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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신 Jun 04. 2021

줌으로 감옥과 세상을 잇다
_ 감옥 속의 예술극장

국경을 넘는 여행, 경계를 넘는 만남


펜데믹이 가져온 고립과 단절,

삼중고에 처한 감옥 안의 사람들


로스가 보내준 줌 링크가 열자 감옥 안, 여성 수감자들이 환히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한다.

어떤 분은 어디서 배웠을지 모를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오기도 했다. 그곳은 그저 우리가 늘 필리핀을 갈 때면 밥을 해주시고 챙겨주시는 평범하고 따스한 나나이들이, 흥이 넘치는 친구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앉아있는 작은 교실 같았다. 그곳이 감옥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마을회관에 모인 엄마들일 것만 같았다.


2020.10.30_줌으로 감옥 속 여성들과 세계의 예술가들을 연결하기 시작한 감옥예술극장


"30명 남짓 수용 가능한 여성 감옥이지만, 현재 감자 수는 190 넘어섰어.  대부분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거나 엄마였던 여성들이 생활고로 인한 범죄로 여기까지 내몰린 거죠. 무엇보다 이 분들 중 150여 명이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이에요."


감옥예술극장의 디렉터인 로잘리 제루도 교수가 감옥의 속사정을 설명해주었다. 코로나가 터지기 몇 해  전부터 그녀는 재직 중인 성 어거스틴 대학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감옥 재소자들과 학생들을 연결해 여성 재소자들이 집에 두고 온 아이들에게 엄마 인형을 보내는  Inday Doll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 엄마를 닮은 인형을 아이콘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보내주고 아이는 엄마에게 자기 인형을 만들어 보내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삶을 연결해가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였다.


재난과 빈곤 속에서 예술은,

혹은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2019년 부산 문화다양성 포럼에서 그녀의 프로젝트를 들은 한 참여자가 왜 하필 감옥을 넘나들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예술가이기 전에 필리핀 사람, 여성이에요. 한 해에 30여 차례 오던 태풍이 기후위기로 60여 회로 늘었고, 점점 더 거세가고 있죠. 태풍으로 수 십여 채의 마을이 쓸려나가고 삶의 터전을, 심지어 가족을 잃기도 하죠. 삼 년에 한 번씩 분쟁이 터지는 민다나오에서는 내전으로 10만여 명이 주민들이 난민이 되어 살아가고 있어요. 끊임없이 닥쳐오는 재난, 분쟁, 가난 속에서 나는 늘 질문하게 되. '이 거대한 재난과 빈곤 속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예술은 무엇일까? "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의 시간, 그녀의 물음은 늘 그녀를 낯선 벽 앞에 세우고, 경계를 넘게 한다고 했다.

"그 깊은 물음이 제 삶을 이끌어 왔듯, 대학 담장을 넘어 감옥 문을 열게 했겠죠"


감옥 안의 여성들이 만든 인형들은 그녀들을 대신해 뉴욕으로, 샌프란시스코로, 한국으로 세계를 여행했다. 아이콘이 존재를 담는 상징이라면, 그녀들은 단절의 상징인 감옥에서 연결의 상징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로잘리 교수마저도 꼼짝 할 수 없게 되고 그녀들과 함께 하던 모든 활동도 멈추어 섰다. 학교와 상점, 극장과 공원, 섬과 섬을 잇던 배편들.. 모든 것이 멈추어 서자 도시는 그 자체로 거대한 감옥이 된 것이다.


