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가족이 있어
*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작은 아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썼지만, 실제로 아이에게 편지를 전달하지는 않았다.
규야!
오늘은 엄마 회사로부터 너의 초등 입학 선물이 도착했단다.
우리 규는 입학할 생각에 안 그래도 설레는데 선물까지 받으니 더 기뻤지.
형아는 "규 좋겠다. 난 이런 거 안 받았던 거 같은데."라고 말했지.
3년 전이라 잊어버렸나 본데, 건이 너도 입학할 때 받았어.
그땐 엄마가 퇴근하고 오니 이미 상자는 풀어헤쳐졌고 학용품은 여기저기 퍼져나간 상태였지. 트라이앵글과 미니 심벌즈를 쳐대고 리코더를 불어대며 혼란 속에 엄마를 맞이해 줬던 게 엊그제 같단다. 그런데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구나.
그 당시 악기를 두드리며 창작 활동을 하는 너희들의 활기찬 모습에 질려 이번엔 리듬악기 세트를 신청하지 않았어.
얘들아!
오늘 엄마가 마침 재택근무를 해서 학용품 산발 사태는 막을 수 있었구나. 이번엔 오카리나 세트를 신청했는데 규가 오카리나를 불 줄 모른다고 말해 주어 정말 다행이야. 앞으로도 굳이 불지 않아 주었으면 해. (농담이야. 언젠간 멋진 연주 들려주길.)
규가 저녁 먹다 말고 양치도 안 한 입으로 리코더를 불었지만, 용서해 줄게.
사실 형은 늘 그러거든.
규야, 선물 세트에 동봉된 카드에 네 이름은 왜 안 써주냐고 묻지 마. 회사는 네 이름 몰라.
이런 선물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야. 엄만 이 선물세트 받을 때면 진심으로 애사심이 불타올라.
3년 전에 입학 선물 받았을 땐 회사에 충성하겠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엄마는 이미 충성할 만큼 충성했단다.
엄만 이만 자야 할 거 같아. 내일은 신나는(!) 출근이거든.
내일은 또 어떤 드라마틱 판타스틱 액티브 사건들이 펼쳐질까 기대돼서 잠이 안 오지만 이만 잠을 청해 볼게.
입학 축하하고 사랑해!
앞으로 우리 규가 학교생활 잘하기를 엄마가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