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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어렵지 않아요.

by 안승준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에게 극단적으로 낮은 수준의 기대치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내 도전에는 '보이지 않는데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따라붙었고 덕분에 아주 작은 성취에도 큰 박수를 받곤 했다. 대학에 합격하고 취업에 성공할 때도 그랬고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도 결혼할 때도 그랬다. 그런 과정들이 시각장애 없는 이들에 비해 다소 어렵고 불편한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기사에 적었듯 매번 수십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몇몇 가지 성취들은 분명 시력이 없는 덕분으로 남들보다 꽤 힘들게 이뤄낸 것도 있지만 친구 사귀고 학교를 졸업한 것까지도 박수쳐 주고 상장 주고 취재 문의를 하는 것 보면 장애 덕분에 난 실제보다 훨씬 크게 노력하며 산다고 평가받는 것 같다.


박수받고 주목받는 것이야 천성적으로 좋아하는 일이라 나 개인적으로는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일이지만 시각장애와 함께 30년 넘게 사는 동안 나름대로 이것도 저것도 하면서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줄 만큼 보여준 것도 같은데 작은 일이라도 새롭게 시작하려 하면 또다시 의문부호가 뒤따라온다.


비장애 여성과 결혼하는 내게 따라붙던 궁금증과 불안함은 2년 가까이 그런대로 잘 사는 모습 보여주다 보니 어느 정도는 해소된 것 같은데 2세가 태어나고 나서는 또 다른 걱정과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무심코 걸어 다니다가 아기를 밟으면 어떡하니?"

"기저귀 갈고 분유 타는 것은 할 수 있니?"

"아기를 안고 달래줄 수는 있어?"에서 시작된 질문들은 "아기가 너무 보고 싶어서 어떡해요?"라는 걱정으로 이어지고 '아기를 대신 키워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는 추측까지 만들어 낸다.


덕분에 새로 만든 유튜브 채널엔 햇살이와 내가 함께 숨만 쉬어도 조회수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지만 다른 이들이 생각하듯 나의 육아가 피나는 고뇌와 몇 배의 노력으로 생산되는 숭고하고 눈물겨운 결과물은 아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 눈이 보인다면 겉면에 달라지는 색을 보고 좀 더 쉽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겠지만 냄새를 맡고 아기를 살피는 일을 몇 번 하다 보면 내게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 번 말한 적 있지만 내가 만약 어제부터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사람이라면 그런 일들을 시력 없이 하는 것이 굉장한 도전일 수 있지만 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신변처리 하는 것을 수십 년 반복해 오고 있다. 낯선 장소의 불편한 화장실도 여러 번 경험해 봤고 원치 않는 실수를 하게 되었을 때 깔끔하게 해결하는 상황 대처 기술도 갈고닦았다.


나 아닌 아기의 배변을 돕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그건 눈 보이는 아버지들의 입장 또한 그러하다. 실수도 하고 아기에게 미안해 보기도 하면서 서서히 우리만의 호흡을 맞춰가다 보면 나도 나름의 방법들을 만든다. 기저귀의 색이 변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장애로 인한 불편함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기저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분유를 탈 때도 아기와 놀아주고 잠을 재울 때도 물의 양을 나타내는 눈금을 보지 못하고 아기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장애로 인한 불편함이라고 굳이 말할 수 있지만 그 또한 기술이 해결해 주었다면 불편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지금의 상황에서도 반복 경험으로 시각 없이도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되었다.


아기를 끌어안고 볼을 맞대고 손을 잡고 있다 보면 난 햇살이가 졸린지 잠을 자고 싶은지 잠이 들었는지 피부로 느낀다. 그것은 때때로 아기의 표정을 보는 것보다도 정확하다. 아기는 눈을 뜨고 있지만 난 촉각으로 전해지는 체온의 변화와 손가락 움직임의 변화로 잠시 후 잠들 것임을 예측한다.


분유 물의 양과 온도를 맞추는 것은 세심한 손길과 관찰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도 아내의 도움을 조금만 받으면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 미리 소분해둔 적당한 양의 분유 가루를 역시나 적당한 온도와 양을 정해서 나눠 담은 텀블러 속의 물과 합쳐주는 것은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동화기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우리 부부가 가진 나름의 신념으로 아직은 선택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구매한 물 끓이는 기계는 물의 양과 온도를 원하는 대로 설정해서 쓸 수 있는 우리 가족 맞춤형의 기능을 갖고 있었지만, 전면 터치에 무소음 기능까지 탑재하고 있었다. 이런 기기에 음성이나 점자 버튼만 달아주었더라면 나의 육아는 더더욱이 큰 어려움 없이 수행되었을 것이다.


5개월 정도의 육아시간이 흐르면서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은 내가 아기를 안고 있을 때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아기에게 분유를 먹일 때에도 기저귀를 갈 때에도 걱정하는 목소리로 내 아내를 부르지 않는다.


그간의 도전들이 그러했듯 사람들은 조금씩 나를 햇살이 아빠로 자연스럽게 인정해 가는 중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아내의 도움이 있었고 조금 다른 노력이 있었지만 아주 약간 당황했고 남들보다 조금 불편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장애를 고려한 기술이나 제품들이 있었다면 덜 불편했을 수 있다. 햇살이도 나를 보고 웃는 횟수를 날이 갈수록 늘려가고 있다. 내 육아 기술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결혼할 때 어떤 이들은 감동했다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용기를 가졌다고 하면서 특별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결혼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특별한 용기나 응원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햇살이가 태어났을 때 사람들은 또다시 특별한 응원과 인사를 보내주었다. 내가 아이를 좀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지만 가슴 한편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또한 누구에게도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햇살이가 걷고 뛰고 학교에 가는 동안 내겐 새로운 도전들이 주어질 것이고 사람들은 또다시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응원을 보낼 것이다. 잘 해내고 싶다. 내가 겪는 불편함이 아무렇지 않게 해결되면서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에게도 평범한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도전을 나누는 일들이 누군가의 불안한 도전을 편안한 일상으로 바꾸는 과정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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