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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 Mar 19. 2024

슈테판 츠바이크 모르는 여인의 편지

비평



슈테판 츠바이크의 모르는 여인의 편지는 한 남자를 향한 어느 여인의 광적인 사랑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 여인은 어느 날, 이웃집으로 이사 온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성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미성년의 그 어린 나이에 마음을 깊이 빼앗겨 버린 여자는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하게 된다. 그 남자는 그녀의 존재도 모르고 단지 하룻 밤 성적인 대상으로써 밖에 여기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사랑은 결코 식지 않는다.


"어둠 속의 소녀가 아무도 모르는 사모의 마음을 지녔다는 것은 이 세상 무엇하고도  비길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은 너무나 절망적이고 봉사적으로 온갖 정성을 다 바쳐서 쏟아놓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여자의 욕정적이고 무의식적이면서, 대가를 요구하는 그런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 입니다. 격렬한 감정을 집중 시킬 수 있는 것은 다만 고독한 사람들만이 가능합니다."


그녀는 남자의 아이까지 우연히 임신하고도 그 아이를 혼자서 낳아 키운다. 그리고 그 아이의 존재를 남자에게 알리지 않는다. 아이를 낳을  때에도 빈천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병원의 바닥에서 고통스러운 출산을 겪는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창녀로 몸을 팔아가며 아이를 먹여 살리는데, 그 와중에 그녀에게 돈 많은 남자가 구애를 해왔으나 오로지 그 남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거절을 한다. 그 남자가 그녀의 존재 조차도 모르는 데도 불구하고.


여인의 사랑이 점점 처절하게 치닫을수록 이 소설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집요하게 한다. 왜 그렇게까지 피해를 감수해가면서, 한 남자를 사랑해야 하는가?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생각해보았다. 희미한 어느 기억이 머리에 엉켜서, 이웃집 어린아이에 대한 추억이 되고, 어느 젊은 처녀에 대한 생각이 되고, 떠들썩한 술집에서 만난 어느 여자에 대한 추억이 되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은 명확하지 않았으며, 한데 엉켜 있었다. 마치 흘러 내려가는 강물의 밑바닥에 있는 자갈들이 반짝이며 형태없이 떨리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러한 추억이었다. 그림자가 머리 속에서 자꾸만 흘러가고 또 생겨났지만, 결국 어떤 형태를 이루지는 못했다. 감각 속에서 무슨 추억은 느껴졌으나, 무엇을 확실히 기억해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모든 형상들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가끔 그리고 깊이 꾼 꿈...


그 순간에 그의 눈은 책상 위에 놓인 파란 화병에 떨어졌다. 그 병은 비어 있었다. 지난 몇 년 동안의 생일날과는 달리 처음보는 빈 병이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갑자기 문이 열려져서 차가운 바깥 세상의 바람이 고요한 방 안으로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한 여인의 죽음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죽지 않는 영원의 사랑을 예감했다. 그는 마음 한 구석에서 뭔가가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먼 데서 들려 오는 음악 소리처럼,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여인의 모습을, 형상은 없으나 훈훈한 애정을 가지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츠바이크는 이 가련한 여인을 통해 불가능한 사랑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영원한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가? 조금의 댓가도 바라지 않으며, 오로지 삶을 다 바쳐야 가능하다는 것이리. 마지막 구절에 여자는 죽었으나, 남자는 그녀에게 평생에 단 한번도 가져보지 못 한 진지한 사랑의 감정을 가지게 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여인이 보낸 소설과도 같은 편지가 일종의 문학 작품과도 같은 역할을 해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오히려 역설적으로 가장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이 말해진다. 모르는 여인이 평생을 지독하게 고독함을 고집해온 것 처럼,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 또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적인 삶을 고수했다. 인간이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하기엔 자기 자신이라는 방패막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모르는 여인도 사실은 자신만의 순수한 사랑 관념을 지켜내기 위해,  남자에게 그 어떤 댓가도 사실도 얘기하지 못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말한다.

영원한 사랑이란, 개개인의 가슴속에서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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