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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비 Oct 13. 2019

아이락- 초원의 술

당신에게 몽골 #3

마유주    馬乳酒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아이락(마유주)은 몽골의 전통술이다.

가축들 가운데 말의 젖이 유당이 가장 높다 하는데, 아이락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장내의 세균 번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한다.

아이락은 새끼를 잃은 어미 말이 젖몸살로 밤마다 우는 것을 불쌍히 여긴 주인이 말젖을 짜주었다가 그것이 발효된 것을 먹기 시작했다는 풍설이 전해온다.


아이락은 시큼텁텁한 맛이 흡사 막걸리와 비슷하다. 알콜의 도수가 3도쯤으로 약하나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하는 수가 있다. 대체로 아이락은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 마시는 것이 좋겠다. 자칫 여행 중에 설사를 만나 시도 때도 없이 차를 세우며 아무리 달려가도 몸 숨길 데 없는 벌판에서 바지를 끌어내려야 할지도 모르니.

일부러 장을 청소한다며 아이락을 작정하고 마시는 한국 여행자들도 있다고 한다. 간혹 아이락에 알러지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으니 본격적으로 마시기 전에 혀끝으로 맛을 보고 이상여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락을 마신 여행자가 갑자기 입술이 부르트고, 기도가 부어서 호흡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아주 특별한 일인 줄 알았는데, 다음 해의 여행자 가운데서도 같은 증세를 일으켰다. 다행히 얼마쯤 지나 붓기가 가라앉고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다량으로 마실 경우 미리 알러지 여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락은 유목민에게 음료에 가깝다.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고 하는데, 말의 종류보다는 말이 먹는 풀의 종류에 따라 마유주의 질이 결정되는 듯하다. 동북쪽의 볼강 아이막의 아이락이 질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 아이락은 초원의 풀들이 빚어낸 술이라 하겠다. 처음 젖을 짜는 말의 초유는 독성이 있다 해서 아이락에 쓰지 않는다.    


 

아이락은 말젖을 큰 통에 담아 두고, 수시로 막대로 저어주어 발효를 시킨다. 그래서 문가에 아이락이  담긴 통을 놓아두고 드나들 때마다 저어준다. 고향을 그리는 몽골의 시에 보면, ‘아이락 젓는 소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네 식으로 하자면,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쯤이 되는 향수가 아닐까 싶다. 유목민들은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락을 입술에 발라주어 초원의 삶을 시작하게 한다. 또한 유목민들 마을에서는 아이락을 처음 만드는 시기에 말들의 번창을 기원하는 ‘아이락 축제’를 열기도 한다. 아이락 축제에 고기 음식이 빠질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말이 늘어나기를 기원하는 축제에 말고기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양고기를 쓴다. 공연히 말 때문에 곁에서 어정거리던 양이 벼락을 맞는 격이다. 우리의 ‘큰집 잔치에 작은집 돼지 죽는다’는 말과 같은 처지라 하겠다.  

아이락을 맛보려면 게르 앞에 매어 놓은 말들을 잘 살펴봐야 한다. 긴 줄에 매인 어미 말은 서 있고, 망아지는 앉아 있는 게르가 아이락을 담그는 집이다. 새끼를 곁에 둔 어미말이 젖을 내지만 짧은 줄에 매인 망아지는 빨아 먹을 수가 없다. 주인이 가서 어미말이 내놓는 젖을 짜오는 것이다.


아이락 말고도 몽골에는 전통 소주가 있다. 마실 때에는 별로 독하지 않은데, 자칫 취하면 일어나기가 어렵다니 우리의 '앉은뱅이 술‘ 쯤이다. 아이락을 뜨거운 통에 담고 끓여서 모인 증기를 찬물로 식혀서 얻는 술이 몽골식 소주인 ‘아르히’이다.

