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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May 10. 2022

토네이도 오므라이스

카페 브런치

1. 오므라이스 

오므라이스는 볶음밥과 얇은 스크램블 에그를 싼 요쇼쿠(양식)요리로 서양의 영향을 받은 퓨전 일본 요리의 한 예이다. 오므라이스는 영어 단어 omelette와 Rice의 일본어 발음에서 파생된 것으로 오므라이스는 20세기초 도쿄 긴자 지역의 렌가테이(Renga-tei)라는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오무라이스는 오믈렛과 볶음밥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일본 최초의 양식전문점 렌가테이(빨간 벽돌집)


오믈렛은 '칼날'을 뜻하는 프랑스어 'alemelle'에서 왔으며, 이는 다시 '얇고 작은 접시'를 뜻하는 라틴어 'lamella'에서 왔다. 최초의 오믈렛은 고대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에는 달걀을 푼물에 잘게 썬 허브를 섞어 단단하고 납작한 원판으로 부쳐 잘라 먹었다고 한다.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오믈렛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는데 이 때 생긴 오믈렛의 형제가 '토르티야'와 '프리타타'이다. 볶음밥의 정확한 기원은 장쑤성 동부의 양저우(Yangzhou)시에서 수나라(AD 589-618) 시대에 발명된 것으로 믿어진다. 밥과 돼지고기, 새우, 파, 완두콩을 버무린 양저우 볶음밥은 모든 중국 볶음밥 요리를 평가하는 표준이다. 프랑스식 오믈렛과 중국식 볶음밥의 만남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냈다.

현대의 오므라이스는 거의 모든 서양식 패밀리 레스토랑 메뉴에서 볼 수 있으며 특히 어린이 메뉴에서 인기 있는 품목이다. 오므라이스는 매우 다양한 변형이 있으며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30가지가 넘는 다양한 구색을 자랑하는 이 요리를 전문으로 한다.

일본의 에도 시대 말기 계란을 먹는 것까지 엄격한 불교 기준에 의해 실제로 용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의 개항과 더불어 새로운 서양의 요리 스타일이 일본인들의 취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일본의 식단에 육식과 달걀이 오르기 시작했다. 


2. 일본의 오쇼쿠(양식)요리, 오무라이스의 시작 


요쇼쿠(양식)요리는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서양식 요리를 가리키는 일본 요리의 한 범주이며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서양풍의 요리를 가리킨다. 일본의 것이지만, 일본의 양식은 쌀밥에 맞게 먹는 일본의 독자적인 진화를 이룬 서양 요리라고 정의하고 있다. 양식은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 시대 초기에 일본인의 식탁에 서서히 나타난 것으로, 원래는 일본 거주의 서양인 을 위해 서양 요리점 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항과 더불어 메이지 유신의 시작과 함께 일본의 정부, 지식인, 기업인 등 상층 엘리트들이 일제히 서양요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서양요리의 대중화, 일반 중산층의 서양요리에 대한 수요가 맞물려 메이지 말기(1910년경)에는 서양요리와 일본요리의 적절한 조합으로 화양절충요리가 완성되었다.


긴자의 번영, 우타가와 쿠니테루 1873


양식이라는 말은 동양에서 각 나라의 음식과 대별되는 새로운 서양 음식문화가 전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그 나라 음식과 대별되는 서양음식의 형식을 칭하게 된다.

역시 일본에서는 일식(일본에서는 ‘화식’이라고 한다)과는 명확하게 구별되는 양식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요쇼쿠는 메이지 유신 시대에 서양 사람을 위한 서양음식점을 칭한다. 초기 서양 음식점에서 일을 한 일본의 요리사들은 이후 일본 각지에서 자신의 가게를 열고 요쇼쿠를 전파했다. 일본인에게 알려지게 된 서양요리는 기존의 일본식(화식)에 대해 ‘양식’으로 불리게 되었다. 1882년 후쿠자와 유키치가 저작의 「제실론」안에서 「양식」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

당시까지는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육식을 기피하고 있었기 때문에,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주체로 하는 서양 요리에 큰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가 국민의 체격 향상을 위해 육식을 장려하고, 메이지 천황이 스스로 쇠고기를 밥상에 올렸다는 신문 보도도 있다. 그 때문에 시민 사이에서도 소고기 전골 등의 형태로 서서히 육식이 시작되었다.

