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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하면 믿어주길!

by 안승준

시각장애인인 내가 무엇인가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의심하고 믿으려 하지 않거나 나름대로 축소해서 상상하려고 했다. 수학 공부를 한다고 할 때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쉽게 만들어 놓은 별도의 교육과정이 있을 거라고 했고,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사용한다고 할 때에도 아동 장난감 수준의 시각장애인 전용 기기가 있다고 추측했다.


대학에 합격했다고 말할 땐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대학이 있냐고 물었고 결혼할 때도 많은 이들이 아내에게 뭐든 도움받는 가정생활을 상상하는 듯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인 나의 삶은 다른 이들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거나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억지 고집을 부리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난 수학을 좋아하고 내가 공부한 수학은 다른 학생들이 배우는 그것과 같은 것이었고 똑같은 시간에 같은 모양의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비장애인들과 함께 다니는 대학에 입학했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남들보다 조금 어렵긴 했지만 대체로 나쁘지 않은 학점을 취득했고 비장애인들과의 경쟁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복잡한 그래프나 계산 중 일부는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불편한 것이 사실이긴 했지만, 그 또한 나를 위한 교구나 교육 방법이 마련되어 있었더라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배울 수 없는 수학이 존재한다는 것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내 결혼생활 역시 남들과는 다른 모양이 존재하긴 하지만 누군가가 상상하듯 매 순간 아내에게 도움을 받기만 하는 가정형 사회복지 시설의 형태는 아니다. 아내와 다닐 때도 아기를 키울 때도 다소 불편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 나름의 방법들을 마련하려고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한다.


난 시각장애인도 괜찮은 남편이나 아빠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그것은 나 자신의 고민과 노력으로 말하는 증명된 사실이다. 하나하나를 콕콕 집어서 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낸다면 내게 부족한 부분들을 찾아낼 수 있겠지만 비장애인들도 모든 면에서 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난 할 수 있고 잘하고 있는 편이다.


여전히 어떤 이들은 보이지 않는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말하거나 괜한 자존심으로 과장해 말한다고 하겠지만 난 걱정하는 것에 비해 꽤 잘 살아내고 있다. 잘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정도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했던 은혜씨가 지난주 백년가약을 맺었다. 본인도 남편도 발달장애인이라는 점에서 사람들과 여러 매체는 앞다투어 관심을 드러냈다. 진심을 담은 축하들 사이엔 의심과 비하의 시선들이 역시나 존재했다.

'둘이 산다고 하지만 부모님이 다 해 주는 것 아니야?'

'자립해서 일반의 삶을 보여주고 싶다는데 그게 가능하기나 해?'


가까이에서 지켜본 은혜씨는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은 생각을 하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했고 결혼을 결심했고 그것을 이뤄냈다.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이 부모님의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많이 다르다.


은혜씨가 말하고 있고 부모님이 말하고 있다. 그들은 남들처럼 사랑했고 남들처럼 결혼했고 다른 이들 못지않게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면 좀 그렇게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확신하건대 그들은 스스로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노력한 끝에 결심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하는 이들의 걱정처럼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그녀도 다른 이들처럼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어야만 그런 부분들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장애 가진 이들이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신체적 장애로 인한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환경의 문제이다.


그녀가 많은 이들의 걱정을 비웃듯 당당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부부가 마주하는 작은 어려움들이 그들로 인해 말끔하게 해결되고 다른 발달장애인들의 결혼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으면 그냥 그렇다고 믿어주면 좋겠다. 발달장애인도 결혼하고 자립할 수 있다고 하면 그냥 그렇다고 믿어주면 좋겠다. 믿어주고 지켜봐 주고 조금 도와주면 그렇게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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