몽골의 소주는 멀리 아랍과 연결되어 있다. 아랍의 명의 (名醫) 아비센나가 만든 소주를 '아라그'(Arag)라 하는데, 이것이 실크로드를 따라 몽골에 전해져 ‘아르히’라는 증류주가 되고, 이것이 한반도에 들어와 ‘아락주’라는 소주로 보급되었다. 12세기 말경 일본을 정벌하러 온 몽골 군사들이 안동 일대에 머무르면서 전해지게 된 것이 ‘안동소주’라 한다. 지금도 영호남 지방에서는 소주를 고을 때 나는 냄새를 ‘아라기’라 한다.

이런 전통주 말고도 울란바타르나 큰 도시에서는 맥주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들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몽골에서 생산되는 맥주로는 ‘몽골(Mongol)', 칭기스(Chinggis)' 등이 있다.   


몽골의 영혼, 보드카


몽골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술은 보드카이다.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보급된 몽골의 보드카는 39도 정도이며 밀로 주조된다. 러시아 보드카보다 몽골 보드카가 우수한 것은 밀의 질이 좋기 때문이라 한다.  

보드카가 각광을 받게 되면서 알콜 중독자가 급증하여 사회적 문제가 되어, 몽골 정부에서는 대대적인 금주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지방마다 술을 팔지 않는 날이 정해져 있어, 술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울란바타르에서 충분한 술을 준비해갈 필요가 있다.

날이 춥고, 기름기 있는 고기를 먹는 탓인지 몽골사람들의 음주량은 상당하다. 가급적 현지의 몽골 사람들과는 술내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소주처럼 약한 술은 몇 십 병을 먹고, 맥주는 박스로 대어 놓고 마시는 사람이 흔하다.

몽골인이 술을 좋아하는 사실은 역사에도 등장한다. 칭기즈칸의 셋째아들 오고타이는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 술을 지나치게 마셔 건강을 해쳤다. 신하들이 술 마시는 횟수를 반으로 줄이라고 하자 술잔을 두 배로 크게 만들게 했다. 오고타이 칸은 결국 1241년 주연 자리에서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  

아르부드르에서 몽골의 마부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다. 보드카를 맥주잔에다 하나 가득씩 따라 쉴 틈 없이 마셨다. 엉겹결에 그들과 대작을 한 여행자들은 취하여 달밤에 춤을 추며, 시뻘건 숯불 위를 맨발로 걸었다. 술 때문인지, 달의 기운 탓인지 발들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반적으로 가이드나 운전사들은 여행자들의 술자리에 함께 하지를 않는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몽골 사람들과 술내기를 하지 말기 바란다. 덧붙여, 몽골 사람들도 두려워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과는 더욱 그러하다.


보드카는 사람의 영혼을 송두리째 사로잡기도 한다.

아마르바야스갈란트 사원에서 묵던 밤이다. 묵어갈 게르가 부족해 급히 사러 나갔다는 유목민 아저씨가 오지 않아, 마당의 평상에 앉아 보드카를 마셨다. 바람은 시원하고, 몸에 들어간 보드카는 하루의 여정을 감미롭게 달래주었다. 모든 게 몽골의 그 서늘한 바람 탓이었다. 초원에서 불어오는 밤바람을 온몸에 느끼고 싶어 웃통을 벗고 보드카를 마셨다. 누군가 안주로 쇠고기 육포를 꺼내놓았다. 지나온 여행지를 복기하며 나는 취흥에 흥건히 젖었다.  무색무취의 담백하고 솔직한 보드카는 곧바로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육포를 씹으며, 나는 포장지 안에 담긴 작은 비닐봉지를 뜯었다. 친절한 한국 육포 장사는 행여 싱거울까 봐 소금까지 넣어 주었구나. 몽골의 아름다운 밤을 이야기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비닐봉지에 담긴 소금을 육포에 찍어 먹었다. 까만 후추가루까지 섞인 소금은 의외로 싱거웠다. 이번에는 더 많이 찍어 먹었다. 바람에 날려왔는지 모래가 씹혔다. 그리운 몽골의 바람이 주는 선물로 여기고 그냥 씹어 먹었다. 우드득, 우드득!

