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 있는 삶을 위하여

by JOO

내가 처음으로 만든 흑역사가 생각난다. 바로 초등학교(그땐 국민학교) 입학식 다음 날이었다. 실내화라는 낯선 물체를 실내화 주머니에서 꺼내 현관에 탁 내려놓고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데 내 몸이 기우뚱댔다. 한 발로 균형 잡는 것이 아직 서툴렀기 때문이다. 넘어질 것 같아서 옆에 있는 아무 학생이나 잡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어깨를 붙잡힌 학생은 나를 홱 째려봤다. 그 학생 입장에선 봉변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 이해한다. 그런데 그 눈빛이 너무 무서웠다. 그 눈빛이 마치 ‘사회는 네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아. 인생은 혼자야. 자기 몸뚱이 정도는 혼자 가눌 수 있어야 한다고!’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벽을 붙잡고 실내화를 갈아 신었어야지. 중심을 잘 잡았어야지!’라며 한동안 자책했었다. 인생 최대의 실수를 한 것처럼 이 사건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고, 그날 이후로 실내화 갈아 신을 땐 조심, 또 조심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귀엽다. 째려본 애도 귀엽고 무게 중심 못 잡아 기우뚱하던 애도 귀엽다.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치명적인 사건도 아니었거니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잘한 실수다. 오늘 학교에서 이런 실수를 했노라고 가족에게 얘기했다면 가족이 함께 하하 호호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10대와 20대 때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너는 빈틈이 너무 없어 보여. 치밀해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처럼 빈틈 많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빈틈이 많아도 내가 인정하거나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 꽁꽁 감췄다는 것을. 그 감추려는 모습까지 사람들은 느낄 수 있었겠지.



앞에 쓴 글들을 쭉 읽어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그 당시에는 땀이 삐질 나는 기억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추억이자 좋은 이야깃거리다.


이제는 철두철미하게 완벽한 삶보다는 유머와 위트를 갖춘 삶을 살고 싶다. 내 삶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도 흑역사를 생성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은 내가 흑역사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흑역사가 되지 않는다. 내 삶의 유머와 위트를 담당하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뿐. 위트 있는 삶을 위하여 허술함을 전면에 내세워 본다.


오늘도 좌충우돌 쿵! 한숨 쉬며 후… 허술해도 재밌으니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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