2016년, 일로일로 대학 예술학부 학생들과 감옥 여성들이 두고 온 아이들에게 인형을 만들어 보낸 Inday Doll  프로젝트


거대한 감옥이 되어버린 도시  

"코로나가 터지고 동네는 물론  학교도 못 가고 2주간 격리와 봉쇄의 시간을 보내는 데 어느 밤에는 고립감 때문에 공황장애 증세가 찾아왔어요. 그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건널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계의 다양한 친구들과 나눈 대화와 웃음이었어요. 감옥 같은 시간을 지나며, 지난 5년간 만나 온 감옥에 있는 여성들이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고 동시에 상상하게 된 거죠. 그래, 코로나로 감옥에 방문할 수 없다면, 그 사람들과도 줌으로 만나는 것은 가능한 것 아닐까? "

그녀 자신도 이미 몇 달째 진짜 감옥 속의 여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장 중요한 시간들을 걷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름의 감옥이 힘든 것은 어디나 정해진 일이었다. 그러나 칼잠을 자고 옆  사람의 체온과 호흡을 피할  없는 감옥에서 느끼는 코로나의 공포는 더욱 큰 것이었다.  하물며 집에 두고 온 가족과 무엇보다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에 염려는 밤을 지새우게 하고, 마음을 쪼여들게 했다.


줌으로 여는 감옥의 문


교도소 창살 사이의 틈마저 봉쇄되어 버린 듯 한 고립과 무원의 시간..

로잘리는 그 벽 앞에서 교도소장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자기에게 연결된 친구들이 그 봉쇄를 넘어설 힘을 준 것처럼 트리플 락다운에 갇힌 여성들을 줌으로 라도 만나게 해 달라고..


교도소장은 "아.. 줌이라면.."

그녀의 상상에 고개를 끄덕이고 기적처럼 감옥의 문을 열어 주었다.


로잘리는 줌으로 연결된 세계의 친구들에게 감옥으로 초대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 5년간 함께 인형을 만들던 여성 수감자들에게

당신의 노래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춤을 나누어 주세요

당신의 시를 들려주세요

당신의 무대를 펼쳐주세요

그녀들의 이야기가

그 시에, 노래에, 연극에, 춤에 담길 수 있도록

함께 감옥 속의 예술극장을 만들어 주세요”


그녀들의 고립과 단절에 공감하고 공명하는 세계의 예술가들이 곳곳에서 답신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 고립되어 무력과 위축 속에 머물러 있던 것은 다만 감옥 속의 일만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뉴욕, 시카고, 캐나다, 인도네시아  세계 곳곳에서 함께 참여한 감옥예술극장 예술가들



고립과 단절을 넘어

삶을 연결하는 감옥예술극장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작업을 하는 좁은 감옥 한편을 세상의 예술가들과 만나고, 무대를 만들어 가는 감옥예술극장이 그렇게 한 걸음씩 시작되었다. 그러나 줌이라는 낯선 창으로 세상을 만나기 위해 여성 수감자들은 먼저 얼굴을 가릴 마스크가 필요했다. 먼 곳의 마스크 아티스트와 함께 그녀들은 자신을 가려 줄, 혹은 담아낼 마스크를 먼저 만들기 시작했다. 필리핀 다운 화려한 색의 천과 온갖 비즈들이 마스크 재료로 건네어졌고, 그녀들은 저마다의 색과 빛을 담아 무대용 마스크를 만들어 얼굴 전체를 다 가리고 줌 앞에 서기 시작했다. 강렬한 마스크 얼굴을 다 가렸으나 존재는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그렇게 아침과 저녁으로 미국에서, 영국에서, 호주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심지어 한국에서까지 감옥의 창살을 넘어 세상의 다양한 예술가들이 감옥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화가, 무용가, 뮤지션, 연극감독, 작가 다양한 예술가들이 창의적 워크숍을 제안했고 예술 워크숍에 필요나 재료들이 감옥 안에 없으면 로잘리 교수가 시장에서 구해서 담장 너머로 미리 보내주었다. 감옥 안에서는 수감자들이 서로 당번을 정하고 역할을 나누어 워크숍을 준비했다. 간수들은 모일 시간을 배려해 일과를 조정해 주었다. 함께 시를 쓰면, 다음날 노래가 되고, 이야기를 나누면 한 편의 연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누군가 귀 기울이고 함께하기 시작하자 그녀들의 움직임은 춤이 되고, 이야기는 노래가 되고, 삶은 연극이 되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만든 무대용 마스크, 감옥은 무대가 되고, 삶은 예술이 되기 시작했다.