보드카를 마시고, 다시 육포를 후추 섞인 소금에 찍어 먹었다. 그때, 곁에서 고양이처럼 조용히 앉아 있던 여성 여행자가 ‘장학퀴즈’에 나온 학생처럼 손을 들고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아까부터 제습제를 찍어 먹나요?”

아, 내가 먹었던 것은 소금이 아니라, 육포 포장지 안에 넣어둔 실리카겔이라는 제습제였다. 아, 갑자기 목이 말랐다. 나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

“제습제 먹으면 안 되나요?”

질문을 한 여자가 봉지에 쓴 영어 문구를 소리 내어 읽었다.

“DO NOT EAT!"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병원에 들러 의사에게 말했다.

“제가 제습제를 먹었는데요.”

의사는 한참동안 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걸 왜 먹었습니까?”

“먹으면 안 되나요?”

“이미 먹었잖아요?”

“괜찮을까요?”

“지금 괜찮습니까?”


보드카는 ‘칭기스(chinggis)’라는 상표가 가장 많이 팔리는데, 프리미엄, 골드, 플레티엄 등의 다양한 등급의 제품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상표의 보드카가 한해가 다르게 양산되고 있다. ‘밀레니엄 맨 칭기즈칸’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칭기스 보드카의 가격은 1리터 들이가 대략 11,000원 정도(2012년 기준)인데, 지역에 따라 가격차가 많이 난다. 아무래도 울란바타르의 양판점이 가장 저렴하며, 공항의 면세점보다 더 싼 경우도 있었다.

전에는 몽골 보드카의 경우,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반입이 가능했으나 최근 들어서 위스키로 분류하여 인천 공항에서 일인당 1병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제한을 넘은 보드카는 약간의 세금을 부과한다. 대체로 두세 병 정도는 별 문제없이 통과되는데, 책에서는 원칙대로 말할 수밖에 없다. 적당한 쇼핑거리가 없는 몽골에서 보드카는 화려한 알루미늄 포장과 함께 부담 없는 가격의 여행 선물이 된다.

가격이 저렴한 보드카도 많다. 몽골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제품을 좋아하지만, 본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사항이다. 양호실에서 발라주던 소독약 냄새가 다소 풍기기는 해도, 진정한 유목민의 심경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보드카 술통에 적혀 있는 ‘heart of Mongolia'의 경지를 만나보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오워에 누워 있는 빈 보드카 병을 볼 때마다, 그것이 쓰다듬어 주었을 누군가의 가슴이 생각난다. 나는 강렬한 보드카 매니아이다. 무엇보다 무색무취의 술맛이 순수하고 정직하다. 맛도 깔끔할뿐더러, 숙취도 덜하다. 보드카는 밤새도록 마실 수가 없다. 그 전에 쓰러져 잠들게 한다. 엉기 히드 폐사지 부근에서 새벽까지 마신 적이 있다. 밤새도록 엉기 강에 멱을 감던 별들이 부스스 하늘로 오르고, 초원은 희끄무레 밝아왔다. 빈 보드카 병을 베고 모래밭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보드카는 무엇보다 기름기가 많고 누린내가 나는 양고기를 먹을 때 빠져서는 안될 술이다. 별이 빛나는 사막의 밤에 게르에 앉아서 길벗들과 나누는 보드카의 추억은 강렬하고 감미롭기만 하다. 질질 끌지 않으며 순도 높게 취하고, 뒤끝이 깨끗한 보드카가 우리나라 가게에도 진열될 날을 고대한다.


유목민을 만나면 술을 나누게 된다. 두 손으로 잔을 받아 마시는 예의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술을 마시기 전에 무명지로 술을 찍어 하늘과 땅,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향해 튕겨내는 의식이 색다르다. 우리의 고수레와 비슷한 풍습인데, 그 내역은 조금 다르다. 몽골 오랑하이족의 풍속에서 생겨났다는 이 음주법은 술에 탔을 지도 모를 독을 검증하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술에 무명지를 담가 이상 여부를 알아보고, 주인이 먼저 마셔본 뒤에 손님에게 권하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니, 하늘과 땅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의 고수레에 비하자면 좀 살벌한 감이 없지 않다.

