원인이 되었다. 이번에 맞이할 틈새의 삶은 혼자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러나 찰스는 자신이 꾸준히 행해 온 틈새를 이용한 살인을 멈추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눈치채지도 못할 작은 구멍은 인슐린이나 디곡신을 흘려 넣기 충분한 자리였고. 그 독은 서서히 퍼져 찰스의 살인을 몇 번이고 완성시켰다.


찰스는 언제나처럼 도처에 깔린 죽음을 가림막처럼 이용했다. 그를 향한 안개빛 의심은 있을 수 있었지만. 언제나 명확한 의심은 그를 향하지 못했다. 자신이 행하는 이 느린 살인의 묘미였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채 무럭무럭 자라는 버섯 같은 삶은 이번에도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먹고 조용하고 축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그남자_메인.jpg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에이미는 자신과 달랐다. 자신처럼 죽음에 중독되어 있지도 않았고. 틈새에서 잠시 쉬고 있을 뿐. 그곳을 탈출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찰스가 풍기는 죽음의 체취를 닦아냈다. 그리고 기어코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쳤다. 이곳에 독버섯이 자라고 있노라고.


찰스는 이제 친절을 베풀어야 할 대상이 자신밖에 남아있지 않음을 알았다. 애써 웃어주고. 애써 보살펴 주어야 하며. 죽음의 장송곡을 불러줘야 할 대상. 이제 죽음 그 자체가 되어 버린 자신의 존재.


때가 되었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찰스는 자신의 손을 놓은 에이미에게 음침하지만 화려하게 자란 독버섯의 마지막 친절을 베풀었다. 그 친절은 결국 자신을 끝없는 징역형으로 이끌겠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마치 자신이 살해한 모든 환자들이 그랬듯이 서서히. 하지만 분명히 찾아온 죽음처럼.


틈.

그 작은 것이 만들어낸 모든 변화를 찰스는 자신의 남은 생을 다 바쳐서야 겨우 깨달을 것이다.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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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화 자체는 건조하다 못해 삭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오롯이 인물들의 연기만으로 서서히 퍼지는 약물 같은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모든 연기가 소름을 돋게 한다.


또한 실존 인물이자 범죄자에게 그다지 큰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것도. 또한 찰스와 에이미의 관계를 정말 담백하게 그린 것도 좋았다. 덕분에(?) 에디 레드메인은 정말 공허한 눈을 가진 살인자의 역할과. 살인자의 텅 빈 껍데기, 혹은 알 수 없는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한 연기를 두 시간 내내 펼친다.


만약 병원과 권력을 둘러싼 암투, 혹은 치열하게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무조건 실망할 테지만. 영화가 가진 “틈새”라는 모티브를 따라 생성되는 갈등과 서스펜스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면 두 사람. 아니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의 연기가 한 장면 한 장면 피부로 와닿을 것이다.


모호한 틈 사이에 도사리고 있었던 범죄를 잘 그려낸 영화다. 만약 넷플릭스를 통해 봤더라면. 이만큼 집중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의 TMI]

1. 약간 힘든데 질질 끄는 삶의 연속인 거 같은 요즘.

2. 그렇다고 포기하는 일은 없겠지만 또 그렇다고 힘내는 건 좀 힘든 거 같다.

3. 하지만 일상을 포기할 수는 없고 피자나 먹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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