감옥에서 함께 부르는 삶의 아리랑  


2019년에 이어 2020년 부산 문화다양성 포럼의 키노트로 한국과 소통하고 연결되기 시작했다. 부산 아시아 문화다양성 포럼을 통해 만난 아시아의 예술가들, 무엇보다 한국 예술가들을 감옥예술극장에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오랜 벗 솔가가 먼저 화답했고, 인도네시아의 무용수 아궁과 데시, 그리고 부산의 김보경 작가가 마음을 내었다. 2020년 11월 부산  APEC에서 열리는 아시아 문화다양성 포럼을 앞두고, 일주일 내내 아시아의 예술가들이 줌으로 일로일로의 감옥에 도착했다.






삶의 아리랑


첫 시작은 솔가가 나누어 준 "삶의 아리랑" 워크숍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첫 만남을 기다리던 저녁, 줌으로 감옥 문이 열리자. 노란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여성들이 환한 얼굴로 헬로우를 외치기 시작했다. 세팅된 기타와 마이크 만으로도 흥이 많은 필리핀 여성들은 텐션이 한껏 고조되었다. 마이크 테스트와 인사를 마치자 워크숍에 앞서 솔가의 노래를 먼저 듣고 싶다는 요청에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몇몇 분들은 이미 들어 본 듯 리듬과 허밍으로 반응하기도 했다. 전통 아리랑을 먼저 부르고, 연이어 솔가는 자신만의 아리랑을 천천히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울음과 웃음 사이에  채 웃지 못한 웃음

웃음과 울음 사이에  채 울지 못한 울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길지만 짧은 듯, 멈춘 듯 아니 멈춘 듯

바람결 먼지 마냥 넘치듯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가사를 영어로 번역해 드리고 다시 노래를 시작하니 줌으로 연결된 감옥 안의 여성들이 후렴구에 목소리를 함께 얹기 시작한다. 서툰 발음으로 함께 한 아리랑 마지막 소절을 마치고, 아리랑의 뜻을 찬찬히 나누었다. 그 이야기에 몇몇이 손뼉을 치면서 필리핀에도 비슷한 노래가 있다며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자, 갑자기 떼창이 시작되었다.  

"일리 일리... 일리 일리 "

"엄마가 아이들을 재울 때 가장 많이 불러주는 필리핀 자장가예요" 로스가 우리에게 설명을 대신해 주었다.

몇 해 전, "감옥 안의 엄마들이 가장 힘든 순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아이에게 자장가를 불러 재워줄 수 없다는 일"이라고 답했다던 로잘리의 이야기가 그 장면 위로 포개어져 왔다.


감옥 안을 가득 채운 일리 일리 자장가를 듣고, 따라 부르기도 한 후 아리랑으로 돌아왔다. 아리랑을 함께 나누기 위해 가사를 영어로 준비했으나, 노래를 듣고 난 여성들은 그냥 한글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정해진 것도 목표하는 것도 없이 교감과 생성으로 만들어 가는 워크숍이니 어떤 의견이든 즉흥에서 수용이 가능했다.

영어로 나누어진 가사지에 이곳에서 불러주는 한글을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서툰 서로의 발음에 한 소절도 끝나기 전에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사뭇 진지하다.



먼 곳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이들아



아리랑의 멜로디를 다 익히고 난 후, 한 가지 요청을 건네었다.


 "누구나 삶의 아리랑 고개를 넘는 시절이 있듯 저마다  그 고개를 넘어가는 마음과 시절이 있잖아요.   그 마음을 한 문장에 담아주세요. 한국의 아리랑이 아니라 여러분의 아리랑을 함께 만들 수 있도록"


 줌 너머로 보내는 요청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한 줄의 문장이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 소절을 채울 저마다의 삶.

저마다의 마음을 건네어 달라는 청이었다.