이러한 음주 풍습은 남의 집을 방문하여서 주인이 권하는 술을 사양치 않는 습속과도 관련지을 수 있다. 손님은 주인이 권하는 술을 취하도록 마셔서 상대를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한다. 중국인들이 주먹을 감싸쥐는 포권(包拳)의 예도 상대를 공격하지 않겠다는 증명이며, 서양인들이 나누는 악수도 손으로 때리지 않겠다는 인사의 표시라 하였으니 광막한 초원에서 외따로 사는 유목민들이 술을 통하여 낯선 사람을 시험해 보는 관습도 비난할 바가 아니다.

몽골사람들의 음주문화도 우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무릉 부근의 캠프장에서 밤늦게 떼를 지어 부르는 노랫소리에 한국의 단체 관광객들이 온 모양이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몽골 여행자들이었다. 음주가무의 풍습도 몽골 반점만큼이나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만약에 음주가무를 즐길 마음이 있으면 서양 여행자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몽골 여행자들 가까이 자리를 잡기 바란다.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여행자 캠프에서는 미리 부탁을 하면 적절한 자리를 잡아 줄 것이다.



몽골여행에서 술은 빼놓을 수가 없다.

몽골의 밤은 깊다. 반구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차고, 광활한 초원에 점 하나처럼 찍혀 있는 게르 안의 촛불은 아늑하고 호젓하다. 빙 둘러 앉으면 그 중심에 술병 하나쯤 놓이게 마련이다. 둘러앉은 여행자들이 한 점을 응시하며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밖에서는 모래바람이 울부짖고, 밤이 칠흑처럼 깊어갈수록 게르 안은 방주처럼 아늑해진다. 술잔을 나누며 지나온 길들을 되새기노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각자가 가슴에 차곡차곡 접어두었던 삶의 수첩들을 펼쳐 놓게 마련이다.


취기에 못 이겨 게르 밖으로 나서면, 끝 모르게 깊은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세상의 중심에서 덩그러니 선 자신을 만나게 된다.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래바람만이 원귀처럼 울부짖는다. 무어라 악을 써도 그 소리는 이내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모래알들이 안경에 부딪쳐 생채기를 낼 정도로 거센 모래바람 속에 모든 것들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버린다. 바로 곁에 선 사람에게 있는 힘을 다해 악을 써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신기한 체험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앗아가는 모래바람과, 깊은 어둠에 기대어 여행자들은 자신의 가슴 속에 꽁꽁 쟁여놓았던 말들을 토해내게 마련이다. 바람은 세상의 어떤 비밀스럽고, 부끄럽고, 저주스러우며 참혹한 소리들일지라도 한 도막도 남김없이 빨아들여 어디론가 날려 보낸다. 언제 어디에서 그렇게 가슴 속에 쟁여둔 말들을 통렬히 외쳐볼 수 있었던가. 언제 어디에서 마음껏 비틀거려 보고, 가슴을 쥐어뜯어 가며 울어보고, 큰소리로 악을 쓰고, 취해볼 수 있었던가. 대개 그러한 절규의 끝은 울음이다.


모래바람이 부는 고비의 밤은 모든 걸 허용하며, 그 광포한 바람으로 모든 걸 너그러이 받아들인다. 소리도 소멸하고, 형상도 사라진 황야에서 누구도 들을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나를 만나게 된다.

고비의 벌판에서 모래바람이 부는 밤이면, 술잔을 내려놓고 게르 밖으로 나가 보라. 걷는다는 생각마저 느껴지지 않는 깊은 밤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가슴 속에 꿍쳐 두었던 말들을 바람에 하염없이 날려 보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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