메이지 시대에서는 서양 요리의 재료를 완벽하게 갖출 수가 없어서 대용 재료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일본인 입맛에 맞게 재료가 추가되고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일본적인 양식의 대표가 포크커틀릿, 카레라이스, 고롯케, 새우튀김, 오므라이스이다. 포크 커틀릿은 돈카쓰라고 더 알려지게 되었으며 밥과 된장국과 단무지를 세트로 한 일본 요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메이지 시대에는 서양 요리는 고급 요리였으며, 프랑스 요리가 중심이었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세계 2차 대전 시기에 일본적인 양식을 중심으로 한 대중음식점도 등장하게 된다.

1800년대 후반에는 서양 요리가 고급이며 프랑스 요리가 중심이었지만, 1900년대에 들어와 일본적인 양식을 중심으로 한 대중을 위한 양식점도 등장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잉여 농산물 처리법(PL480)에 의해 원조를 받게 되고, 일본인의 식생활의 서양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양식은 인기 있는 일본요리의 한 형식으로 발전된다. 


3. 일본의 와쇼쿠 요리(양식)의 역사


일본의 화양절충(和洋折衷) 요리들


아시아권의 대부분의 서양식사의 도입은 호텔의 역사와 함께한다. 막부 말기 개국 전의 일본에는 서양인을 만족시킬 만한 숙박시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영국 공사가 막부에 서양식 호텔 건축을 요청함에 따라 1868년 동경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인 거류지에 최초의 서양식 호텔 '츠키지 호텔관'이 건립되었다. 츠키지 호텔관은 서양식 건축물로 100개가 넘는 객실에 레스토랑, 당구장을 갖추고 레스토랑 주방장으로서는 프랑스 주방장 루이 배규를 채용했다. 이 호텔에 머문 영국인 사무엘 모스만은 서구의 최상의 호텔에 필적하는 호텔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어 1872년에는 츠키지 시요켄 호텔을 개업한다. 이 호텔의 레스토랑은 프랑스 식당으로 초대 요리사로 스위스 주방장인 카를 헤스를 채용했으며 서양 음식을 통한 중국인 요리사도 고용했다. 불운하게도 츠키지 호텔관과 츠키지 시요켄 호텔도 긴자의 대화재에 의해서 소실되었다. 그러나 츠키지 시요켄 호텔은 재건되어 당시 일본에서는 최고의 양식을 제공하는 가게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레스토랑에서 우수한 주방장을 배출하여 1890년 제국호텔이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요리사들을 배출하여 일본 서양 요리계에 지대한 영향을 준 식당으로 알려진다. 츠키지 시요켄 초대 주방장인 카를 헤스는 프랑스빵 전문점 '짜리사'를 개업해 제자를 남겼고, 일본 프랑스빵의 전파에도 이름을 남겼다. 


4. 우리나라의 양식의 역사   

         

손탁 호텔과 커피숍 내부


우리나라에는 앙투아네트 손탁(Marie Antoinette Sontag)여사가 설립한 손탁호텔을 꼽고 있다. 하지만 근대 조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은 1888년 인천에서 개관한 대불호텔이다. 당시 조선과 서울을 드나들기 위한 주요 관문이 인천이었으므로 서울보다 인천에 최초의 호텔이 세워졌다고 한다. 1902년에 개관한 손탁호텔에 앞서 이미 서울호텔(정동 황국 구내, 1897년 개업), 팔레호텔(대안문 앞, 1901년경 개업), 스테이션 호텔(서대문 정거장 앞, 1901년 개업) 등이 있어 최초는 아니다. 하지만 최초의 근대적 건물에 현대식 설비를 갖춘 시설은 손탁 호텔이 최초였다고 여겨진다. 손탁 호텔은 대한제국 시기 세워진 서구식 호텔로 지금의 중구 정동에 위치했으며 오늘날에는 이화여고 백주년 기념관에 터만 남아있다. 호텔이라는 말이 아직 전래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손탁빈관'이라고 불렸다.

손탁여사는 독일인으로 1885년(고종 22년) 러시아 공사였던 베베르를 따라 조선을 방문했다.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 언어에 능통했던 손탁은 한국어도 빠른 속도로 습득하면서 명성황후의 신뢰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궁궐에서 양식 조리와 외빈을 접대하는 임무를 수여받았다. 손탁 여사를 아낀 고종은 대한제국 시절 1902년 2층짜리 양관으로 건축한 뒤 손탁에게 경영을 맡기니, 이것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건물 2층을 VIP실로 사용했고, 1층을 일반 외국인 객실, 식당, 커피숍등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양식 및 커피숍 경영의 시발점이다.