미리 누군가가 준비해두었던 듯 준비된 종이와 펜이 한 순배 돌고 하나둘씩 짝을 지어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교실처럼 왁자지껄했던 감옥은 일순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이미 다 쓴 사람도 있는 듯 여기저기서 노랫말에 얹어 불러보다가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누군가를 놀리고, 장난을 치기도 하다가 한 친구가 아리랑의 코드를 알려 달라고 한다. 순간 감옥 안에 기타가 있다며 들고 와 코드를 따고 연주를 시작한다. 이미 워크숍은 자체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가사를 완성한 사람들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먼 곳에 두고 온 내 아가들아

 너를 다시 안아주고, 입 맞추고 싶구나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링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그때 난 왜 그런 선택들을 했을까

 이렇게 가족에게서 떨어뜨릴 줄모르고.."

 

"  성탄은 다가오는데 나는 혼자 감옥에..

  자장가를 부르며 너를 안아 재워주고 싶은데..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노래를 하다가  한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기 시작하셨다.

분명 금방까지 웃고 있었는데 옆에서 웃던 사람들 후드득 눈물을 떨군다. 햇빛 속에 쏟아지는 빗방울처럼, 웃음과 울음이 뒤섞여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그저 함께 울또 웃으며 노래를 계속해 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그녀들의 노래와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마음을 나누는 여정이 끝나고 함께 한 시간 속에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앉은 말들을 골라 솔가의 목소리'일로일로 아리랑'을 나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멀리 두고 온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를 다시 꼭 안고 입 맞추고 싶구나 "


 그녀들이 만든 아리랑을 들려주며  마지막 이야기를 건넨다.


" 한국에는 지역마다 다른 아리랑이 있어요.

 저는 사람마다 다른 아리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는 저마다의  아리랑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로스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 노래였는데

 이제 우리 노래가 되었네요

 함께 일롱고 아리랑을

 더 창의적으로 만들어가 보아요!"



포스터의 주인공이 된

감옥 속의 사람들


왁자지껄했던 워크숍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줌을 나와야 하는 순간... 줌을 끝내기 전 기념 사진을 찍자며 마무리를 하는데 누군가 다급히 우리 이름을 불렀다.  줌 화면 너머 우리 공간에 붙어있는 예술극장 포스터에서 자신들의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포스터를 화면 가까이 비추어 달라고 해 보여드리니 환호성터져 나온다.

"아 우리가 한 연극 사진이 한국에서 포스터가 되다니.."



결국, 포스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나가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마치 여행에서 만났던 마을분들과 헤어지기  싫은 양  인사를 하고 또 하고, 손을 흔들고, 온갖 모양의 하트를 나누느라 한참을 보냈다. 장난 가득한 친구들은 까불기도 하고, 엄마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줌을 떠났다.


다시 아침이면 빨래를 널고 밥을 먹으며 그녀들이 흥얼거릴 일롱고 아리랑이 귓가에 자박자박 내려앉는다. 인도네시아의 무용수 아궁과 데시가 펼칠 춤의 극장이며, 부산의 김보경 작가가 열어갈 아트 워크숍은 또 얼마나 많은 빛과 자유를 감옥 안으로 건네어 줄 것인가. 오랜만에 고마운 상상에 단꿈을 꾼다.


며칠 후 열린 아시아문화다양성 포럼에서 로잘리 교수는 그녀들이 완성한 아리랑 영상을 보여준다.


"펜데믹은 우리에게 예술의 역할을, 예술가의 존재 의미를 다시 묻게 하죠. 공연도 연극도 전시고 축제도 멈추어 버린 고립과 단절. 그 속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끝내 예술적 상상력으로 삶을 복원하고 경계를 넘는 예술의 원형을 발견하고  있어요"  

단절의 상징이었던 줌은 누군가에겐 연결의 상징이 되었고. 멈추어 선 예술은 예술이 가닿을 수 없던 가장 깊은 곳에서 그 전복의 상상력을 펼치기 시작했다. 펜데믹 시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 거대한 고립과 단절, 죽임과 죽음 속에서 예술은 누구의 곁에 서 있는 것인지 끝없이 묻는  지도..






*감옥예술극장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이매진피스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2020 부산 아시아 문화다양성 포럼_키노트_ 로잘리 제루도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05DjPhoJ_1g&t=72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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