대한재국 시절 고종은 경복궁에 근대식 건물인 석조전과 양관이 여러 채 있었다. 당시 양관에서는 서양식으로 귀빈 접대 및 만찬을 행하는 정도로 사용했으며 우리나라의 양식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5. 오므라이스의 종류 


1) 클래식 오므라이스


클래식 오므라이스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오므라이스로 볶음밥이 달걀부침에 둘러싸인 모양새이다. 프라이팬에 넓게 지단을 부친 뒤 볶음밥을 넣고 프라이팬을 뒤집어 접시에 놓는 형태로 달걀 오믈렛에 볶음밥이 속 재료로 들어차있다. 그 위에 케첩을 듬뿍 뿌리거나 데미글라스 소스를 끼얹어 먹는다. 


2) 담뽀뽀 오므라이스


담포포 오므라이스 플레이팅 방식은 1985년 1987년 이타미 쥬조의 컬트 명작인 코미디 영화 '담포포'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유명해진 담포포 오므라이스는 세계적으로 오므라이스를 제공하는 하나의 표준 방식으로 많은 오므라이스 레스토랑에서 제공된다. 


3) 회오리 오므라이스


일본에서 시작하여 토네이도오므라이스(Tornado Omurice)라는 이름으로도 사용된다. 달걀을 회오리 모양으로 말아 익혀 올린 오므라이스이다. 원조는 일본 사이타마현 오미야구에 위치한 '홍정'의 경양식집에서 주인인 우타가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2016년 5월 경 서울특별시 관악구 샤로수길에 위치한 '에그썸'에서 판매하면서 알려졌다. 2019년 음식 유튜버 야미보이(Yummyboy, 구독자656만명)의 에그썸 영상 ‘회오리 오므라이스 달인, 줄서서 먹는 곳 – 샤로수길’(조회수 1933만회)이 뜨면서 유명해졌다. 이 영상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회오리 오므라이스(tornado omurice)라고 부르며 한국의 길거리 음식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홍정의 주인인 우타의 2017년 인터뷰 내용이다.

1999년 일본 잡지에 게제된「드레스 드 오므라이스」 


“드레스 드 오므라이스는 1997년이나 1998년에 탄생했습니다. 대략 20년전이군요.

당초는 「특제 오므라이스」라는 이름이었어요. 「드레스 드 오므라이스」 마스터가 생각한 이름이 이렇게 유명해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무대 위를 노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회전하면서 춤추는 모습을 하얀 접시를 캠퍼스에 보고 입체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노란 계란은 회전하는 스커트 "드레이프", 빨간 토마토는 소녀의 몸통, 녹색 스냅은 높이 올린 오른팔, 도미그라스 소스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생긴 스커트의 그림자를 표현했습니다.

요리라기보다 '작품'입니다.”   


6. 오므라이스 장인 ‘키치 키치 오므라이스’ 교토 

키치 키치(Kichi Kichi)의 사장이자 주방장인 유키무라 모토키치

교토에 위치한 키치 키치(Kichi Kichi)의 사장이자 주방장인 유키무라 모토키치는 오므라이스를 공연으로 만들어 오므라이스를 판매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오므라이스 주방장으로 유명한 그는 오므라이스 공연으로 유명하다. 교토에 위치한 키치 키치(Kichi Kichi)의 입장은 온라인 예약을 통해 엄격하게 이루어지며,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한 예약을 위해서는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아 한다고 한다.

8인용 바 카운터와 6인용 테이블 그리고 오픈 키친만 갖추고 있어 손님들은 친밀한 식사 경험을 할 수 있다. 40년이 넘는 경력을 자랑하는 모토키치 주방장은 바 카운터 뒤에서 독특한 존재감을 뽐내며 쇼맨십과 코믹함으로 손님들을 매료시킨다. 불 쇼와 계란 던지기 그리고 장난끼 가득한 맨트와 코믹함으로 오므라이스 공연과 요리들을 선보인다. 1인당 예상 가격은 3~5만원 정도이고 적어도 6주전에는 예약을 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Tornado Omurice 만들기 



재료

달걀(대란) 2개, 중란일 경우 3개를 준비

물 1스푼  


만드는 법 


1) 계란을 잘 풀어 채에 받쳐 알끈을 제거하여 거른 후, 물 한스푼을 첨가하고 소금으로 간을 한다.

2) 기름을 두른 팬을 달군다.

3) 뜨거워지면 계란을 붓고 계란이 응고되고 기포가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4) 젓가락을 이용하여 응고물을 중앙으로 가져온다.

5) 젓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돌리기 시작한다. 계란물을 돌리면서 흐르는 계란이 응고되도록 하고 좀 더 돌린다. 계란은 소용돌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6) 약간 묽은 상태에서 계란을 볶음밥에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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